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해남서 첫 ‘농민수당’…“농업·농촌 유지하는 힘” 지자체 참여 불지펴

올해부터 전남 해남 농민들에겐 ‘농민수당’이 지급된다. 전국 첫 사례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농업분야에도 사회수당 개념의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농민수당’은 단순히 농가소득을 보전한다는 의미를 뛰어 넘는다. 농업이 갖는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농업·농촌을 지키는 농민들에게 일종의 사회적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농가소득을 올리는 일이 개별 농가만을 위함이 아니라 농업·농촌 전체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힘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해남군의회 의원들이 12월 21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농민수당 지원 조례안’을 의결한 뒤 기념촬영을 했다.

●해남군, 전체 농가에 지급

1만4579가구 대상, 연 60만원
친환경 농업 실천 의무 부과
조례로 안정적 재정 확보
농업 활성화 혁신적 선례 주목


올해 전국 각지에서 농민수당 도입의 필요성과 실행방안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단연 해남군의 농민수당 정책이었다.

군이 새해부터 전국 지자체 최초로 전체 농가 1만4579가구에 ‘농민수당’ 지급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농업인의 소득안정과 농업의 공익적 기능 증진을 위해 농민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군의 발표 이후 전남·전북·충남·충북·경기도를 포함한 광역지자체도 농민수당 실현의 불씨를 당기고 있다. 이에 해남군은 군민이 모두 공감하고 지역경제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이 제도를 추진 중에 있다.

현장에서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 결정으로, 농업 활성화의 혁신적인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농촌 고령화, 공동화 등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중소농·가족농을 육성해 농업의 붕괴를 막는 특단의 정책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군의 농민수당 지원계획에 따르면 농업경영체등록한 자로서, 지원대상자로 등록하는 연도의 직전 1년 이상 해남군내 주소를 두고 실경작하는 농업인에게 연 60만원을 농가별로 균등 지원한다. 연간 예산은 90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당은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남사랑상품권’으로 연 2회에 걸쳐 상·하반기로 지급된다.

이와 관련해 해남군의회도 12월 21일 ‘농민수당’ 실시를 위한 조례 의결을 확정지었다. 조례의 내용은 해남군이 제출했던 원안에서 큰 수정 없이 통과됐다. 

원안에 있었던 ‘군 재정여건을 고려해 지급 시기 및 지급액을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조문을 삭제해 지급금에 변동이 없도록 보장했다. 또 신청 조건은 전년도의 농업 외 종합소득 3700만원 이하에서 5000만원 이하로 문을 넓혔다.

지급 대상은 농업경영체 혹은 실경작 및 사육이 확인되는 농민으로, 같은 세대에는 한 명에게만 지급하도록 했다.

농민수당을 받는 농민들도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고 농산물수급 안정에 노력하는 등 공익 의무를 다 한다. 

구체적으로 9가지의 의무 이행 사항이 있다. 이중 직불금 등 각종 보조금 부정수급 금지, 가축전염병 예방법 위반 금지, 농지·산지 훼손 금지 등은 이미 기존의 현행법에서 처벌하고 있는 행위로 적발 시 이듬 해 수당을 신청 할 수 없다. 

나머지 이행 사항은 친환경 농업 적극 실천, 수급안정사업 적극 참여, 영농폐기물 스스로 처리, 적정 사육밀도 준수 등으로 아직 조례에는 이행 여부에 따른 제재가 명시되진 않았다.

이처럼 농민수당에 대한 뜨거운 반응과 달리 아직 미흡한 규정 등에 대해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시선도 공존하고 있다.

북일면에서 농·축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성일씨는 “연 60만원이라는 금액으로 결정된 것은 농민들이 행정과 협의 과정에서 농업의 공익 가치를 인정받은데 의의를 두고 한 발 물러섰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당초 농민들이 주장했던 월 20만원이 현 시점에서 가장 적합한 지원 금액이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수당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내용은 경제 활성화라는 큰 틀에서 대다수가 동의했지만 사용처가 일부 가맹점과 농협에 한정된 것은 본 의도와 맞지 않기 때문에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박순오 한농연해남군연합회장은 “농촌이 붕괴되면 도시도 지속될 수 없으며 는 곧 도시의 붕괴를 의미하을 살리지 않고는 도시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농촌을 살려내야만 도시의 문제는 물론 농촌의 문제도 해결된다“ 며 ”그런 의미에서 농촌 고령화, 도농 소득불균형 문제 해소는 물론 군의 출산정책 등 청년층 유입에 날개를 달아줄 농민수당 정책은 이제 중앙정부가 나서 전국으로 확대해야한다“고 말했다.  

해남=최상기·김종은 기자 choisk@agrinet.co.kr


●‘농민수당 조례’ 제정 일등공신 이성옥 해남군의회 의원
“농민 살리고 지역 살리는 길이라는 믿음 갖고 시작”

‘실현 불가능하다’ 말했던 이들 
지금은 만날 때마다 고마워해

농업 공익적 가치 인정받고
벼랑 끝 농민 생존권 보장
정부 실천의지 높이는 기폭제

 

“해남군의 ‘농민수당’ 전체농가 지급 결정은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벼랑 끝에 선 농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전국 최초 농민수당 지원 조례 의결이라는 첫 단추를 끼운 해남군의회의 이성옥 의원은 농민수당 지급의 의미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의원이자 농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농업·농촌의 가치를 높이는 ‘농민수당’의 물꼬를 해남군에서 가장 먼저 열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의원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농민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 어느 곳 보다 먼저 도입을 추진했다”며 “실현 불가능한 말 뿐인 공약일 것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지금은 만날 때 마다 고마움을 표현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농민수당 실현을 위한 과정을 농민들과 함께 만들어 갔던 것이 민선 7기 들어 단기간에 추진력 있게 수당 지급이 결정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중요성을 지자체에서 농업인의 재정지원 근거로 먼저 만들어 확대하는 것이 정부의 실천의지를 높이는 좋은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여 이야기했다. 

그는 다만 농민수당 지급을 추진하면서 비농업계의 우려와 반대, 지원확대 요구의 목소리에 가장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을 이어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남은 수산업 종사자들도 많기 때문에 ‘농어민수당’으로 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요구도 컸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안전한 수산물 공급, 환경관리 및 수산자원관리·보전 등 수산업의 공익적 가치도 함께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지역 특성상 농업과 어업을 겸업하는 비율이 높아 농민수당을 받는 어민들도 있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지역 소상공인 등 비농업인들을 위해 군 관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화폐로 ‘농민수당’ 지급을 결정하게 됐다”며 “매년 90억 규모의 지역상품권이 사용되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재원도 준비됐다. 해남군은 이미 2020년까지 지급할 ‘농민수당’의 예산을 확보한 상태다. 이 의원은 “대농, 기업농 위주로 편성이 됐던 농업예산의 흐름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는 만큼 기존의 농업예산 외에 가용한 예산을 조정해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최초로 시행되는 만큼 지급대상을 명확히 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조례에 포함시키지 못한 은퇴농들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실상 농업·농촌을 위해 그동안 헌신해온 고령·은퇴농들도 이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며 “군 의회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논의됐던 문제인 만큼 적절한 지원 방안을 찾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제공을 위해 친환경농업을 적극 실천하는 등 농업인들도 그에 맞는 책무를 반드시 이행해야한다”며 “첫 시도인 만큼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혜롭게 해결하길 바란다”고 농업인들에게 당부의 말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의원은 “농업활동을 통한 소득증대가 한계에 도달하고 농업환경이 어렵다보니 농민수당을 비롯해 다양한 자구책이 나오고 있다”며 “이러한 정책들 모두 농업이 발전하고 농민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주춧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남=최상기·김종은 기자 choisk@agrinet.co.kr
 

▲ 농민수당과 같은 경기도 기본소득 관련 정책을 논의할 ‘기본소득위원회’가 12월 20일 첫 회의를 열며 공식 출범했다.

●광역단체는 경기도가 가장 적극적
기본소득위 출범…농민기본소득 보장 논의 돌입

“지역화폐 통해 경제 활성화”
이재명 지사, 핵심과제로 꼽아


“어려운 농민들에게 진짜 혜택이 갈 수 있도록 농민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불필요한 다리 건설 등에 소요되는 예산을 줄여 농민들에게 지역화폐로 주면 농업 경제가 활성화되고 동네가 살아나지 않겠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11월 경기도 농업인의 날 행사장에서 꺼낸 말이다. 전남 해남의 사례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농민수당’ 도입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광역자치단체로서는 경기도가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재명 지사는 지역화폐를 통한 농민 기본소득 보장을 경기 농정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같은 달 양평군민회관에서 열린 ‘농민 기본소득을 위한 초청강연 및 토론회’에선 “일단 예산이 적으니 시범적으로 가구당 소액을 지급하는 형태로 진행한 뒤 조금씩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구체적 논의는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지난 12월 20일 공식 출범한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는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자문기구로 기획재정, 시민참여, 지역경제, 사회복지 등 4개 분야 전문가 및 지원자 59명과 경기도 관련 실국장 6명 등 총 65명으로 구성됐다. 위원장은 이재명 지사와 강남훈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공동으로 맡았다. 

앞으로 위원회는 경기도 기본소득 종합계획 수립과 기본소득 관련 정책 시행안에 대한 심의와 의결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도는 농민 기본소득과 청년배당과 같은 기본소득 정책 전반에 대해 위원회 자문을 받아 추진할 계획이다. 

더불어 경기도는 올해 가칭 ‘기본소득 지방정부협의회’를 운영해 기본소득 정책의 인지도 확산을 위한 공동 토론회 개최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에 올해를 기점으로 ‘농민수당’ 도입 논의가 더욱 활발히 이뤄지고 실제 이를 도입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늘어날 전망이다. 

이장희·김관태 기자 kimkt@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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