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 FTA, 핫(Hot)하게 스마트(Smart)하게 맞선다
⑤ ‘흑하랑’ 상추를 통한 그린바이오산업화

[한국농어민신문 서상현 기자] 

농업생명자원에 생명공학기술 등을 적용해 농업 및 전후방산업 전반에 걸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그린바이오산업이다. 여기에는 농산물이나 천연물에서 추출한 소재나 기능성 물질을 식품, 의약품, 화장품 등의 원료로 활용하면서 농가와 기업이 상생하는 모델도 있다. 원료를 공급하는 농가는 계약재배로 소득을 창출하고, 기업은 기능성제품 개발과 기 체결된 FTA를 활용해 시장을 넓히면서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에 기여할 수 있다. 기능성 상추 ‘흑하랑’을 활용한 그린바오산업화 사례가 대표적이다.

#토종유래 ‘흑하랑’ 상추, 수면건강제품으로 산업화

락투신 함량 높은 ‘흑하랑’
티백차·양갱·젤리·환·청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 ‘산업화’

장서우 전남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가 개발한 기능성 상추 ‘흑하랑’은 수면건강에 도움을 주는 락투신 함량이 풍부해 건강기능식품의 원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장서우 전남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가 개발한 기능성 상추 ‘흑하랑’은 수면건강에 도움을 주는 락투신 함량이 풍부해 건강기능식품의 원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남 함평, 화순 등지에는 식품기업과의 계약을 통해 일반 상추에 비해 2~8배 높은 단가로 원료용 상추를 공급하는 농가들이 있다. 원료를 공급받은 식품기업들은 티백차, 양갱, 젤리, 환, 청 등 다양한 형태의 제품으로 가공해 건강기능식품시장에 출시하고, 해외시장도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전남농업기술원이 8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흑하랑’ 상추를 활용한 수면건강제품의 산업화를 통해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토종유래 기능성 상추인 ‘흑하랑’은 락투신 함량이 높다. 장서우 전남농업기술원 원예연구소 농업연구사는 “락투신은 상추의 잎이나 줄기에 상처를 냈을 때 흘러나오는 흰색 액체에 포함된 성분으로 스트레스 완화, 숙면유도 등에 도움을 준다”면서 “락투신이 3.74㎎/g으로 일반상추 0.03㎎/g의 124배나 된다”고 강조한다.

장서우 농업연구사는 2005년에 상추와 인연을 맺은 후 토종엽채류 품종육성 연구를 통해 ‘흑하랑’, ‘청하랑’, ‘청하랑2’ 상추 등을 육성해왔다. 그는 ‘흑하랑’ 육성에 대해 “지역농가에서 토종종자를 수집한 후 시판 상추의 유전적 성질이 혼입된 것을 선별하고, 락토신 함량이 높은 계통의 집단선발과 고정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한다.
 

‘흑하랑’을 원료로 한 가공제품의 종류가 30여개에 달한다.
‘흑하랑’을 원료로 한 가공제품의 종류가 30여개에 달한다.

‘흑하랑’은 2011~2015년까지의 육성기간을 거쳐 2016년 9월 품종보호출원을 했고, 2019년 2월 품종등록이 이뤄졌다. 품종 육성을 추진할 당시는 생물다양성협약 중 ‘공평한 이익 공유’를 위해 2010년 10월 채택된 국제규범인 나고야의정서의 발효에 대응해 고유한 식물자원 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었다.

특히, ‘금보다 비싼 종자’라는 말이 회자되면서 FTA 대응 방안 중 하나로 기능성이나 경쟁력 있는 종자를 개발해 수출하는 ‘골든시드프로젝트’가 시작되던 때다. ‘흑하랑’도 토종종자의 활용과 기능성에 초점을 맞춰 육성했다. 장서우 농업연구사는 “2010년대 초반에는 토종식물자원을 활용한 지식재산권 확보 노력이 확대되고 있었고, 수면제 부작용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천연원료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던 시기였다”면서 “토종자원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능성 상추 품종 개발을 시작한 이유”라고 덧붙인다.


#생산자가 주도권 갖고 원료 공급

김철환 흑하랑상추공동생산자연합회장이 재배하는 ‘흑하랑’ 상추. 잎상추는 현대백화점 등지로 공급하고, 분말 및 액상 등의 원료로 가공해 건강기능식품회사로 납품한다.

전남농기원, 증식·개발 거쳐
생산자연합회에 기술 이전
원료 주도권 갖고 수요 대응
재배면적 4년 새 150배 ‘쑥’

‘흑하랑’이 소득품목으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2020년 0.2ha에 불과했던 재배면적이 2023년에는 30ha로 확대됐다. 또, 2017년 ㈜휴롬과의 업무협약을 계기로 민관협력체계를 구성하고, 건강기능식품의 개발을 추진한 결과, 지역농협을 포함해 18개 업체에서 30여종의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기업체들이 일반상추보다 높은 단가로 원료를 수매하면서 계약재배농가당 연간 2000만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흑하랑’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처럼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있지만 여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불면증에 도움을 주는 상추가 개발됐다는 소식에 사업화를 하겠다는 산업체의 수요는 많았던 반면 원료생산에 참여할 농가를 육성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김철환 흑하랑상추공동생산자연합회장이 ‘흑하랑’ 상추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20년경이다. 그는 “잎상추 생산이 까다롭고, ‘흑하랑’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시범사업 참여를 망설였다”면서 “현대백화점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해준 것이 안심하고 사업에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전남농업기술원에서 표준재배기술 확립 등을 위해 각각 흑색비닐, 백색비닐, 무피복 조건에서 ‘흑하랑’ 상추를 재배해보고 있다.

전남농업기술원에서는 2016~2017년 ‘흑하랑’ 종자 증식, 2018년 농가실증과 시장수요에 대응한 시제품 개발 등을 거쳐서 2020년부터 화순, 함평 등지의 농가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또, 시범농가가 계약재배를 통해 기능성 식품원료로 공급하고 있던 중 현대백화점이 ‘흑하랑’유통을 제안해오면서 프리미엄 쌈채소 시장으로도 진출했다. 이와 함께 전남농업기술원에서는 시범단지와 특화단지 조성 등 재배단지의 규모화를 추진하면서, 락투신 함량이 가장 높은 생산시기, 일시수확 등의 표준재배기술을 정립해왔다.

주목할 점은 2021년 ‘흑하랑’, ‘꿀잠상추 흑하랑’이라는 상표를 출원하고, 2022년에는 원료 생산 농가인 흑하랑상추공동생산자연합회에 기술을 이전한 것이다. 전남산 원료의 경쟁력 확보와 함께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생산자들이 원료의 주도권을 갖고 기업체의 수요에 대응토록 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김철환 회장은 “무분별한 종자 유출이나 재배면적 확대의 피해는 결국 생산자에게 돌아온다”면서 “생산자들이 ‘흑하랑’의 수급을 고려해 생산 및 품질을 관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고마워한다.


#수면용품시장 안착, 수출 준비도 착착

기능성 상추 ‘흑하랑’ 가공품이 2023년 6월 일본으로 첫 수출됐다.
기능성 상추 ‘흑하랑’ 가공품이 2023년 6월 일본으로 첫 수출됐다.

수면제 제한되는 사람도 먹는
천연물질로 안전·기능성 검증
일본 시작으로 수출도 추진

현재 ‘흑하랑’을 원료로 한 제품의 시장규모는 61억원 수준이다. 그렇지만 국내외의 수면용품시장이 성장세이고, ‘흑하랑’이 수면제 복용이 제한되는 계층에도 적용할 수 있는 천연물질임을 가만하면 성장가능성이 높다. “수면을 위한 기능성 원재료 시장이 매년 5%씩 증가하는 추세”라는 장서우 농업연구사는 “안전성과 기능성이 검증된 ‘흑하랑’ 상추가 수면제 부작용이 없는 소재를 찾는 소비자들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면서 시장 진입에 성공한 것 같다”고 전한다.

또한, 전남 함평에서 티백차 가공 등을 해온 천지명차 장범기 대표는 “농산물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시장은 확장 가능성이 크다”면서 “‘흑하랑’처럼 전남지역을 원료생산기지화하고, 기업체들이 국내외 시장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농가와 기업이 상생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남 함평에 위치한 천지명차는 건강기능성식품 등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전남 함평에 위치한 천지명차는 건강기능성식품 등을 제조하는 기업이다.


‘흑하랑’이 수면용품시장에 안착한 만큼 전남농업기술원에서는 개별인정형 원료화, 비교우위가 있는 다양한 제품 개발, 수출 등을 통해 시장을 넓혀갈 계획이다. 개별인정형 원료는 건강기능식품의 제조에 사용되는 기능성 원료 중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개별적으로 인정한 원료를 의미한다. 인정 업체만이 해당 원료를 제조, 판매할 수 있는 만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있다. 2023년 6월에는 ‘흑하랑’을 원료로 가공한 티백차, 젤리스틱, 반가공 분말제품 등을 일본으로 수출했다. 2022년 12월부터 일본수입업체, 흑하랑공동생산자연합회, 가공 및 유통업체 등이 협력해온 결과다. 일본은 ‘수면의 날’을 지정해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고, 수면산업시장이 14조원 규모로 형성돼 수출 전망도 밝다. 미국, 중국, 프랑스 등지에서도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해외유통업체가 현지상황에 맞는 제형의 상품개발을 진행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따라서 장서우 농업연구사는 “후속연구를 위한 R&D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면서도 “의학전문기관과 협업을 통해 개별인정형 원료를 확대하고, 비교우위에 있는 제품의 개발과 시장다변화 등을 통해 ‘흑하랑’ 상추가 농가소득 창출과 지역농업의 경쟁력 강화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상현 기자 seos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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