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농업·농촌이 좋다
<3>소멸위기 맞지만 살고 싶은 농촌도

[한국농어민신문 서상현 기자] 

우리나라 인구의 50.5%가 수도권에 거주하는 반면 시·군·구의 40%인 89개가 인구감소지역이다. 저출생과 함께 일자리 및 경제적 기회가 더 많은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면서 지방과 농촌이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데, 이런 추세에 역행하는 곳도 있다. 지역농산물을 활용한 특색 있는 창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곳도 있고, 주민들이 협력해 활력 넘치는 삶터를 만들면서 인구가 늘어나는 마을도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창업에 성공한 귀촌 청년들이 지역농가와 동반성장하고 있는 하동벤처농업협회 사례, 2023년 행복농촌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전남 순천 문성마을이 대표적이다. 지역 실정을 감안한 차별화된 대응으로 소멸위기를 극복해가면서 살고 싶은 농촌을 만들고 있는 현장을 가봤다.

 

 ● 하동벤처농업협회 

2023년 11월 21일 국무회의장에 선보인 하동군벤처농업협회 회원사의 제품들.

귀촌 청년들 모여
가공사업 의기투합
해외시장까지 진출
농산물 활용 늘리고
지역 변화 이끌어 

#귀촌 청년들, 지역일자리 300개 창출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농촌융복합산업 사업자 인증기업 중에 ㈜에코맘의 산골이유식 농업회사법인(대표 오천호)과 복을만드는사람들(주) 농업회사법인(대표 조은우)이 있다. ㈜에코맘의 산골이유식은 지리산 권역의 제철 친환경 농산물을 원료로 매입해 영유아식품 및 실버푸드로 가공, 판매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복을만드는사람들(주)는 지역농산물을 활용한 저칼로리 냉동김밥을 개발하고 해외시장 개척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동벤처농업협회(회장 이강삼)에서 활동한다는 것이다.

배즙으로 유명한 슬로푸드(주)농업회사법인 이강삼 대표가 하동군벤처농업협회장을 맡고 있다.

하동군의 농촌융복합산업 클러스터 모델인 하동벤처농업협회는 21개 회원사가 있는데, 창업에 성공한 귀촌 청년들이 주축으로 연매출은 590억원에 달하고, 고용인원도 300명이다. 또, 하동군내 1500여 농가로부터 쌀, 배, 매실 등 연간 180억원 가량의 농산물을 원료로 매입한다. 하동벤처농업협회장인 이강삼 슬로푸드(주)농업회사법인 대표는 “하동벤처농업협회는 농식품 분야에 창업한 귀촌 청년들의 성장에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면서 “하동군 농산물 50% 이상을 원료로 사용하고, 하동군에서 농식품 제조업을 영위하며, 농식품 기술특허 1개 이상 보유가 가입조건”이라고 설명한다.

협회가 창립된 것은 2008년이다. 귀촌 청년들끼리 네트워크를 구축해 애로사항에 공동 대응하고, 선배들의 실패경험을 후배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가 컸는데, 이강삼 회장 역시 귀농 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수산대학 졸업 후 5년 정도 원양어선을 탔던 이강삼 회장이 귀농한 것은 1999년. 그가 귀농한 직후인 2000년대 초반에는 매년 대형 태풍이 발생해 농가들이 큰 피해를 봤다. “태풍으로 과일에 흠집이 생기고, 땅에 떨어졌다고 기능성분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상품성이 크게 하락하는 것을 목격하고, 농산물 가공에 뛰어들게 됐다”는 이강삼 회장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따르지 않아서 4년이 지났을 때쯤 다시 도시로 나가려 했다”고 회상한다. 이때 그를 잡아준 것이 차 농사를 크게 짓던 아버지다. “아버지를 따라 찻잎을 매입하러 갔는데, 40~50명의 농가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는 “너 같은 젊은 사람이 농촌에 자리를 잡으면 저 마을이 살 수 있다는 말에 느낀 게 너무 많았다”고 말한다. 이후 이강삼 회장은 대학원에 진학해 식품분야 전문지식을 쌓으면서 지역의 배, 매실, 감 등을 원료로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슬로푸드(주)도 창업한다. 무엇보다도 하동벤처농업협회 설립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배즙 가공기계에 사과를 넣으면 사과음료가 되고, 딸기를 넣으면 딸기음료가 나오니까 계절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런 시스템을 혼자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뜻이 맞는 선배들과 하동벤처농업협회를 만들고 귀촌한 후배들을 참여시켰다”고 전한다. 이후 10여 년 동안 큰 변화가 일어났다. 창업성공률이 높지 상황임에도 회원사 모두가 안정적으로 성장해온 것인데,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바이어 소개 등 시장개척에 협력해온 결과인 것 같다”는 게 이강삼 회장의 평가다.

#창업 성공, 농가와 동반성장

귀촌 청년이 주축이 돼 창립한 하동벤처농업협회 회원 모습.
귀촌 청년이 주축이 돼 창립한 하동벤처농업협회 회원 모습.

귀촌 청년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개발로 특색 있는 창업에 성공하고, 농가와 동반성장하는 농식품기업이 늘면서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료를 공급하는 농가의 소득 안정은 물론 농협예금 및 택배물량 증가 등 농촌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하동군은 2022년 817가구 1118명이 귀농·귀촌을 했고, 2023년에는 3/4분까지 1086가구 1323명이 외지에서 들어와 정착했다. 하동벤처농업협회의 활약상에 대해 이강삼 회장은 “성공사례가 나오니까 ‘너희도 귀향해서 저렇게 해보라’고 권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우리처럼 지역에 뿌리를 내린 기업들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농업과 농촌의 발전을 견인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가는 것이 지역소멸을 막아내는 길인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 전남 순천 문성마을 

문성마을은 제10회 행복농촌만들기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농촌다움 실현하고
소득창출사업 확대
공동체 활력 나누며
주민 수 늘고
평균연령은 낮아져

#행복한 삶터, 주민 2.6배 늘어

전남 순천시 주암면에 위치한 ‘문성마을’은 농식품부가 2023년에 추진한 제10회 행복농촌만들기 콘테스트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았다. 전국의 1700여개 마을이 참여해 다양한 농촌 활성화 해법을 제시한 가운데 문성마을이 가장 돋보였다. 이곳에서는 마을기업과 농촌융복합산업화를 기반으로 주민소득을 창출하고, 문화·복지를 확대하면서 성과를 내고 있다.

문성마을을 행복한 삶터이자 일터로 만들어온 이호성 사무장.

우리나라 농촌마을이 그렇듯이 수백 년을 이어온 문성마을도 주민수가 줄고, 고령화되면서 소멸위기로 내몰렸는데, 2009년 이호성 문성마을 사무장이 귀촌하면서 발전적 변화를 맞는다. 이호성 사무장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주민수가 17가구, 24명에 평균연령이 74세였고, 60세 이하는 한명도 없었다”면서 “현재는 주민수가 32가구, 62명으로 늘었고, 평균연령은 오히려 72세로 낮아졌으며, 60세 이하도 10명이나 된다”고 전한다.

도시에서 유통업에 종사하던 이호성 사무장은 건강악화로 2년만 쉬자는 생각에 문성마을을 찾았다. 그런데 귀촌해서 보니까 이런 저런 농촌마을의 문제점들이 보였다. 공터에 쓰레기가 쌓여 경관을 해치고 있었고, 농약사용량도 과다하다고 여겨졌다. 콩 1㎏이 매장에서는 6000~7000원이지만 농가출하가격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이 안타깝던 그는 예초기계부터 구입해 풀을 깎아주면서 친환경농사를 유도하고, 마을환경 정비에도 나선다. 2011년부터는 주민들과 함께 연차별 마을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해 경관환경조성, 농촌다움 실현, 공동체 활성화, 정주기반 강화 등을 추진한다. 이에 대해 이호성 사무장은 “계획이 하나씩 실현되면서 마을에 활력이 돌고, 찾아오는 마을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어르신네들이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마을공동체의 중심이 돼준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마을엔 활력, 농가 소득제고 톡톡

행복농촌만들기 콘테스트에 참여한 문성마을 주민들.

문성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마을자원을 활용한 농촌융복합산업화를 통해 마을자체를 행복한 일터와 삶터로 만들고 있다. 소득창출에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마을에서 많이 생산되는 콩을 가공해 두부, 메주, 옻된장, 옻간장 등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규모가 커지면서 2014년에 농업회사법인 서당골(주)를 설립했다. 서당골(주)는 주민 21가구가 650만원씩 출자한 마을기업으로 일자리 창출 및 농외소득 제고, 마을연금 등에 기여한다. 이호성 사무장은 “참여농가들이 매월 60만~7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면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82세 할머니가 ‘일생에서 요즘이 가장 재밌다’고 말할 정도로 주민참여도가 높다”고 말한다.
 

문성마을은 다양한 마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성마을은 다양한 마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문성마을에서는 2012년부터 ‘땅과 사람을 잇다’는 뜻의 인이지농경공동체를 운영하고 있다. 도시민은 노동과 자본을 제공하고, 주민들은 토지와 기술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농업노동력의 고령화와 휴경지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농업과 치유농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매년 주민과 도시민이 어우러지는 ‘문성마을축제’를 개최해 공동체의 활력을 증진시키고 있다. 2020년부터는 ‘자연담화 그루 경영체’를 운영하면서 농촌광관 및 휴양마을사업, 마을자원개발 등을 추진하고, 귀농인 일자리 제공 및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다음 구상은 ‘함께, 다함께 100-100-100 프로젝트’의 달성이다. 이호성 사무장은 “100세 시대에 요양원에 가지 않는 마을, 공동사업을 통한 월 소득 100만원의 평생직장, 마을의 다양성을 촉진하는 인구 100명 만들기 등이 남은 목표”라면서 말을 맺었다.

서상현 기자 seos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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