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 특수성 무시… 외부자본 끌어들여 대규모 기업화 ‘위험’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고양수출선인장작목회를 이끌고 있는 강성복 회장. 경영안정을 위한 약간의 지원만 있다면 마음 편하게 수출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 3위의 네덜란드 농업을 본받자. 대규모 농어업회사를 통해 돈버는 농업을 실현하자.” 새 정부가 글로벌 성장동력으로 꼽는 분야가 농림수산식품 수출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연 매출 1조원 이상 수출 농기업 10개를 육성하겠다고 까지 했다. 

하지만 농업성장의 견인차로서 수출농업을 육성하려면 기업 중심이 아니라 현장 농민과 주산지 중심으로, 실적 위주가 아니라 가치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새 정부 수출정책의 방향

연매출 1조 이상 10개
1000억 이상 100개 목표
간척지 장기임대
시설자금 융자 등
정부 지원 확대 밝혀


한나라당은 지난 12월 대선과정에서 농업분야 공약의 하나로 공격적 ‘수출 농기업’ 육성을 발표했다. 특히 연매출 1조원 이상의 수출농기업을 10개 이상 육성하고,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의 지역경제 기반형 농기업을 100개 육성해 농업부문의 부가가치를 높이겠다고도 했다.

이런 공약은 새 정부 출범 농림수산식품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대규모 농어업회사 육성’으로 다듬어 졌다.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대규모 농어업회사를 육성, 농식품 수출의 전진기지로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대규모 생산·가공·유통을 통해 농어업을 2·3차 산업으로 확장하는 모델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다국적 식품기업인 카길이나 켈로그, 네슬레 등을 벤치마킹하는 듯 하다.   

대규모 농어업회사란 생산·가공·유통 및 연구시설이 결집된 농업 복합체(Complex) 형태로, 농식품 기업과 농어업인이 공동 출자하는 회사를 설립·운영하되, 펀드 방식을 활용해 외부 자본도 적극 유치하는 방안이다. 정부는 간척지 장기임대(30~50년), 경지정리·용수로 개발 등 인프라 구축, 참여 농업회사에 대한 시설자금 융자 등을 맡기로 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농어업에 밀물시대를 여는 ‘창의 정책’의 핵심은 수출확대라고 강조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2012년까지 60억 달러 수출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시행계획을 마련하고 5월중 수출 대도약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연합판매사업단·APC 등 기존 조직과의 관계 모호
주인없는 회사 만들어 부실화되면 아무도 책임못져
혈세로 간척지 등 싼값 임대시 ‘특혜 시비’ 우려도
치솟는 기름값·불안한 환율 등 현장애로 해결부터


▶대규모 기업화, 실패 부작용이 무섭다=새 정부가 수출을 성장동력으로 삼는다는 자세를 보이는데 대해 전문가들과 농민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농민과 주산지 중심보다는 행정단위별 기계적인 규모화, 기업자본 중심의 경쟁력 강화에 쏠리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경계하고 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세계적 브랜드인 썬키스트 협동조합이 생긴 건 농민을 위해서지 외부자본을 위해 생긴 건 아니다”라면서 “기존 농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시군연합판매사업단이나 산지유통센터(APC) 등의 조직·유통망과의 관계가 모호한 상태서 외부자본을 끌어들여 규모화한다면 약자인 농민들은 결국 자본의 논리 아래서 수직계열화 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상지대 총장은 “카길이나 켈로그를 예로 들고 있지만 우리 현실에서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면서 “경지규모 등 농업환경 자체가 선진국과 게임이 안되는 한국 농업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또 다시 대규모 기업화의 방향으로 간다면 97년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때처럼 대규모로 망하는 길을 걸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전창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각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와 농협 등이 출자해 만든 제3섹터형 수출업체도 문제가 되는 곳이 있다”면서 “정부, 농협, 농민, 기업 등이 각각 몇 % 하는 보여주기 방식으로 주인 없는 회사를 만들 경우 나중 부실화되면 경영자만 옷 벗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헌목 한농연 정책연구소 소장은  “대규모 농업회사를 설립해 수출전문기지로 하겠다는 구상은 간척지를 싼 값으로 임대할 경우 특혜의 시비가 있을 수 있고, 추후에 다른 농민의 가입을 어렵게 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매출 1조원짜리 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의 현실성도 의문이 제기된다. 코스닥에 상장된 대표적 농기업 하림의 연간 매출액이 연간 4000억원에 못미치고, 전 세계에 5만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제너시스 BBQ의 매출이 5000억원에 지나지 않는 데, 정부의 공약만으로 목표가 달성되겠느냐는 것이다.    

▶기존 체계를 무시하면 안된다=한국 농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수출 농어업이 제대로 육성돼야 한다는데 많은 사람이 공감한다. 수출지향적 농업 성장 전략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 이후 세계 각국이 채택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그 방향은 무작정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기존 수출체계를 제대로 분석하고 그 바탕 위에서 착실하게 우리 수출농산물의 가치를 높여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성훈 총장은 “지금은 세계경제가 어려운 만큼 섣불리 국민 혈세로 기업만 배불리고 농지 풀어주다가 망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대규모 기업화보다는 농민이 유통·가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 내수기반의 체질을 튼튼히 한 다음 그것을 한류와 연계해서 수출로 연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수출농업은 농민, 농협, 브랜드조직, 산지유통센터, 유통공사 등 기존의 추진체계를 제대로 구축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지, 지금처럼 한다면 혼란스럽기만 하다”며 “농민이 종속되는 방향보다는 농민이 주체가 되고, 농민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출 현장 문제부터 해결해야=수출정책의 방향성을 가지고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수출 현장에서는 대규모 농어업회사 같은 고민보다는 치솟는 기름값, 불안한 환율, 낙후된 시설 등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제 기름값은 2002년 배럴당 26달러에서 2008년 들어 배럴당 100달러선까지 올랐다. 면세경유 값은 겨울철인 12월~2월까지 3개월 평균으로 2002/2003년 1리터 당 419원에서 2007/2008년 804원으로 두배 정도 상승했다. 이에 따라 시설채소의 2007/2008년 경영비는 전년동기 대비 10~15% 증가하고, 소득은 10~14% 하락할 전망이다. 농가들은 난방비를 절감할 경우 품질저하와 가격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류 소비를 줄이지 못하고, 시설 개선을 하려고 해도 어려운 사정에 추가적인 시설자금을 들이지 못한다.

널뛰는 환율도 수출농가와 수출업체를 괴롭히고 있는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0월 30일 달러당 900원70전까지 폭락 한 뒤 올 3월17일에는 1029원까지 상승했다가  지난 11일 975원70전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환율상승으로 조금 숨을 돌리기는 했지만, 환율하락시에는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농촌에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낙후된 시설은 농가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고 수출단가를 낮추려면 시설 현대화가 필수적이지만, 시설자금 받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수출농민들은 당장의 고유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면세유 공급과 함께 전기온풍기 등 난방장치에 대한 정부 지원 확대, 환변동에 대비한 경영안정 대책, 시설 현대화에 대한 적절한 투자를 더 절실히 원하고 있다.


세계 최고기술로 수출시장 80% 점유

#현장/ 고양 수출선인장작목회

"수출농가 경영부담 줄여주고 중국으로의 종자유출 차단을"

한국이 세계 수출시장의 80%를 점하는 품목이 접목선인장이다. 우리나라의 접목선인장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 접목선인장은 경기 고양과 안성, 충북 음성이 주산지로, 전국 200여 농가가 재배에 참여하고, 수출농가는 40여호에 달한다.

지난해 정부의 전국 원예전문생산단지 평가 결과 화훼류 부문에서 최우수단지로 지정된 고양수출선인장작목회(회장 강성복). 26개 참여 농가들의 매출액이 평균 1억원 정도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접목선인장은 네덜란드, 미국 등 20여개국에 수출된다.

농가들의 기술수준은 세계 최고로, 이런 기술력은 고양선인장 시험장과 농촌진흥청원예연구소 등 연구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접목선인장은 반복 접목하면 재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신품종 개발이 필요한데, 이런 역할을 연구기관이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우수한 작목회를 이끄는 강성복 회장도 고민이 적지 않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인건비다. “접목선인장은 접목 등 대부분의 중요 농작업이 인력을 필요로 하는데, 국내 인건비가 오르고 일손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선인장은 기계화도 어렵기 때문에 우선 품질이 좋아지고 인건비가 절감되는 양액재배를 위한 시설비 지원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건비외에도 치솟는 기름값과 환율변동은 경영주로서의 그를 괴롭히는 요소다. 강 회장은 “선인장 가격은 별로 올리지 못하는데 면세유 가격이 두배 이상, 연탄값도 50% 이상 올랐고, 환율까지 말썽을 부리는 바람에 압박을 받고 있지만, 가족 노동력이라 그냥 부담을 감수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뜸했다. 그래서 그는 수출업체에 지원되는 물류비 같은 개념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수출농가의 경영부담을 줄여주는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잠재적 위협인 중국으로의 종자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서 접목선인장을 취급하려는 한국인을 봤다”면서 “농촌진흥청 등에서 신경을 쓰고 있겠지만, 종자가 유출돼 우리와 경쟁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철저하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진단 / 전창곤 농경연 연구위원

우리농산물 브랜드가치 제고
차근차근 신뢰 쌓아야 성공


우선 기존의 유통체계, 수출체계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각종 브랜드 조직, 거점산지유통센터를 비롯한 많은 주체가 있는데, 새롭게 육성한다는 시군단위 유통회사, 품목별 대표조직, 대규모 농어업회사 등이 기존 조직들과 유사성과 차별성은 무엇인지, 중복성은 없는 것인지 따져보고 추진해야 한다. 특히 시군단위 유통회사는 현재 산지 유통이 시군이 아니라 품목별 주산지 중심으로 다양하게 이뤄지는 점을 감안할 때 기존의 유통체계와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시군단위 유통회사나 대규모 농어업회사의 경우 현재 각 지자체별로 있는 제3섹터형 수출기업의 예로 비추어 볼 때 정부, 기업, 농협, 농민 등이 각각 20%씩 출자한다고 할 경우 아무도 책임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나중 부실화되면 농업에 부담만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농산물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산물 수출은 우리 것을 단순히 외국에 팔고 국내가격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농산물에 대한 가치와 신뢰를 구축해 항구적인 시장,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브랜드를 육성해야 하는데, 브랜드란 이름만 붙인다고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에서 인정 받을 만큼 가치 있는 농산물을 만들어 내야 가능한 것이다. 이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브랜드 구축과 관리가 뒷받침 돼야 하며,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일이다.
이상길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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