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개국 헌법에 명시된 식량권, 왜 우리 헌법엔 없나요"

▲ 김종덕 경남대 석좌교수는 사회학자의 관점으로 현대 먹을거리의 문제점과 대안식량체 계를 연구하면서 한국에 슬로푸드 운동을 정착시켜왔다. 저서로 <슬로푸드 슬로라이프> < 먹을거리 위기와 로컬푸드> <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 <음식문맹, 왜 생겨난 걸까?> <산업형 농업, 식량 문제의 해결책이 될까?>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번역)> 등이 있다.

‘식량권 보장=국가의 의무’
유엔 계속 권고에도 명시 안해
책임있는 정책 추진 어려워

브라질의 ‘벨루오리존치시’
1993년부터 시민식량권 도입
우리돈 200원이면 아침 해결
저소득카드 있으면 ‘무료’

“농업은 지켜야할 공공재,
농민과 소비자는 공동생산자”
사회적 인식부터 바꿔야


“인간은 누구나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유엔(UN, 국제연합)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도 유엔이 권고하는 식량권을 헌법에 명시해야 합니다.”

김종덕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회장(경남대 석좌교수)은 “좀 늦었지만, 우선 헌법에 국민의 식량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하위법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법에서 정한 식량권 보장을 하지 않을 때의 법적 조치까지 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10여 년 전부터 ‘식량권의 법제화’를 역설해온 그는 “식량권의 법제화는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데 필요하고,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농업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량권은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서 공표된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 식량의 적절성에 대한 측면, 식량접근의 측면, 식량의 지속가능성 측면으로 구분된다. “식량권은 영양과 안전 이외에 문화적으로 적절해야 하고, 식량접근은 돈이 없어도 ‘위엄 있게’ 먹어야 하고, 식량의 지속가능성은 생태적, 경제적 기준 이외에 사회적 기준이 있어요.” 식량권은 유엔의 논의를 거쳐 ‘식량권 보장’까지 발전됐다. 이는 “개인은 식량권을 갖고, 국가는 식량권을 존중, 보호, 충족시킬 의무를 진다”는 내용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헌법에 식량권을 명시한 국가는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선진국을 포함해서 56개국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유엔 회원국이고, 유엔이 계속해서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권을 헌법에 명시하지 않아 국가의 책임 있는 정책과 조치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이래서는 국가의 식량보장 정책이 가족과 시장의 기능을 보완하는 수준에 그치고, 응급적, 혹은 시혜적인 성격을 벗어나기 힘들게 되어 식량 빈곤의 증대, 식량 불평등의 심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자급률이 낮고, 세계시장에서는 식량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고, 문제 음식의 섭취로 인해 음식관련 질병도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그는 “국가가 국민에게 안전한 식량을 공급하는 일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면서 “이런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국가가 식량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인정하고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브라질의 지방자치단체인 ‘벨루오리존치(Belo Horizonte)’ 시가 1993년부터 시민 식량권을 도입한 사례를 소개했다. “벨루오리존치의 원칙은 모든 시민은 평생 적절한 양과 좋은 품질의 식량을 공급받을 권리를 가지며, 시 정부는 시민의 권리를 지켜줄 의무가 있다는 거예요. 식량을 사먹을 권리를 정부가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공공재로 보는 겁니다.” 이런 생각으로 시는 누구나 무료나 아주 싼 값으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민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200원 정도면 가난하든 부자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나 커피, 빵, 바나나 한 개의 아침식사를 먹을 수 있고, 1000원이 안되는 가격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저소득카드를 가진 사람들은 이 모든 걸 무료로 이용한다. 그는 “이 사례는 취약계층은 물론 인근지역 소농들의 소득향상에도 큰 도움이 됐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지자체와 정부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농업은 공공재로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농업은 땅, 물, 공기, 생물다양성, 경관, 문화, 건강, 즐거움, 공동체에 두루 영향을 끼치는, 모두의 삶의 질에 관한 문제” 임을 정부와 국민, 농민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위스가 대표적인데, 유럽에서는 농업을 경제외적인 것, 공익적인 것으로 봅니다. 경제정책 범주로 보지 않고 사회정책으로 봅니다. 농업은 국민 전체의 문제니까요.”

그는 농정에 ‘조리’를 포함시켜 ‘조리하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패스트푸드의 여러 문제로 비만 많이 얘기하는데, 더 큰 문제는 조리하지 않도록 조리기술을 빼앗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먹으려면 1차 농산물을 시민들이 통제해줘야 합니다. 산업이 통제하면 제철 농산물이 아니라 싼 식량, 싼 식품, 신선하지 않은 것, 대량생산해서 첨가물 넣은 것 먹게 됩니다. 그것 먹고 나면 결국 아프잖아요. 먹을거리 관련된 생명비용 줄여서 나중에 의료비 더 부담하는 겁니다.” “국민들을 조리하게 하고, 수입농산물이 아니라 국산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찾는 ‘음식시민’으로 양성하고, 소비자 스스로를 ‘농사는 짓지 않지만 나도 농민’이라고 ‘공동생산자’임을 자각케 하는 정책이 농정의 핵심으로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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