뒷마당 장독대 가득 채운 수십여개 항아리 눈길
콩·고추 등 주재료 부부가 직접 친환경으로 재배
옛방식 그대로…“짠맛·텁텁함 적고 구수함 더해”

 

▲ 강원도로 귀농한 70대 부부가 담근 전통장은 10년이라는 세월과 천혜의 자연 환경이 어우러져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맛을 더하고 있다. 우리농원 류재평·이희순 부부의 건강한 웃음이 푸근한 장맛을 짐작케 한다.

강원도로 귀농한 70대 노부부가 담근 전통 장맛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귀농 당시부터 틈날 때마다 빚은 장이 10년 넘게 묵어오며 해마다 깊은 맛을 더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식품을 대표하는 전통장마저도 인스턴트 추세를 따라가는 지금, 이 노부부가 내놓는 장은 오랜 시간 동안 숙성 과정을 거치며 시간이 흐를수록 전통적인 맛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장류 제품에 비해 특별하다. 양양군 현남면에서 우리농원을 운영하는 류재평·이희순 부부의 얘기다.

이 부부의 중요한 보물 중 하나를 꼽는다면 집 뒤편에 놓인 수십 여개의 장독대다. 서울 성북동에서 40년 넘게 살다가 양양군 지경해수욕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으로 옮겨온 2000년 무렵부터 장을 담기 시작한 장독대는 지금은 뒷마당을 넉넉히 채울 정도다. 3~4년 정도 묵은 된장·간장은 명함을 내놓지 못할 정도다. 대부분 6~7년 이상 된 전통장들이 곳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10년 된 장을 품은 장독대들도 꽤 있다. 이곳 전통장의 햇수를 더하면 족히 400~500년은 훌쩍 넘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 담긴 장들이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우리 부모님이 하던 전통 옛날 방식대로 담갔을 뿐이에요. 된장은 2년 마다 콩 삶은 물인 ‘감탕물’을 넣고 상하로 잘 섞어줘요. 강원도의 좋은 햇빛과 바람으로 자연 숙성되다 보니 이렇게 고운 빛깔과 깊은 맛이 해마다 더해지고 있어요.”

10년 묵은 간장 독 앞에서 선 아내 이희순 씨의 말이다. 이 씨는 이어 “오래된 간장일수록 손에 찍으면 묻어날 정도로 색깔이 검고, 맛도 짜지 않고 깊다”며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장은 그 양이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상대적으로 안 좋은 성분들이 빠져나가면서 깊은 장맛이 남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된장 역시 텁텁한 맛이 적고 특유의 구수한 맛이 갈수록 더욱 깊게 배어드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오래 묵은 장들을 많이 갖고 있게 된 이유에는 안타까운 얘기가 숨어있다. 외부 판매를 위해 장을 담구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입소문과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것 외에 마땅한 판로를 구하지 못하면서 본의 아니게 오래된 전통장을 대량 보유하게 된 것. 하지만 이런 여건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오프라인에선 2014년부터 롯데백화점 일부 지점에서 우리농원의 전통장이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다.

남편 류재평 씨는 “우리 부부의 힘으로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도 불가능하고, 나이든 탓에 온라인 홍보나 판매 쪽은 잘 알지도 못해서 고정적인 판로처를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며 “하지만 우리 전통장이 많이 알려져서, 외부에 많이 팔려도 우리 둘이 할 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역시 고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에 사용되는 주재료는 부부가 직접 기른 농산물이다. 콩과 고추 등은 집 주변의 밭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노동력이 달려 대량 생산은 힘들지만, 2010년부터 받은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꾸준히 유지해 나갈 생각이다.

직접 기르고 오랜 시간을 거쳐 소량으로 만든 탓에 이곳의 전통장은 일반 제품에 비해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다. 하지만 노부부의 정직한 맛의 철학에 더해 자연과 세월이 주는 묵직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부부의 얘기다.

이희순 씨는 “된장이나 간장은 친정집에서 얻어먹는 식품 중의 하나로 여겨져서 선택을 쉽게 바꾸기 어렵고, 가격도 비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통장을 만드는 노력과 시간, 정성 등을 감안한다면 단순히 가격으로만 비싸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량 생산되고 빠르게 소비하는 식문화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 우리 전통장을 많이 사랑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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