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문제의 해결은 한국사회 지속가능성을 위한 작업”

▲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변동론과 농촌사회학, 농식품사회학을 가르치면서 한국농촌사회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생태복원의 인문학적 상상력> <세계농업과 먹거리의 정치경제학> <한국의 먹거리와 농업>, 역서로 <먹거리와 농업의 사회학> <석유식량의 종언> 등이 있다.

농업에 무관심·관심 낮아진 건
재벌 비롯한 ‘성장동맹’ 득세 탓

산업·도시화 발전 담론 벗어나
농업·농촌 중요성 부각
국정운영 패러다임 전환을
사회적 재교육 이뤄져야

‘먹거리시민’으로 연대·조직화
소비자-생산자 순환적 피드백
먹거리 문화 전반적 재검토를


“농업·농촌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불행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한국사회를 구해내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한국사회 지속가능성의 핵심입니다.” 김철규 고려대 교수는 농업과 농촌을 그 자체로만 좁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지속 가능성과 삶의 질 향상,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서 의미가 더욱 강조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부터 진행해온 ‘농업의 가치 이렇게 생각한다’ 릴레이 인터뷰의 마지막 순서로 사회학자인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농업과 농촌을 농업과 농촌만의 문제로 ‘협애화’해서는 안된다”는 점부터 강조했다. “농업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드는 것은 농민이라는 특정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 교수는 지금이 “한국사회 혹은 세계사적 발전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시점”이라며 “지금까지 고정관념으로 생각해왔던 산업화 도시화 발전 담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너무나 당연하게 진보나 발전의 요소인 것처럼 여겨져왔지만, 삶의 질, 생태적 조화, 이런 게 발전이지, 과연 돈을 많이 벌고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도시화율이 높아지는게 발전일까요?”

산업혁명 이후 서구와 전 세계에 보편적이고 유일한 것으로 여겨졌던 산업화, 도시화의 패러다임, 즉 탈농민화(depeasantization)의 위기에 대한 비판이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발전, 예를 들어 삶의 질, 생태적 조화, 행복 등의 질적인 발전이 중요”하고 그 중심에는 재농민화(re-peasantization), 재농업화(re-agrarianization), 탈도시화(de-urbanization)가 있다는 생각이다. 한국인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농업 농촌의 중요성을 헌법을 통해 부각시키고, 사회적으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패러다임의 전환은 헌법만이 아니라 국정운영에도 범정부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발전 중심적인 운영,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에서는 농식품부가 힘을 못 쓰는 거예요. 이런 문제들을 아우르려면 정부가 대통령 직속이 됐건, 이런 식으로 농업문제에 대한 재조직화가 필요할 거 같아요. 현재처럼 농식품부가 하면 먹거리 문제 조금, 농업문제 조금 얘기하고 끼워넣기 식으로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그는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어도 “아직도 많은 농업전문가들과 관료들이 경쟁력 지상주의 혹은 ‘생산주의’를 기반으로 농업을 바라보고 있다”며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고, 사회적 재교육, 대학 커리큘럼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려대 학생동아리로 시작해 도시농업을 하고 텃밭학교를 운영하면서 협동조합으로 발전한 ‘씨앗들협동조합’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만날 스펙 쌓고 토플 토익 몇 점 받고, 이런 식의 교육시스템 안에서 뭔가 다른 방식으로 삶을 기획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 점에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농업과 농촌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녹여낼 것인가가 중요해요. 한국사회의 미래는 ‘농’에 있고, 이것은 단순히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미래니까요.”

김 교수는 농업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 국민들의 관심도가 낮아진 현상에 대해 재벌을 비롯한 ‘성장동맹’의 득세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적어도 70~80년대 발전, 개발주의 전성기에는 농민에 대한 지지가 있었어요. 이는 다수 도시 근로자들이 농촌과 관계 깊은 이농자였다는 사실, 그리고 성장의 혜택을 농촌과 나눠야 한다는 공동체적 관념이 있었어요. 하지만 1997년 IMF 이후 신개발주의가 강화되면서 재벌, 보수적 언론, 신자유주의 이론가들, 도시중산층으로 구성된 ‘성장동맹’의 헤게모니에 다수의 서민, 비정규직, 저소득 도시거주자들의 불만과 절망 등으로 농업 농민과의 계급적 유대감을 버리게 된거죠.” 따라서 “앞으로 농업 농민의 위상 강화를 위해서는 도시근로자들과의 연대, 혹은 계급적 지지의 확보가 필요하고, 소비자-생산자의 사회적 연결, 생협, 로컬푸드 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먹거리 시장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아닌 자본이 지배함으로써 환경문제, 농민의 빈곤, 정치적 자주권 상실, 소비자의 식량권 위축, 먹거리 불평등 심화, 비만 등 각종 성인병 증가 등 문제를 낳고 있다고 분석한다. “시장기제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먹거리로 연결하는데, 이 과정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게 사실은 기업이죠. 대형슈퍼마켓과 카길, 몬산토, ADM 등 초국적 농식품기업, 펩시코, 네슬레 등이 어마어마한 대량 소비 시스템을 만들어 가지고, 캘리포니아 오렌지, 칠레 포도 등 전 세계에서 상시적으로 제철이 아닌 먹거리를 가져옵니다.” 곧 “먹거리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몸과 건강의 조건, 생태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담고 있고,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사회적 고리인데도, 이런 의미들을 모두 배제하고 오직 시장기제로 상품화하는 경향이 현대 농식품 체계의 특징”이란 것이다.

그러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김 교수는 ‘먹거리시민(food citizen)’을 통한 시민성 향상과 조직화에 기대를 걸었다. 먹거리시민이란 먹거리에 대한 관심, 의식, 행동, 그리고 연대 등을 고려하는 이들을 말한다. 변화를 위해선 개인만으로 한계가 있으니 먹거리시민들이 서로 조직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와 생산자들이, 생협이 됐건 생산자협의회가 됐건 조직화하고 학습하고, 먹거리시민과 조직의 순환적인 피드백을 통해 시민성을 높이고 조직의 역량도 강화해야 합니다.” 그는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도 중요하다”고 했다. “먹거리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고, 특히 육식이나 외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생각하며 먹고, 그 생각을 실천할 수 있는 문화 혁신이 필요합니다.”

김 교수는 서울시의 먹거리 조례의 예를 들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속가능한 먹거리체계를 안정화, 제도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정책이 먹거리시민, 조직, 문화의 3가지를 뒷받침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귀농, 귀촌, 도시농업 등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했다. “낮은 행복도, 높은 자살률, 저출산, 3포/5포 세대 등의 증상은 기존 한국이 추구했던 도시, 산업, 금전만을 강조하는 발전/개발주의의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난 겁니다. 농업농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국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작업입니다. 그 대안적 고민이 활성화 될 겁니다.”

그는 한국사회와 농촌의 미래를 “가능하면 낙관적으로 생각하려한다”고 했다. “대학원 지도학생 3명이 귀농귀촌해서 대안적 삶을 모색하고 있어요. 아직은 작은 시작이지만 큰 변화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새로운 농촌과 도시의 생태계를 만들어 도시와 농촌의 분리가 극복돼야 합니다.” <끝>

이상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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