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성리더 ③이해자 진천군여성농민회장

▲ 충북 진천에서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 이해자 씨는 ‘진천개미공부방’의 경험을 살려, 지역주민과 협동하는 지역먹거리 운동을 펴고 있다.

“농촌여성들은 작고 힘도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작으니까 모이면 힘이 되더라고요.”

충북 진천에서 20년 넘게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 이해자(49) 씨는 농촌사회가 ‘왜 협동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주인공이다.

여성농민들과 개미공부방 시작
엄마들이 공부해서 가르치고
고학년은 저학년에 '나눔공부' 실천

장학재단 지원끊겨 중단 됐지만
경험살려 주민과 협동방안 고심
지역 먹거리 체계 구축 '큰 꿈'


1991년 귀농한 이 씨는 세 자녀를 둔 평범한 엄마이자, 여성농업인이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2007년 비슷한 처지의 여성농업인들과 함께 ‘진천개미공부방’을 시작했다. 엄마들이 일부 출자를 했고, 마침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현 삼성꿈장학재단)의 도움으로 버섯재배사를 공부방으로 리모델링하고 차량도 지원 받았다.

“당시 제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이어서 공부방이 필요했어요. 사교육에 의존하기는 힘들었고, 결국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농업인들과 함께 직접 공부방을 시작했어요.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협동방식의 공부방을 해보기로 했죠. ‘진천개미공부방’이란 이름도 개미의 협동하는 모습에서 따온 거예요.”

진천개미공부방은 농촌사회의 새로운 교육모델을 제시하며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특히 농촌공동체 안에서 서로 돕고 나누는 공부방식을 고집한 것이 주효했다. “초등학교 아이들 중심으로 운영됐는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엄마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동시에 고학년이 저학년을 가르치는 ‘나눔공부’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모여서 함께하다보니 내용도 풍부해지고 성적도 좋아지더라고요. 당시 민우회 곽선숙 선생님과 청주대 김미숙 교수님도 영어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공부방에 와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고마운 분들이죠.”

공부방 아이들은 농촌 고유의 먹거리문화도 자연스럽게 익혀갔다. 주민들과 공부방 아이들이 함께한 ‘장독나눔사업’이 대표적이다. “우리 민족의 주요 먹거리는 쌀과 장으로 압축되는데, 장독나눔사업은 장류가 공적인 영역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장을 담고 필요한 곳에 나눠주고, 수익이 발생하면 장학재원으로 활용했어요.”

실제로 공부방 아이들은 겨울이면 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메주를 직접 만들고, 장류를 활용한 잔치를 벌였다. 판매수익금은 공부방을 졸업한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지원됐다.

성공가도를 달릴 것만 같았던 공부방은 장학재단의 지원이 3년 만에 중단되면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들이 출자하고 협동조합 형태로 공부방을 발전시켜보려 했지만, 2년여를 버티다 재정압박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운영비는 점점 줄었고, 이마저 완전히 중단되면서 공부방이 5년을 넘기지 못했어요. 농촌에서 운영비를 조달하며 버티기 어려운 구조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셈이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지난해부터 진천군여성농민회장을 맡고 있는 이 씨는 ‘자신의 필요를 우리의 필요’로 발전시킨 공부방의 경험을 토대로 지역주민들과 협동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먹거리 문제를 주민들의 문제로 확대해 지역 내 먹거리 체계를 구축하고, 나아가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진천군여성농민회의 최우선 과제가 교육사업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농업인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지역공동체 안에서 주민들과 같이 고민하고 소통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에요. 작년부터 지역의 사회단체와 함께 교육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죠. 매년 진천군여성회관에서 두부와 수수팥떡 등을 만들어 파는 장터도 지역주민들과 음식을 나눠먹고, 우리의 식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라고 보면 될 거 같아요.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지닌 먹거리를 유지보존 발전하는 방식의 지역먹거리 운동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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