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은

[한국농어민신문] 

“시간되면 우리 집에 들려, 밥해줄게”, “이모, 삼촌, 우리랑 딱지치기 같이해요”, “마을에 이런 사업이 있는데 청년들이 참여해주세요”. 업무전화 외에도 이처럼 하루에 한번이상 동네 사람들의 전화를 받는다. 면사무소 공무원들과도 동네 사람 만나는 것처럼 지낸다. 도시에 살았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일이다. 요즘 나를 돌아볼 때면 ‘내가 이제 정말 여기에 정착했구나’ 싶어서 새삼 놀란다. 이런 나의 시골 라이프를 주변 사람들이 보면 “재은 씨는 여기 살면서 밥걱정 할 일은 없겠어요.”라는 말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밥 굶을 일이 없다. 마을 곳곳에서 밥 먹으러 오라고 전화가 매일 온다. 그 덕에 나는 시골로 온 뒤 체중이 20kg이나 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문의면 청년들은 처음에는 홀쭉했다가 이제는 푸근한 인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들의 몸집을 바꿔 준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중국집 사장님이다. 55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는 노부부 사장님들은 집에 와서 밥 먹고 가라고 일주일에 한번 이상 전화가 온다. 내가 가면 일반 손님 그릇보다 더 큰 그릇에 국수를 말아주는데, 국수만 먹는 게 아니라 후식으로 비타민 음료를 먹고, 과일도 먹고, 갓 담은 김치까지 주신다. 덕분에 몸도 묵직하고, 두 손도 묵직하게 집에 가곤 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78세, 84세인 노부부 사장님은 문의면 청년들이 인정한 맛집으로 유튜브에 나오고부터 마을의 스타가 됐다. 그게 너무 고마운 건지 점심도 얻어먹었는데 저녁도 해준다고 또 오라 하신다.

얼마 전 지나가다 노부부 식당에 들렸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사람들이 1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공중파 채널에 출연한 다음날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통에 저녁이 다 될 때까지 제대로 앉아계시지도 못하고 국수만 말고 계셨다. 청년들은 괜히 우리 때문에 어르신들이 난생 처음 많은 손님들을 받느라 힘드실까봐 미안한 마음에 3시간동안 서빙을 도와드리고 손님들을 응대 했다. 손님들은 엄청난 맛이 아니라 식당 주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정겨움에 방문했고, 젊은 동네 청년들이 도와주는 마음을 알고 1~2시간을 기다리면서도 짜증 없이 웃음을 짓고 가셨다.

요즘에는 어르신 뿐 아니라 초등학생과도 친해지고 있다. 작년에 도시에서 우리 마을로 이사 온 한 청년은 농사일만 하는 게 아니라 초등학생과 함께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하는 ‘마을 강사’에 초대돼 아이들과 골목놀이로 만났다가 농사짓느라 바쁜 아이 부모님을 대신해 마을 책방에 모여 게임도 하고, 책도 읽어주더니 이제는 마을 아이들을 움직이는 ‘피리부는 사나이’가 돼버렸다. 

신기하게도 마을주민들은 우리들의 작은 움직임에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말 수가 없는 한 아이는 엄마 아빠가 운영하는 식당 앞에서 혼자 킥보드를 타고 놀았는데, 우리를 만난 뒤론 호기심 많고 말 많은 아이가 됐다. 동네 사람들도 돈 버는 일보다 문의면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인해 삶의 재미를 느끼는 모습이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시골다운 일상’을 꿈꿨다. 어릴 적 봤던 TV프로그램처럼 이웃과 매일 만나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마을의 일상을 꿈꾸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TV가 아닌 현실에서 만나고 있다.

문의면에 살면서 청년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떠나는 마을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머물고 싶은 마을을 함께 만들고 있다. 어르신들도 새로운 일상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수용할 준비가 되고 있다. 우리가 중년이 될 때 쯤 모든 세대가 청년으로 인해 연결되는 모습이 당연한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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