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시장 강조·‘모호한’ 정책수단…농업계 ‘갸우뚱’

정운천 장관과 농·식품소비자와 산지의 대표자들은 지난달 24일, 농식품유통고속도로를 만듦으로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상생협력하자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돈 버는 농어업, 살맛나는 농어촌.’ 창조적 실용주의를 표방한 새 정부가 내놓은 농림수산식품분야 정책의 목표다. 새 정부가 반드시 이러한 목표를 달성, 돈을 벌려는 사람들에게 농어업이 선망의 대상이 되고, 농어촌에서 살겠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면 하는 게 현장의 기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과는 다르게 상당수 농정전문가들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고 지적한다. 농정기조와 전략에 오류가 있다는 것. 새 정부 농정의 문제와 보완사항을 8회에 걸쳐 짚어본다.

▶변함 없는 개방농정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수출산업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부를 늘려가야 한다”며 시장개방을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전제했다. 그러면서 개방에 취약한 농어업, 농어촌, 농어민에 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시각은 결국 농정을 전체경제정책에 종속시키고, 국익을 내세워 농업 쪽의 희생을 요구하는 개방농정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더구나 새 정부는 새만금 개발지 용도전환, 토지이용규제 완화, FTA체결의 다변화 등의 경제정책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어 경제 살리기를 명목으로 한 농어업의 희생이 우려되고 있다.

되돌아보면 쌀 자급을 달성한 70년대 중반이후 우리농정은 공산품수출시장 확보라는 명분 아래 주요무역상대국의 농산물수입개방 압력을 대부분 수용하는 개방농정이 대세였다. 물론 역대 정부는 개방농정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는 인구와 산업의 대도시 집중, 도·농 소득 및 생활여건 격차 확대 등을 극복하고 농어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농업농촌종합대책과 같은 대규모 투·융자사업을 추진해왔다. 그럼에도 농업생산 정체, 농업소득의 감소, 농가부채증가 등 농업과 농촌의 위기상황을 개선하는 데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WTO(세계무역기구가)출범한 지난 95년 농가소득은 2180만3000원에서 2007년 3196만원 7000원으로 47%정도 늘었지만 전국가구소득 3869만8000원과 비교하면 82.6%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농가부채는 95년 916만3000원에서 지난해 2994만6000원으로 227%나 늘었다.

결국 개방농정 기조아래에서는 정부차원의 대규모 투융자에 따른 약발이 크지 않았던 것. 따라서 전문가들은 시장을 강조하는 정책만으로 농어업, 농어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농업·농촌의 유지·발전이 국가설립의 최소기본조건이라는 인식 위에 시장실패를 국가가 보완해주는 것을 농정기조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 정책 목표 ‘두루뭉술’

농림수산식품부는 2008년 주요업무계획을 통해 ‘4800만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성장산업’이란 비전과 ‘돈 버는 농어업, 살맛나는 농어촌’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렇지만 4800만 먹을거리를 책임진다면서도 27.0%에 불과한 식량자급도를 새 정부 집권기간 동안 어느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치가 없다. 오히려 정부는 국제곡물가격 상승에 대응해 해외농업개발 등 ‘식량영토’를 확장하겠다면서 농지규제를 완화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 또 돈버는 농어업을 말하면서도 새 정부 임기 내에 전국가구소득의 82.6%에 불과한 농가소득을 얼마만큼이나 올리겠다는 목표가 없다. 더구나 농어업을 2, 3차 산업과 접목해 부가가치를 높이겠다고 하면서도 가공업체나 외식업체들에게 어떤 식으로 국산농산물을 사용하게끔 할 것인지 구체적 방안은 아직 없다.

정책 목표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해야 하는 것은 자칫 ‘안 되면 말고·’식의 농정을 막기 위해서다. “농촌은 다 죽게 돼도 농림수산식품부 공직자는 별로 달라진 것 없지 않느냐. 아침에 출근해도 저녁에 퇴근하면 되고”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적과도 상통한다.

손재범 한농연 정책실장은 “책임 있는 행정을 위해서는 식량의 적정자급목표 수치와 목표달성을 위한 예산투입 및 정책수단, 농지확보나 가격정책 등을 제시해야 한다”며 “돈 버는 농어업을 하면 농가소득이 얼마만큼 높아지는지, 도시와 비교해 열악한 주거나 교육, 복지 및 문화 등의 농촌생활여건을 얼마만큼 개선할 것인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 수치와 지표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발상만 참신, 실용성 의문

새 정부는 농어업·농어촌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미래전략으로 매출 1000억원 이상 농·식품유통법인 100개 육성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내놓았다. 또 시·군별 유통회사를 설립, 품목별 국가대표조직 및 대규모 농업회사를 육성, 시·군 뉴타운을 건설을 통한 30~40대 농업인력을 확보 등을 핵심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는 중앙에서부터 이런 정책을 획일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준비가 된 시·군, 지역역량이 모인 곳부터 상향식으로 추진한다는 방침도 정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정전문가들은 실현성이 낮은 새로운 유통조직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돈, 인력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이미 축전된 인적, 물적 자산부터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1시군 1유통회사의 경우 그 동안 직거래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추진해온 조직화, 규모화, 브랜드화, 전문화를 지향하는 연합마케팅이나 APC(산지유통센터)중심의 유통, 광역단위의 협력 및 공동브랜드육성사업 등 기존 정책과 배치된다고도 지적한다. 결국 발상은 창조적인데 정책을 실천하는 방안은 실용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헌목 한농연 농업정책연구소장은 “정책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고 전국적으로 확대해 정상 작동시킨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기존의 시스템을 바꿔 활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으며, 농협에는 그래도 훈련된 유통인력과 시설이 있는 만큼 농협을 제대로 개혁에 유통주체로 세우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장에서는 이런 정책이 과연 최선이며, 새 정부 임기 내에 실행가는 한 과제인지에 대한 의문도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농어민 의견수렴 외면

정책에 대한 신뢰는 약속의 이행과 농어민의 참여에 달려 있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농업협장 정책수립, 정부정책 사전협의 및 농정자문활동을 통한 의견수렴을 위해 ‘농업회의소’ 설치를 공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새 정부 농정방향에 대해 농어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도, 말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농어민단체들은 새 정부가 내놓은 농정방향과 추진대책이 과연 최선인가에 대한 판단과 검증을 누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물론 정운천 장관은 취임직후인 지난 3월 4일 농어업인단체 대표, 식품산업계 대표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농어업에 밀물시대를 열겠다’는 자신의 농정철학과 포부를 밝혔지만 단체대표자들의 의견을 듣는데 소홀히 한 측면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농업회의소 설치나 △기숙형 공립고교 150개 설치를 비롯한 ‘공평한 교육혜택 실현’ △농촌기초생활 보장과 여성농업인 지위 향상 △통일을 준비하는 농업정책 수립과 같은 핵심공약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등 대선약속이 벌써부터 정책의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게 농어촌 현장의 평가다.

#전문가 진단 /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

새 정부가 시장주의에 기울여져 있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농정분야에 과도하게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시행착오를 빚을 우려가 크다. 선진국들은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경쟁시스템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농가수취 농업소득의 1/3~1/2를 직접지불을 통해 실현하고 있다. 정부냐 시장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시장기능을 살리고, 정부의 실패를 줄이는 해법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집권기간 5년을 포함한 중장기 농정청사진을 마련해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 임기응변이나 인기 영합적인 정책추진으로 인한 사회적 낭비를 막아야 한다.

특히 농림수산식품부의 발족은 식품·농어업·농어촌 등 세 정책의 범주를 통합된 체제 아래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틀을 갖춘 것이다.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현행 품목위주의 조직으로부터 기능위주의 조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 곡물자급률이 30%를 밑도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식량안보전략의 강화도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농지나 산지와 관련한 각종 규제완화 조치 등 농업생산기반을 크게 위축시킬 정책들이 구체화되고 있어 새 정부의 국내농업잠재력 유지에 대한 의지가 의문스럽다.  또 새 정부는 1차 산업과 2·3차 산업의 접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종래에도 산지가공산업 육성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시도됐으나 원료, 기술, 시장 등 다양한 제약요인들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기대하는 정책추진에 있어 지역경제와의 연관, 파급효과에 관한 면밀한 분석 작업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농어민들 입장에서는 시군유통회사 등 새로운 정책들이 종래의 관련시책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기존 정책에 대한 다각적 평가와 개선방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침으로써 불필요한 마찰과 혼란을 극복하고 정책전환과정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상현seos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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