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 씨앗 갈무리 깊은 인상
소비자 1구좌 1만원 갖기 활동 덕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 전국 확산


‘토종씨앗은 미래의 씨앗이다. 찾아서 심고 지켜라.’

한영미(49) (사)횡성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 대표가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당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한 대표는 토종씨앗을 지켜야 한다는 권영근 전 농어촌사회연구소장의 얘기에 누구보다 먼저 토종씨앗 지키기를 실천에 옮겼다.

“원주 신림농협과 경북 안동교구에서 얼마 안 되는 토종씨앗을 얻어와 몇 분들에게 나눠드렸어요. 대부분 수확을 못했는데, 김옥련 할머니와 강종석 할머니가 커피 스푼 정도의 씨앗을 가져가서 몇 배나 넘게 수확을 해오셨죠. 그때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할머니들은 씨앗을 갈무리 하는 지혜를 갖고 계셨던 거죠.”

두 할머니를 통해 토종씨앗의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수확량도 떨어지고 팔 곳이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만원의 행복(토종씨앗을 지키기에 함께 하고 싶은 국민 누구나 1구좌 1만원을 내면 토종농산물을 수확해 보내주고, 약간의 금액은 토종씨앗 기금으로 적립하는 운동)’을 통해 소비자들이 토종종자 지키기에 동참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농사라는 게 경제성과 연결이 안 되면 지속가능하기 어려운데, 소비자회원들이 기금을 마련하고 토종씨앗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적극 구매해 주면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고마운 일이죠.”

한 대표는 지난해 강원도 횡성지역의 토종씨앗 전수조사를 실시해 9개 읍면에서 84작물 403종의 토종씨앗을 수집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토종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횡성군에서 토종농산물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드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잡곡농사는 토종종자로 잘 되고 있는데 채소가 취약한 편이에요. 현재 토종종자로 생산하는 채소는 시금치, 아욱, 부추 등 몇 가지 안 되는데, 가짓수를 늘려나기 위해선 할머니들이 씨앗을 갈무리 하는 지식을 빨리 전수받을 필요가 있어요. 특히 횡성군에 토종농산물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면 토종종자를 이용한 재배가 늘어날 거예요.”

한과·조청 등 전통음식 전수 앞장
두부 판매, 김장배추·양념류로 확산
'언니네 텃밭'사업 시작 계기되기도


한 대표가 토종씨앗 지키기와 함께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전통음식 전수사업이다. 두부, 한과, 조청 등 일반적으로 여성농업인들이 가공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품목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특히 두부의 경우 ‘영농조합법인 텃밭’이 구성돼 두부가공 공장을 설립했고, 이는 ‘언니네텃밭’이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의욕적으로 두부를 만들었는데 판로가 막막했어요. 다행히 도농교류 사업을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두부 택배를 시작했고, 시민단체 등의 도움으로 김장배추와 양념류로 점차 확대돼 결국 ‘언니네텃밭’ 사업으로 연결됐어요. 마침 대안농정을 모색하던 때라 자연스럽게 횡성에서 하는 일들을 전국적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거죠.”

이 뿐만이 아니다. 2005년 문을 연 횡성여성농업인센터는 전국최초로 결성된 여성농업인단체협의회의 사무국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협의회를 통해 여성농업인단체가 주요 정책분야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토종농산물 지원에 관한 조례는 물론 여성농업인 육성에 관한 조례, 식생활교육지원 조례 등을 만들기 위해 협의회 차원에서 노력 중이다.

“전국최초로 여성농업인단체협의회 구성해서 올해로 3년차가 됐어요. 센터는 사무국 역할을 하면서 개별단체 활동을 지원하고 공동사업을 기획해서 함께 하고 있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이제는 단합이 잘되고 있는 것 같아요. 횡성에서 이런 시도들이 가능했던 것은 좋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지역 여성농업인들과 힘을 모아 나갈 계획이에요.”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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