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은

[한국농어민신문] 

얼마 전 YWCA에서 진행하는 호신술 프로그램을 우리 마을에서 했다. 간단한 호신술을 배우고 ‘스마트 안심터치’라는 호신용품을 받아 가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우리 마을에 꼭 필요한 것 같아서 담당 공무원에게 취지가 좋으니 면에서 진행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충격적이었다. “시골이라 안전하니 치안에 대한 프로그램은 필요 없을 듯한데요."

시골이라서 치안이 필요 없다니. 그저 공무원의 안일한 시각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모집 과정 중 시골 사람들 대부분이 마을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분들은 여자들이 너무 유난이라면서 이 프로그램을 비난하기도 했다. 좋은 프로그램을 추진해보려 했다가 마을 주민들의 성차별적 생각과 농촌의 치안에 대한 불감증을 보게 됐다.

정말 우리 마을은 안전할까? ‘마을 안전’에 대한 주제로 반상회를 가져보았다. 귀촌하신 분들도 이곳이 안전해서 살기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얼마 전까지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밤에 무섭지 않으세요?”라고 질문을 받으면 “사람이 안 다니는데 뭐가 무서워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람이 안 다니니까 무서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마을을 다시 돌아봤다. 이곳은 저녁 8시면 사방이 깜깜해지고, 가로등도 거의 없다. 할머니들은 밭에 작물이 안 자란다고 가로등 불을 끄기도 한다. 가장 늦게까지 문을 여는 곳은 치킨집인데 밤 11시면 문을 닫는다. 자정이 지나면 고요한 마을이 더 고요하게 바뀐다. 대로변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를 만큼 아무도 없고 조용하다.

농업에 관심이 있어서 최근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 온 한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은 밤이면 경찰들이 들고 다니는 삼단봉을 가지고 다닌다. 나는 ‘남자애가 무슨 유난을 떠냐?’면서 비아냥거렸지만, 사연을 들으니 이해가 된다. 작년에 길을 지나다가 큰 개가 목줄이 풀려 으르렁거리면서 길거리를 활보하길래 그는 파출소에 신고했다. 그러나 걸어서 2분도 안 걸리는 파출소인데 신고한 지 10분이 넘어서 경찰이 도착했다면서 시골 경찰을 못 믿겠어서 삼단봉을 항상 차고 다닌다고 이 청년은 설명했다.

반상회에서 주민 한 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서 “작년에 누가 집 앞 화분을 훔쳐 가서 신고했는데 한참 뒤에 오더라고, 알고 보니까 야간에는 파출소에 상주를 안 한데, 관할 지소인 남이면 파출소에서 오느라고 늦는 거래.”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고 호신술을 더 열심히 배우게 됐다. 농촌 마을은 이렇게 치안에 대한 시스템이 느슨하다. 사람이 없으니 CCTV도 많지 않고, 심지어는 우리 곁에 있어야 할 경찰도 멀리 있다.

농촌에 살려면 나 자신을 당연하게 지킬 수 있어야 안전하다. 하지만 농촌은 위험한 부분이 곳곳에 있다. 문을 잠그지 않고 자는 농촌주민의 안일한 생각, 대형화물차들이 다니는 국도, 목줄이 풀려 거리를 활보하는 사나운 개까지.

실제로 작년에 새마을 총무인 한 아저씨가 대형 화물차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불법주차를 하는 화물차 기사를 잡으러 가려다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아저씨는 이미 경찰을 부른 상황이었고, IC로 가기 전 큰 사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CCTV가 없었다. 결국 화물차 기사의 진술로만 사건이 종결됐다.

도시에서 살다 온 우리의 시선에서 보면 치안이 전혀 안전하지 않은데, 시골은 안전하다고 하는 걸 보면 어떤 근거로 안전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안전에 대한 시스템은 없는데 안전한 이상한 나라. 우리나라의 농촌 마을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