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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기획/한국의 ‘가족농’이 사는 법] ‘구워먹는 떡’으로 틈새공략 전북 군산 ‘더미들래’“가족간 환상의 팀플레이로 대박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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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7호] 2017.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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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미들래 가족 구성원들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밀려있는 택배작업에 열중했다. 엄마와 두 아들이 떡과 아이스팩을 담았고, 아빠는 박스 테이프를 붙였다. 작업은 오래가지 않았다. 왼쪽부터 큰아들 두병훈 씨. 엄마 김옥래 씨. 아빠 두금래 씨. 작은아들 두병준 씨.

“농업도 경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족 간에도 어영부영하면 안 되죠.” (큰아들 두병훈 씨)

“원가를 정말 꼼꼼하게 따져요. 처음엔 민망하기도 하고 피곤했는데, 이제는 믿고 맡기죠.” (엄마 김옥래 씨)

전북 군산에 위치한 ‘더미들래’는 ‘구워먹는 떡’으로 대박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만 12억원. 치즈떡, 고구마떡, 바나나떡 등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다양한 종류의 떡을 개발하고, ‘구워먹는 떡’이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적중했다. 고소한 맛도 일품이다.

무엇보다 더미들래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가족의 팀플레이’다. 아빠 두금래(57) 씨는 떡의 기본 재료인 쌀농사를 짓고, 엄마 김옥래(51) 씨는 가공과 체험을, 큰아들 병훈(30) 씨는 경영과 판매를, 작은아들 병준(25) 씨는 매장운영을 책임진다.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한 분업과 협업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큰아들이 합류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어요. 기존에 청국장과 함초 등 가공품을 만들다가 큰아들이 구워먹는 치즈떡을 해보자고 해서 본격적으로 떡 가공을 시작했죠. 애들 아빠가 벼농사를 짓고 있어서 원료수급에 문제가 없었고, 흔하지 않은 떡이라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죠. 문제는 가공기술이 없었다는 거예요. 떡 안에 치즈 등 앙금을 넣다보니 온도가 조금만 안 맞아도 갈라지기 일쑤였죠. 큰아들이 전국을 다니며 떡 가공기술을 배워왔고, 결국 갈라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게 됐죠. 이후에는 큰아들이 온라인 판매와 경영을 도맡아 하고 있어요.”

가족들의 분업은 경영성과로 나타났다. 특히 꼼꼼한 큰아들 병훈 씨가 경영을 맡으면서 원재료 구입비용이 크게 줄었다. “주로 아이들 간식으로 먹는 떡이다 보니 좋은 재료만을 고집하는데, 처음엔 원가부담이 심해서 남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원가계산을 치밀하게 했죠. 한번 받은 견적으로 계속 구입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가격을 낮출 수 있는지 알아보고, 대금결제 날짜나 이자를 고려하고, 외상을 활용하기도 했죠. 치즈 같은 경우 나중에 따져보니 1년 동안 1억2000만원이나 손해를 봤더라고요. 그래서 눈에 보이는 값에 사면 남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죠.”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아빠 두금래 씨가 납품한 쌀은 모두 더미들래가 정상적인 절차로 매입한다. 한 푼도 허투루 쓰면 안 된다는 큰아들 병훈 씨의 경영방식 때문이다. “처음엔 아주 피곤했죠. 민망하기도 했고요. 그래도 지금은 병훈이가 잘하니까 믿고 맡기고 있어요. 애들 엄마가 할 때만 해도 쌀을 그냥 가져다 썼는데 지금은 대금을 꼬박꼬박 주니까 좋죠.”

   
▲ 바삭하게 구워먹는 치즈떡은 더미들래의 대표 상품이다.

작은아들 병준 씨는 3개월 전부터 ‘두군두군 떡볶이’ 매장을 맡아서 운영 중이다. 최근 소스와 레시피 개발은 물론이고, 간판과 인테리어 등 많은 돈이 투자되면서 구박 아닌 구박을 받고 있다는 병준 씨는 가족들이 믿어준 만큼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제가 떡볶이를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제 마음에 들 때까지 소스와 레시피를 개발하다보니 돈이 좀 많이 들었어요. 내부 인테리어도 다시 하고, 간판도 ‘더미들래’에서 ‘두군두군 떡볶이’로 바꿔 형한테 욕을 많이 먹었죠. 중요한 건 맛이라고. 그래도 최근엔 칭찬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어요. 점점 매출도 올라서 조만간 더미들래에 외상 떡값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프랜차이즈화 시키는 게 목표에요.”

물론 가족 간의 의견충돌이나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가족이란 신뢰관계가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게 큰아들 병훈 씨의 생각이다.

“항상 믿어주셔서 감사하죠. 부모님이 도와주고 곁에 계시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떡가공 기계가 고장 나면 손을 봐주시고, 또 지인분들이 많아서 좋은 원료도 구할 수 있어요. 엄마는 직원분들 특히 생산직에 있는 아주머님들을 잘 관리해주시고, 가공이나 농장체험에서 많은 일을 하고 계세요. 저는 거래처를 상대하거나 온라인판매, 세금 등 부모님이 잘 못하는 부분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동생은 매장을 운영하면서 조금 트러블이 있긴 했지만 잘 진행되고 있고, 조만간 괜찮아질 거라고 믿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개개인의 능력만으론 불가능했을 일들을, 가족이 함께 하니까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군산=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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