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서상현 기자]

사회적 농업에 대한 관련정책 및 실천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정의나 개념, 사업모델 등이 구체적으로 정립돼 있지 못한 까닭에 현장농민들에게 아직은 생소한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진흥청이 ‘사회적 농업의 발전경로 및 경영성과 분석’이란 연구를 진행하면서, 2018년 하반기에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해오고 있는 경영체를 발굴, 실태분석을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농업과 치유, 돌봄, 일자리 창출 등을 연계해 농촌공동체를 지키고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제고하는 있는 사회적 농업 사례를 소개한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공공서비스와 삶의 질이 위축되고 있는 농촌현실에서 사회적 농업을 통한 지역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농촌사회 기반구축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에서다.
 

▲ ‘꿈이자라는뜰’에서 장애청소년이 식물을 관찰한 기록일지를 쓰고 있다.

발달장애 청소년 성장 돕고
고령자 일자리도 만들고
도시민에 체험·휴양공간 제공…
농촌 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회적 농업 육성사업 주목


#돌봄, 치유에서 일자리창출까지

충남 홍성에 위치한 ‘꿈이자라는뜰’은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성장을 돕는 돌봄농장이다. 이곳의 최문철 대표는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마을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익히고, 관계를 맺고, 제몫의 일을 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건강한 일꾼, 주민으로 자라도록 돕는다”고 전한다. 충남 아산의 읍내아파트는 경로당 노인들이 나서서 ‘도시민 참여형 마을정원 조성사업’에 참여하고, 아파트 화단에 꽃가꾸기 운동을 했다. 이결과, 정이 넘치는 동네로 바뀌었다. “서로 모른 척, 수년 간 생활했던 주민들이 인사나 안부를 먼저 물어본다”는 게 권용환 경로당회장의 전언이다. 이처럼 농업활동을 매개로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취약계층의 사회적응이나 고용을 돕고, 사회통합을 유도하는 사회적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인 ‘누구나 살고 싶은 복지 농산어촌조성’의 세부내용에 사회적 농업이 포함되면서 관련정책의 추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2018년 사회적 농업 경영체 9곳에 프로그램 추진비 등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 사업’에 나서고 있다. 또한 한국형 사회적 농업 모델을 구축하고, 사회적 농업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사회적 농업 육성법’ 제정에도 나설 예정이다. 사회적 농업 실천조직을 육성해 취약계층의 자활과 고용을 유도하는 등 사회통합을 실현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농촌지역경제 및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자는 목적이다. 농촌진흥청은 2013년부터 농장 및 농촌경관을 활용해 정신적·육체적 건강 회복을 도모하는 농업활동으로 치유농업을 제안한 바 있다. 또한 2017년부터 ‘치유농업 육성 기술시범’ 사업을 해오고 있다. 농진청이 2006년부터 추진해온 ‘농촌교육농장’도 사회적 농업 실천조직으로 볼 수 있다. 도시민이나 어린이들에게 휴양, 체험 교육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서 출발해 장애인,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심리치료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유럽은 70년대부터 본격화

기존농업이 토지를 이용해 농축산물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활동이 중심이었다면 사회적 농업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적 농업은 장애인, 고령인, 다문화가족, 청소년 등 다양한 사회취약계층의 사회적응을 돕고, 노동을 통한 자존감 회복과 치유, 고용 등을 통해 사회통합을 유도하는 농업이다. 지역사회가 농업이 지닌 공익적 가치를 활용해 사회적 약자들의 복지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러 서비스 제공해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실현해나가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황대용 농촌진흥청 농산업경영과 농업연구관은 “사회적 농업은 지역사회가 농업을 매개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협동과 나눔을 공유하는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이탈리아나 네덜란드 등은 장애인에 대한 돌봄 및 재활이라는 협의적 형태에서 영역을 확장해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휴양차원의 치유농업까지 사회적 농업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전한다.

사회적 농업이란 용어를 먼저 사용한 곳은 유럽이다. 유럽의 농촌지역은 오래 전부터 장애인, 미성년자, 이주민 등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농업활동에 참여시키면서 지역사회에 통합시켜왔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정신적, 신체적 장애인을 치유하고 사회적 통합을 위한 농업활동으로 사회적 농업이 확산됐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정책영역에서 출발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적 통합이란 관점에서 농업분야로 확장돼 발전돼왔다는 것이다. 또한 유럽에서는 농촌지역의 사회적 서비스를 촉진하거나, 창출하기 위해 농업자원을 활용하는 모든 활동을 사회적 농업으로 폭넓게 정의한다. 재활, 치유, 보호고용, 평생교육, 기타 사회통합에 공헌하는 제반활동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별 문화나 사회구조, 지역사회의 필요에 따라 발전모델과 실천유형, 사회적 농업의 범위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용어 또한 사회적 농업, 돌봄농장, 녹색돌봄농장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실천유형은 크게 돌봄, 고용, 교육으로 나누고 있다. ‘돌봄’은 국가지정 돌봄 서비스 대상자나 돌봄이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이 농장에서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돌보는 활동에 참여하는 경우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돌봄농장’, 독일은 ‘보호작업장’, 프랑스의 ‘재활치료농장’,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 A유형(복지서비스, 의료서비스, 교육서비스 제공)이 해당된다. 고용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농업활동에 고용하거나 직업연수생으로 활용하는 경우다. 프랑스의 ‘사회통합농장’, 이탈리아 ‘사회적 협동조합’ B유형(사회적 취약계층을 조합원으로 고용) 등이 대표적이다. 교육은 주로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회적 농업 실천농장이 단체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는데, 프랑스 ‘교육농장’, 독일 ‘학교농장’ 등이 사례다.
 

▲ 읍내주공아파트 주민들이 도시민 참여형 마을정원 조성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회적 농업은 농촌공동체의 버팀목

우리나라도 사회적 농업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농업을 매개로 지역사회 문제해결 및 사회적 약자 등에게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해온 농업경영체가 이미 상당수 존재한다. 또한 농촌진흥청 사례조사결과,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농업 실천조직들이 농업자원을 활용해 농업·농촌의 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하면서 농촌공동체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장애인 재활형 사회적 농업’ 실천조직으로 충남 홍성의 ‘꿈이자라는뜰’, 경기 양평 ‘꽃들네이처팜’을 들 수 있다.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장애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립과 성장, 직업재활 등을 돕고 있다. 충남 당진의 ‘백석올리영농조합법인’ 같은 곳은 ‘노인일자리 창출형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고 있다. 농촌마을 할머니들이 농산물가공을 통해 일자리도 갖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강원 양양의 '달래촌', 전북 순창의 ‘예담솔’, 전북 고창의 ‘치유드림랜드’ 같은 곳은 ‘자연치유 중심의 사회적 농업’ 조직들이다. 청정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지역민들이 참여한 경영체(마을기업, 영농법인 등)가 중심이 돼 명상, 자연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일자리창출과 소득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경북 경산의 ‘원예치료센터 뜨락’이나 충북 제천의 ‘다육촌 꼬마농부’ 등은 ‘치유농장 체험활동 중심의 사회적 농업’ 경영체다. 여기는 원예치료와 사회복지분야 전문가들이 농업관련기관 및 지역사회복지기관과 연계해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교육농장들이다. 충남 아산 ‘읍내주공아파트’나 대구 북구의 ‘농부장터’처럼 ‘지역문제 해결형 사회적 농업’ 사례도 있다. ‘읍내주공아파트’는 경로당이 앞장서서 마을정원조성사업 등을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농부장터’는 도농직거래사업을 하면서 농촌공동체와 관계 맺기 등을 통해 지역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도시근교에서 유기농업을 매개로 취약계층을 치유하는 사회적 농업’ 유형도 있다. 경기 양주의 ㈜자농아카데미, 서울 은평구의 ‘향림도시농업체험원’ 등이다. 도시근교에서 지역주민,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노인, 노숙인 등에게 유기농업 재배기술이나 농업체험 등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문가인터뷰-황대용 농촌진흥청 농산업경영과 농업연구관
“지역사회 구성원 협력체계 구축 필수”

객관적인 연구자료 축적하되
지자체·복지부처 등과 연계도

▲ 황대용 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농업은 출발선상에 있다. 따라서 사회적 농업으로 당장 취약계층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경제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또, 일부에서는 사회적 농업이 장애인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고, 치유농업은 비장애인 대상의 개인적 행복을 지향한다고 구분한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사회적 돌봄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농업의 확장을 저해할 수 있다. 지역사회가 함께 농업을 매개로 장애인 재활이나 교육에 정성을 쏟는 것도 사회적 농업이고, 도시텃밭을 통해 지역의 어린이나 도시민에게 사회공동체의 소중함을 제공하는 것도 사회적 농업이다. 고령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도농직거래를 통해 농민들에게 새로운 판매 공간을 창출해주면서 사회적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례도 있다. 네덜란드나 이탈리아와 같은 사회적 농업 선진국 사례만 보더라도 장애인 돌봄, 재활과 더불어 도시민의 정서적 안정, 청소년 체험교육 분야까지 사회적 농업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형 사회적 농업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이런 추세가 반영돼야할 것이다. 농업의 다양한 가치와 치유기능에 주목하고, 농장경영주체의 사업에 대한 다양성, 향후 성장가능성 등을 고려했을 때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농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농업이 경영체의 개별적 활동이나 이윤획득이 목적이 돼서는 지속성과 확장성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사회적 농업은 지역사회 구성원인 농민, 사회보호기관, 학교 및 농업기술전문기관 등 다양한 지역사회조직의 협력을 전제해야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 농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농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마련돼야 하고, 사회적 농업의 치유효과나 지역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 자료의 축적도 필요하다. 또한 지자체나 복지부처 등과의 연계와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이런 것을 통해 사회적 농업이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데 기여하고, 이렇게 발생하는 기회비용이 농민들이나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경영체의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안 등이 중장기적으로 마련돼야할 것으로 보인다.

서상현 기자 seos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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