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조직·정책과 충돌 불가피… 실현 가능성 ‘의문’

논산 동부농협은 딸기 등의 공동출하·정산을 통해 농가 수익을 높이고 있다.

새정부 농정의 무게중심이 유통혁신에 쏠리고 있다. 더욱이 정운천 장관이 농업CEO 출신이란 점에서 농산물 유통혁신은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강도 높게 진행될 전망이다. 농림수산식품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도 생산-가공-유통을 아우르는 유통고속도로 구축과 시·군단위 유통회사 설립 등 유통분야에 집중된다. 하지만 새정부 유통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문제 제기와 함께 강도 높은 농협개혁과 맞물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주목된다.

 ▲새정부 주요 유통정책=정책의 핵심은 농·식품 유통혁신으로 시군 단위 유통회사 설립과 품목별 국가 대표조직 육성, 대규모 농어업 회사 설립이 주요 내용이다. 유통혁신이 새정부 농업정책의 모토인 ‘돈 버는 농어업’의 실천과제인 셈이다.

이는 올해 농업예산 13조7000억원 가운데 ‘돈 버는 농어업’에 1조7000억원(12.7%)을 투자해 유통혁신 등에 사용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유통혁신은 개괄적으로 생산자를 조직화하고 산지 유통을 주도할 마케팅 주체를 육성하자는 취지다.  

개별적으로 시·군 단위 유통회사 설립의 경우 유통회사가 시군 행정주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해 지역농림수산물 마케팅을 주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유통회사는 자본금 100억원에 연간 1000억원 매출이 목표다. 유통회사가 지역생산물의 3분의 1을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조직은 전문 CEO중심 책임경영이 가능한 독립법인이고 농어업인과 지자체, 농·수협 기업 등의 출자 유치로 사업목표를 달성한다는 전략이다. 출자는 농어업인과 농겮置? 시군이 각각 20%를 의무화했다.

“20억원이나 출자할 수 있는 농업인이 어디있나”
 지자체 참여시 지방공기업화…독립경영 어려워
 품목단위 접근, 기존 유통조직·인프라 활용해야


다음은 품목별 국가 대표조직 육성으로 쌀과 한우 돼지 사과 감귤 넙치 등 연 생산액이 3000억 이상인 품목이 중심이다. 이를 통해 수급조절과 국내외 시장조사 및 시장개척, R&D, 교육훈련 등의 역할을 맡도록 했다. 정부와 농겮置?및 전문가 등 전담지원팀을 구성해 기술겦뗑?쳄?지원하는데 미국의 선키스트 연합회와 뉴질랜드 제스프리 등과 같은 대규모 품목 회사를 설립해 국제경쟁력을 갖추자는 취지다.

대규모 농어업회사 육성은 대규모 생산겙“?유통을 통해 농어업을 2·3차 산업으로 확장하는 모델이다. 생산과 가공·유통이 결합된 단지(Complex) 형태로 농·식품 기업과 농어업인 공동출자는 물론 펀드를 통한 외부자본 유치도 가능하다. 규모는 300∼500ha로 우선 간척지를 30∼50년 장기 임대방식으로 확보하고 대규모 양식산업 운영회사도 설립한다.

▲농협개혁 연계 중요=새정부의 유통정책에 대한 현장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우선 생산 농민에 대한 정책보다 농업이외 일반기업 위주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1시군 1유통회사 설립과 품목별 국가 대표조직 및 대규모 농어업회사 모두 일반 기업과 외부 자본유치를 허용하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농어업인들의 입지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이다.

또한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도 높다. 영농주체인 생산 농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시군 유통회사의 경우 농어업인의 20% 출자를 의무화했는데 실효성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없는 데다 기존 영농조합법인과 지자체 수출공사 등의 실패사례가 많은 상황에서 투자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이헌목 한농연 정책연구소장은 “시군 유통회사의 경우 자본금 100억원 기준일 때 농가지분 20%이면 20억원인데 그 정도 여유 있는 농가가 얼마나 될 것이며 지자체 참여시 지방 공기업화 될 가능성이 높고 전문경영인의 책임 독립경영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어떻게 연계되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높다. 기존 영농조합법인을 비롯해 산지전문조직과 연합사업단, 공동마케팅조직 등과의 중복이다. 이헌목 소장은 “시군 연합판매사업단이나 산지유통센터(APC) 등에 비해 신규 유통회사의 장점이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며 “연간매출 3000억원의 품목별 대표조직도 유통·가공사업을 하지 않으면서 수급조절, 국내외 시장조사 및 개척을 통한 품목해결이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새정부 농정이 농협개혁과 병행해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데 의견이 집중된다. 이는 품목별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품목조합 육성이 핵심으로 산지 농가들이 뭉쳐 대도시 대형 유통업체들과 대등한 거래교섭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취지다.

또한 시군 유통회사의 경우 지역생산 농산물의 3분의 1 이상 처리를 전제하는데 농협이 경제사업활성화 과제로 2015년 산지유통 60% 점유를 목표하고 있는 것과 맞물린다. 이헌목 소장은 “새정부 농정이 생산에서 2·3차 산업으로 확대하는 방향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품목단위 접근이 중요하고 대부분의 농산물이 흘러가는 기존 유통조직과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소장은 이런 측면에서 “농협은 2만3000여명의 경제담당인력과 시설·재원 및 경험이 축적된 조직”이라며 “품목조합 육성 등의 개혁을 통해 유통활성화에 나설 것”을 주장했다. 정운천 장관도 2일 농협중앙회 특강에서 “농협은 지자체와 함께 농업 성장동력의 하나”라며 “경제사업에서 돈을 벌어 신용사업을 도와주는 ‘선순환 구조’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 “농협이 농산물과 식품의 유통개선을 위한 역할과 기능을 획기적으로 제고해 산지중심 농협이 새롭게 전개돼야 한다”며 “중앙회 기능을 최소화하고 지역농협 단위나 연합조직단위에서 지역농산물을 활용해 식품산업을 육성하고 부가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최근 지역재단 세미나에서 “새정부 농정을 전면 추진하기 보다 파일럿(시범) 사업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기존 정책들과 연계를 살려 현실 적응성을 높이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현장사례 / 논산 동부농협 유통센터

“새 유통회사 건립 보다 기존조직 내실화 필요”

충남 논산의 동부농협 유통센터는 딸기와 수박, 배 등의 공동·선별 출하로 농가실익을 제고하는 현장이다. 계절별 품목에 따라 연중 가동하는 것은 물론 정식과 출하시기를 조절해 차별화하고 시장교섭력을 제고하는 것은 물론이다.

유통센터는 논산 10개 농협 컨소시엄을 통해 2000년 공판장으로 개장됐다. 하지만 산지유통 효율성 제고를 위해 2003년 시설의 3분의 2를 유통센터로 변경했다. 허용실 유통센터 장장은 “농가가 생산한 농산물을 책임지고 판매하는 ‘원스톱 세일링’ 기능에 충실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주력품인 딸기의 경우 ‘전원일기 논산 딸기 선별단’과 ‘양촌농협 공동선별단’ 2개 연합사업으로 140농가가 참여한다. 출하는 12월부터 다음해 5월초로 올해는 1800톤을 계획하고 있다. 규모는 하우스 900동(1동 200평) 70ha로 농가당 7동 규모다. 올해 80억원 매출을 계획하는데 농가당 출하매출 5700만원으로 순이익 3000만원 정도이다.

동부농협의 사례는 정부가 제시하는 시군 유통회사와 품목별 국가대표조직 육성 등의 새로운 접근보다 기존 정책의 보완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보여준다. 

허 장장은 “기존 연합사업단이나 산지유통센터 등이 활동하는 상황에서 새로 설립되는 시군 유통회사가 농산물을 어떻게 확보해 어디로 판매할 것인지 확실치 않아 출자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농가들을 품목별로 적정 규모로 묶어 규모화하면서 재배단계부터 상품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연합사업단과 산지유통센터, 공동마케팅조직, 공동브랜드사업 등에 모두 농가와 농협이 참여하는 만큼 철저한 진단과 함께 내실 있는 컨설팅으로 활성화를 유도하는 방안이 강조된다.

#전문가 진단 / 박진도 충남대 교수

“농산물 유통경험 축적, 농협이 제 역할 해야”

“새정부 유통정책의 올바른 방향은 농협개혁을 통해 지역 농산물 유통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박진도 충남대 교수는 “현 상황에서 산지 농산물 유통의 경험을 축적한 곳은 농협밖에 없다”며 “농협이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개혁하고 그 성과가 농민들에게 환원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새정부 유통정책의 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시군 유통회사의 경우 농어업인과 농·수협, 지자체, 기업이 각각 20% 출자한 자본금 100억원을 전제하는데 실익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도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시군 연합사업단과 공동사업법인 등이 경험인데 과연 이들이 얼마나 성공했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외부 전문경영인(CEO)을 영입해 독립경영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농업분야에서 외부 전문가의 성공사례가 드물고 이는 농산물이 공산품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같은 품목이라도 품종과 생육조건 등에 따라 품질이 다른 만큼 거레처와의 ‘관계’가 중요한데 외부 전문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다는데 실패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또한 “품목별 국가 대표조직 육성도 쌀 한우 돼지 사과 감귤 넙치 등 생산액 3000억원 품목이 대상으로 농협 품목별협의회 등의 경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규모 농어업회사 육성도 생산에서 가공·유통을 통해 2·3차 산업으로 확장하는 모델의 경우 간척지 장기임대와 경지정리 용수로 개발 등으로 과연 얼마만큼 성과를 거둘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박 교수는 “정부가 할 일은 무엇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있는 것을 잘 하도록 규제완화 등으로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광운moon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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