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유통 디지털 전환

[한국농어민신문 우정수 기자] 

만인산농협 스마트 APC 내부 모습.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넘어 원물 입고부터 제품 출고까지 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정보를 데이터화 해 시장분석, 재고관리, 농가관리 등에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전환이’ 전 산업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타 산업에 비해 첨단 기술 적용 속도가 더딘 농업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온라인 공간을 통한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농산물 유통 분야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효율성 제고와 물류비용 절감 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정부는 농산물 유통구조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농산물 유통체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농업의 디지털 혁신’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한 만큼 2024년 새해에는 정부의 움직임에 더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핵심 사업 중 하나가 디지털 전환을 바탕으로 한 산지 유통의 거점화와 규모화로, 이런 정부 계획과 맞물려 디지털 기술을 선도적으로 도입해 온 현장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농산물 유통 현장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들여다봤다.

#농산물 유통 디지털 전환, 어떻게 이뤄지나

산지 유통 거점화·규모화 위해
‘스마트 APC’ 100곳 도입 추진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 통해
시·공간 제약 없는 거래 나서
가락시장 ‘전자송품장’ 적용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를 거치며 농산물 분야의 비대면 거래가 확대되면서 2018년 2조9000억원 규모였던 온라인쇼핑 농축수산물 거래액이 2020년 5조7926억원, 2021년 7조1164억원, 2022년에는 8조원에 근접한 7조9817억원으로까지 성장했다.

정부는 이러한 농산물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면서 농산물 유통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 전환을 바탕으로 한 산지 대량공급체계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연중 안정적으로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유통·물류체계 기반이 취약하다는 판단에서다. 농협에서 2020년부터 추진한 ‘도매거래 온라인 시범사업’을 통해 물류비 절감(9.5%↓), 농가 수취가격 상승(약 4%) 등 디지털 전환에 대한 효과도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디지털 전환은 인공지능(AI) 및 데이터 활용기술을 융합해 기계에 사람의 고차원적 정보처리 능력을 구현하는 ‘지능정보기술’을 적용, 산업 활동의 효율화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정부는 이 같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농산물 산지 유통을 거점화·규모화 시키고, 농산물 거래 자체에도 큰 변화를 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부가 산지 유통의 거점화와 규모화를 위해 추진하는 것이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APC(농산물산지유통센터)’ 구축이다. 스마트 APC는 농산물 상품화 과정을 자동화하고, 디지털화 한 상품·거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또 전·후방 산업과의 정보 공동 활용체계를 갖춘 첨단 산지 유통시설이 바로 스마트 APC다. 정부는 오는 2027년에는 스마트 APC를 100개소까지 확대 할 계획이다.

농산물 거래의 디지털화는 지난해 11월 30일 공식 개장한 ‘농산물 온라인도매시장’이 대표적이다. 온라인도매시장은 일정 요건을 갖춘 다양한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공간 제약 없이 온라인 도매거래 플랫폼을 활용해 24시간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전국 단위 도매시장이다. 아직은 운영 초기로, 정부는 온라인도매시장의 연착륙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정부가 기존 오프라인 도매시장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디지털 전환은 도매시장 출하정보를 디지털화 한 ‘전자송품장 도입’이다. 산지에서 농산물 출하자가 PC나 스마트폰을 활용해 출하정보를 입력하면 농산물이 도매시장에 도착하기 전 전자송품장 시스템을 통해 그 내용이 실시간 공유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출하물량 조절 및 농산물 가격안정, 물류 효율화를 바탕으로 한 비용 절감, 효율적인 인력 활용, 환경 개선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부터 시범적용을 시작했다.
 
#산지 유통의 디지털 전환 선두주자 ‘만인산농협’
선별 제외 전 공정 자동화 구축…취급 품목·매출 ‘폭발적 성장’

만인산농협 APC가 파렛트 포장에 사용 중인 이동식 로봇 랩핑기. 작업 효율성을 높여준다.
만인산농협 APC가 파렛트 포장에 사용 중인 이동식 로봇 랩핑기. 작업 효율성을 높여준다.

자동포장기·로봇 등 설비 갖추고
생산라인 자동화·데이터화로
채소류 취급 유일 ‘스마트 APC’

2017년 대비 생산성 77.1%↑
단일 매출액도 500억 훌쩍
농가 평균 소득 ‘1억5000만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APC 가운데 주목 받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충남 금산군에 위치한 만인산농협(조합장 이용우)이다. 만인산농협에서 운영 중인 거점 스마트 APC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만든 스마트 APC 설명 자료에도 사례로 언급할 정도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만인산농협 스마트 APC는 채소류 유통에 최적화 한 시설·설비를 갖추고 있다. 채소류를 취급하는 APC 중에선 유일하게 ‘스마트’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채소류 특성상 사람이 직접 처리해야 하는 선별을 제외하고는 마지막 단계인 포장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에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원물 입고부터 제품 출고까지 전 과정에서 생성되는 각종 정보를 데이터화 해 시장분석, 재고관리, 농가 관리 등에 활용하고 있다.

만인산농협 스마트 APC에는 2만4562㎡(약 7443평)의 부지에 2017년 건립한 1센터와 2022년 9월 문을 연 2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1센터는 선별장과 저온저장고, 기타 부대시설로 구성돼 있고, 2센터 역시 선별장과 저온저장고는 물론 위생실과 검사실, 교육장, 생산지원시설 등이 마련돼 있다. 여기에는 자동포장기(16조)와 제품 적재에 활용하는 델타로봇(5조), 다관절로봇(2조), 상자를 자동으로 공급하는 디스태커(5조) 등의 첨단 설비가 들어가 있다.
 

박기범 산지유통센터장
박기범 산지유통센터장

그러나 만인산농협 스마트 APC가 시작부터 첨단 설비를 보유하고, 주목 받던 곳은 아니었다. 2004년 추부IC 인근의 660㎡(약 200평) 남짓한 건물에서 사업을 시작한 만인산농협 APC는 2010년까지 누적 적자가 20억 원 이상이었을 만큼 상황이 어려웠다. 이런 곳이 2011년, 현 박기범 산지유통센터장이 합류하면서 반등했다. 박기범 센터장은 “비효율적인 작업 방식 개선을 위해 자동포장기 도입부터 시작해 제품 이동 라인을 레일화 하고, 업무도 분업화 해 나가자 성과가 나타나면서 2015년에는 흑자로 전환하게 됐다”고 언급했다.

다행히 충청남도와 농식품부에서 도움을 줬고, 흑자 전환 후에는 만인산농협 자체적으로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2017년 APC를 1차 확장하고 20019년엔 델타로봇, 다관절로봇 등까지 갖추면서 도매시장 기반의 벤더(도매업자)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박기범 센터장은 “2011년 45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매출액이 2018년 180억2300만원, 2021년에는 431억6400만원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라고 밝혔다.

그 사이 만인산농협 APC의 취급 품목은 깻잎 단일품목에서 136개 품목 648개 상품으로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APC 운영 총괄 시스템 부재로 인해 여러 오류가 노출되면서 박기범 센터장은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2019년, 생산 분야 전문 컨설턴트를 영입한 것. 컨설턴트를 통해 취급 품목에 대한 데이터와 농가 데이터를 모으고 생산성 관리에 활용하면서 사업의 완성도를 향상시켰다.

이 같은 데이터화와 생산성 관리는 만인산농협 APC가 2센터 건립과 함께 스마트 APC로 진입하는 초석이 됐다. 다양한 원물, 다양한 거래처,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채소류 APC의 특성이 스마트화의 큰 걸림돌이 됐지만, 2019년부터 쌓아놓은 정보를 바탕으로 생산라인을 자동화·데이터화 할 수 있었고, 2022년 스마트 APC로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만인산농협에선 APC를 스마트화하면서 출하 농가의 취약점을 보완해 농가 생산 수준을 높이고, 검품을 강화해 원물 손실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생산 과잉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장점이다. 이와 함께 생산 라인에 설치한 전광판을 통해 진행률 등 작업 현황을 실시간 모니터링 할 수 있어 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됐고, 작업 속도와 주문량, 상품 유형에 대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작업에 필요한 적정 인원을 편성하는 것까지도 가능해졌다. 박기범 센터장은 “바이어들과 납품견적 상담을 할 때 보통 경험에서 나오는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인산농협은 자재비·운송비·일반경비 등 상품별로 파악해 놓은 데이터를 활용해 효과적으로 견적 상담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만인산농협 APC는 스마트화의 장점을 바탕으로 2017년 대비 생산성이 77.1% 확대됐고, 단일 APC에서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농협으로 성장했다. 만인산농협 출하 농가의 평균 소득도 2023년엔 1억5000만원 수준까지 올라갔다.

만인산농협 스마트 APC에선 견학 오는 다른 농협 APC들에게 스마트화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박기범 센터장은 “스마트화가 어려운 품목을 취급하는 만인산농협 같은 사례가 더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실제 그 차이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우정수 기자 wooj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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