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성리더 ①공점숙 함안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 대표

 

농업·농촌에도 여풍(女風)이 심상치 않다. 농촌에는 ‘여성인재가 없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 이미 농촌여성들은 지역농협의 이사 혹은 지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변화를 창조하고 있고, 농가경영의 주체로서 6차산업화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자신의 능력을 힘껏 발휘해 농촌사회를 바꿔나가고 있는 각계각층의 여성리더들을 만나본다.

돈 버는 것보다 의미있는 일 원해
'오지랖 넓은' 사회활동가 변신
센터 연 이용인원 500명 넘어
보육·문화욕구 해소 역할 톡톡
여성농업인 지원사업 고민

어린이집 차가 들어가지 않는 외지의 아이들을 보살피고, 고통받는 농촌여성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며,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까지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오지랖 넓은’ 사회활동가로 불리는 (사)함안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 공점숙(54) 대표 얘기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이 고향인 공 씨가 함안군 군북면에 터를 잡은 것은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이다. 단돈 100만원으로 땅을 사고 남편과 함께 집을 지었다. 어렵게 장만한 암수돼지 2마리는 어느새 1700마리로 늘었고, 살림살이도 나아졌다. 하지만 1997년 IMF는 공 씨의 많은 것을 앗아갔다. 보증에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애써 키운 돼지를 모두 처분했다. 당시의 깊은 허탈감이 공 씨를 ‘오지랖 넓은’ 사회활동가의 길로 이끌었다.

 

“아이를 등에 업고 2시간마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돼지새끼 젖먹이고, 10년을 고생했는데 이게 뭔가 싶었어요. 그래서 돈을 버는 것보다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공 씨는 (사)한국여성농업인경남도연합회 활동에 매진했다. 연합회 부회장과 회장을 역임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중앙임원이 되기보단 지역의 사회활동가가 되기로 결정했다. “한여농경남도연합회에서 수년간 많은 활동을 했는데, 정작 군북에는 공점숙이 없었어요. 가까이에 있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당시 진석규 함안군수와 담판을 짓고 2005년 여성농업인센터를 시작한 것도, 어려운 이웃을 ‘제대로’ 돕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함안여성농업인센터는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보육부터 농촌여성 상담 및 문화활동, 할머니들을 위한 한글교실까지 농촌에서 꼭 필요한 알토란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연간 이용인원만 500명이 넘을 정도다.

“여기서도 차로 20분 이상 들어가야 하는 골짜기에 사는 아이들을 방치할 수 없어 데려와 보살피고, 주말에도 농사일로 바쁘거나 서울로 데모하러 가면 아이들과 함께 자기도 했어요. 일반 유치원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센터에서 사명감을 갖고 했던거죠. 그 아이들이 센터 공부방을 거쳐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돼 있어요.(웃음)”

함안여성농업인센터는 여성농업인들이 문화욕구를 해소하는 역할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센터회원들은 영화나 좋은 강의를 찾아가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이다. 농촌여성들로 구성된 ‘사랑의 하모니’ 합창단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12월 4번째 발표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우연히 성악을 접하고 우리 농촌여성들과 함께 합창단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유행가만 부르던 농촌여성들이 오페라의 유령을 배워 발표회까지 한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특히 농촌지역은 문화적으로 굉장히 열악한데 센터를 통해 성악을 접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농촌여성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죠.”

공 씨는 사회봉사를 넘어 여성농업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해서도 적극 나서고 있다. 2년 전 지역의 여성농업인단체와 협력해 함안군에 여성농업인지원조례를 만들었고, 현재 구체적인 여성농업인관련 지원사업들을 고민하고 있다.

“함안군에 여성농업인지원조례가 생겼지만, 아직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진 않고 있어요. 앞으로 센터에서 한여농을 비롯해 전여농, 생활개선회 등 여성농업인단체 협의회를 구성해 여성농업인 지원사업을 만들고 싶어요.”

예산부족으로 센터운영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지만 공 씨는 희망을 얘기했다. “예산은 그대로고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은 오르다보니 사실상 무급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힘들 때도 있지만, 센터에 와서 웃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 자신도 힘을 얻어요. 제가 센터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죠.”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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