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설농업의 산증인…같은 길 걷는 아들 고맙고 든든”

▲임승화 대표(사진 오른쪽)는 늘 아들인 병현 씨에게 “이제 자기 실력을 갖춘 프로농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화훼재배 선도농가로 잘 나가다
꽃 소비 위축·유통구조 한계 절감
과감하게 레드토마토로 작목 전환
대학 전공 바꾸며 아들도 동참
‘주스 가공산업’ 새로운 도전
​“실력 갖춘 프로 농민만이 생존”


최근 언론을 통해 ‘스마트팜’이 농업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가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를 모토로 2014년 스마트팜 보급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미 20여년 전, 네덜란드 수준의 첨단 유리온실을 갖추고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농업을 실천해 온 농가가 있다. 전북 부안아그리테크영농조합법인의 임승화(61)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임승화 대표는 우리나라 시설농업의 산증인이다.

그는 1984년, 대학(서울대 농대)을 졸업하자마자 처가가 있는 부안으로 내려와 꽃농사를 시작했다. 갓 결혼한 스물여덟 청춘이었다. 당시엔 “GNP(국민총생산)가 높아지면 화훼 소비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장미, 거베라, 튤립, 백합 등 꽃이란 꽃은 다 재배하며, 밤낮으로 재배기술 연구에 매달렸다.

1995년 네덜란드의 벤로형 유리온실을 도입,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양액관리 제어시스템과 최첨단 환경제어시설을 갖춘 그는 최고 품질의 꽃을 생산, 화훼재배 선도농가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혹독했던 IMF 위기 속에서도 매년 자부담으로 유럽 출장을 다녔다. 선진 농업기술을 배우고 신품종을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1999년 독일 코르데스사와 로열티 분쟁을 겪으며 국산 장미품종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자체 실험포장을 만들어 우리 환경에 맞는 품종 개발에도 앞장섰다.

그렇게 국내 화훼산업 발전을 선도해왔던 임 대표는 2007년, 큰 고민에 빠진다. 정부가 ‘공무원 행동강령’을 통해 3만원 이상 꽃 선물을 규제하면서 국내 꽃소비가 큰 타격을 받은 데다 일본시장 침체로 수출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여기에 15~20%에 달하는 위탁수수료까지 감당하자니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결단이 필요했다.

그해 그는 토마토로 과감히 작목을 전환한다. 그가 선택한 품종은 유럽계 대과종 레드토파토. 7월에 파종하면 10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수확이 가능하며, 리코펜 함량이 매우 높고 저장성이 탁월한 품종이다. 20여년간 화훼산업을 통해 축적한 그의 양액재배 노하우는 토마토 농사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바로 다음해 첫 출하를 시작, 가락시장에서 최고 가격을 받을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 현재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3.3㎡당 150kg. 국내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한다. 부안아그리테크는 2011년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선정한 ‘100대 스타팜’에도 뽑히기도 했다.

그런 그의 옆에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전북대 경제학과를 다니던 아들 임병현(31) 씨가 군 전역 후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것. 원예학과로 전공을 바꾼 병현 씨는 2012년부터 6년째 농장 일을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 후계농업경영인에도 선정됐다. “기특하고, 고맙고, 든든하죠. 내심 바라고 있기는 했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부안 아그리테크는 최첨단 유리온실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농업을 실천하며 고품질 토마토를 생산하고 있다.

물론 처음엔 갈등도 겪었다. “부모와 자식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 부딪힐 수밖에 없어요. 결혼한 부부들이 그렇듯이 서로의 스타일을 이해하는데 3~4년은 걸렸죠.” 아버지의 말에 병현 씨는 이렇게 답한다. “아마 직장 상사라면 시키는 대로 했을텐데 아무래도 가족이다 보니까 제 주장을 강하게 제기했던 것 같아요.”(웃음)

임 대표는 병현 씨에게 “이제 정말 자기 실력을 갖춘 프로농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고 늘 강조한다. 넥타이 매고 관공서 쫓아다니며 정책자금 따내는데 정신을 팔아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게 30년 농사경험에서 얻은 그의 지론이다. “아무리 1%짜리 융자라해도 일단 온실부터 짓고 보자는 식은 안됩니다. 지금 같은 농산물 시세에서 나중에 무슨 수로 수억원의 정책자금을 갚나요. 결국 감당도 못하고 대부분 빚쟁이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그는 정부가 ‘수출’을 명분으로 자꾸 신규 유리온실 면적을 늘리는 것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개방으로 수입농산물이 계속 들어오잖아요. 국내 생산시설은 이미 포화상태에요. 그런데 있지도 않은 수출시장을 개척한답시고 계속 신규 재배면적을 늘리니 정부가 앞장 서 과잉 생산과 가격폭락을 부추기는 꼴 아닙니까.” 그는 신규 온실 지원사업보다는 기존시설 개보수사업으로 전환, 기존 농가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병현 씨는 올해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전북도에서 실시한 ‘청년농업인 경쟁력 제고사업’ 공모에서 받은 1등 상금, 5000만원을 종자돈으로 ‘주스가공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열탕 가열을 통해 리코펜 체내 흡수율을 4배 이상 높이고, 주문 즉시 제조하는 시스템으로 신선도를 높이는 게 핵심이다. 네덜란드의 토마토 교육홍보전시장인 ‘토마토월드’를 벤치마킹, 우리 실정에 맞는 교육농장 운영도 구상 중이다.

지난 30여년.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아버지에게 실패는 없었다. 오로지 실력 덕분이었음을 안다. 그래서 병현 씨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농업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존재할 생명산업이잖아요. 힘든 길이지만 자기의 노하우를 개척하고, 연구하고, 차별화시키면 분명히 블루오션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요즘 같은 시대에, 건강만 허락한다면 은퇴걱정 없이 언제까지라도 오래오래 할 수 있으니, 매력적이지 않나요.”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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