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회 밥상 차리는 농민, 존중하고 보호해야"

▲ 강수돌 교수는 고려대 세종캠퍼스 인근에 손수 귀틀집을 짓고 살면서 유기농 텃밭을 가꾼다. 저서 및 역서로 ‘중독 사회’ ‘행복한 삶을 위한 인문학’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 ‘더불어 교육혁명’ ‘여유롭게 살 권리’ ‘나부터 마을혁명’ ‘살림의 경제학’ 등이 있다. 동네에서 3개의 인문학 모임을 하면서 복지국가도 만들고, 농업도 교육도 살리고자 한다.

독일처럼 농업의 공공성 인정
농민의 생계, 사회가 책임지고
농민은 국민의 생존 책임져야

헌법에 생명의 가치 명시
공공재인 땅 투기 막으려면
경자유전원칙 강화 마땅


“가정의 밥상은 부모가 차리지만, 온 사회의 밥상은 농민이 차립니다. 농민이 주변화 되고 가치 없는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중 받고 기본적으로 생계가 보장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미래입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농업, 농사, 농촌, 농민을 존중하는 경제, 이런 정신을 가진 정부가 나라를 이끌고, 또 이런 생각을 가진 백성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헬조선’을 탈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인근 손수 지은 귀틀집에 살며 유기농 텃밭을 가꾸고, 2005~2010년에는 건설자본으로부터 마을공동체를 지키느라 마을 이장을 지내기도 한 그를 만나 행복한 삶과 그 조건인 농업의 가치에 대해 들어보았다.

그는 지난해 6월항쟁 30주년에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명언을 상기했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라며 “민주주의가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민주주의는 곧 밥이란 명제를 실천하려면 대통령이 강조한 일자리 해법, 소득 및 부의 불평등 해소, 노사정 대타협을 통한 경제민주주의 구현이 모두 중요하지만, 여전히 공백이 많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곧 밥이란 명제에 적극 공감하면서도, 정작 밥을 만드는 농민, 농촌에 대한 사회적 위기감이 높지 않음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23% 수준인데, 그나마 석유로 짓는 농사이고, 쌀을 제외한 실제 자급률은 5%도 안 되는, 핵전쟁만큼이나 고도 위험수준”이라며 “식량자급은 자주 국방, 그 이상으로 중요한 만큼 대통령에서부터 일반시민까지 모든 구성원이 식량자급률을 높이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3월 발간된 ‘<대통령의 철학>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리더의 품격’이라는 자신의 책에서도 “이민가지 않고 헬조선에서 탈출하려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실현하는 노동부, 주거-교육-의료-노후 문제를 사회 공공성으로 해결하는 복지부, 개성있는 평등화를 이루는 교육부,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농림부 장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새마을 운동이 농촌노동력을 방출하는 과정이었다면, 녹색혁명은 부족해진 농업노동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 결국 수출산업화 정책이 농업과 생태성과 농촌공동체를 다 파괴했다”면서 “유기농업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국가장학금으로 유기농업 일꾼들을 길러내는 유기농 중심의 농업학교가 사회적 지원하에서 왕성하게 나와야 하고, 두 번째는 유기농업 공무원제도랄까, 유기농 농산물을 농협을 통해 전량 수매함으로써 농민들이 유통과 관련해서 아무 걱정도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농민들을 초중고 교사들처럼, 정책적으로 공농업으로 인정해야지만 식량자급률 23%가 아니라 70~80% 이상 끌어 올려서 미국이나 중국 눈치 안보고 우리가 할 말 하고 산다”는 것이다.

독일 브레멘에서 공부한 그는 복지와 교육처럼 농업의 공공성을 인정하는 독일의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은 기본소득과 사회복지 체계가 갖춰져 있고 농민들이 생계 걱정 없이 농사지어도 되도록 국가가 어떤 형식으로든 지원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농촌의 삶이 도시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해요. 그게 따지고 보면 ‘식량보험’인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먹는 것인데, 그것을 생산하는 주역인 농민들의 생계를 사회가 평소에 책임져 주고, 그분들은 우리의 생존을 책임져 주는 겁니다.” 이런 시스템은 돈만이 아니라 미래를 중시하는 독일의 사고방식에서 나온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독일에 간 교환학생이 어렵게 교수에게 물었답니다. 왜 독일 학생들은 등록금이 없느냐고요. 그랬더니 교수가, ‘대학은 학생 개인의 자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독일 전체의 자산을 늘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 전체가 책임을 진다’고 그랬대요.”

강 교수는 농업의 가치를 헌법에 담자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생명의 가치도 담자고 했다. “헌법 정신으로 식량주권이나 농업의 가치를 명시하는 것을 적극 지지하고요. 한 단계 더 들어가 남미 에쿠아도르와 볼리비아의 ‘부엔 비비르(Buen vivir)’처럼 헌법에 자연 내지 생명의 가치를 명시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자연 자체의 가치, 나아가 지구의 가치를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경제활동을 해야 우리 후손들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만 살고 끝장낸다면 얼마나 천박한 논리입니까?” 부엔 비비르란 ‘좋은 삶과 자연의 권리’라는 뜻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성장 지상주의 대신 자연과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이는 열대우림과 땅의 난개발을 방지하는 기초가 되고 있다.

그는 “땅을 투자와 재산증식을 위한 ‘부동산’으로 보는 시각을 지양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밥’이란 명제가 설립할 수 없다”며 “땅은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 존재가 흙으로 빚어졌다는 얘기가 있듯이 땅이란 것은 생명의 기초가 되고, 우리의 먹을거리도 땅, 곧 지구에서 나옵니다. 건설자본과 정치가, 행정가가 결합한 부패네트워크가 땅을 무참히 훼손하고, 투기심을 조장하고, 빈익빈부익부가 가속화되고 있는 현실에 눈감아선 안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현형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은 반드시 지키고 강화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조항은 남아 있는 게 중요하고, 헌법 정신에 따라 앞으로 더욱 철저히 법률을 정비해서 시행해야 합니다. 땅 투기로 가격을 올리지 않고, 농사짓는 사람들이 돈 걱정 없이 농사짓도록 해야 합니다.”

이상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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