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진우 기자]

시장개방 면피용 도입 ‘한계’…“실질적 농가 소득보전장치 돼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농업직불제 개편 논의가 농정 핵심이슈로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안은 쌀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논·밭고정직불제 등과 통합해 품목에 관계없이 동일금액을 지급하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농민단체 등에서는 가뜩이나 소득보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농업부문에서 유일하게 작동하고 있는 쌀 변동직불제의 폐지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 현행 농업직불제 개편을 통해 농지 중심에서 농민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편, ‘농업의 공익적 가치 반영’을 전제로 농업직불제 전면개편 논의가 진행된 이유가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농정공약의 이행차원이라는 점과, 그간 반대입장이던 농민·생산자단체가 ‘일정수준의 전제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개편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황이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논의과정과 결과는 주목되는 상황이다.  


●농산물 시장개방과 함께 한 직불제

97년 경영이양직불제로 시작
친환경·쌀·밭 등 8개 운용 중

UR·WTO·FTA 대책이거나
수매제 폐지 후속대책 그쳐
대선 농정공약 ‘단골메뉴’ 등장


국내에서 운용되고 있는 농업직불제는 국내 농산물시장의 개방 역사와 궤를 같이 했다. 국내 농업에 가장 먼저 도입된 직불제는 지난 1997년 도입된 경영이양직불제로, 당시 정부는 시장개방 상황에서 농업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로 영농규모화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농업경영을 이양하는 고령 은퇴농가의 소득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전업농중심의 영농규모화를 촉진한다면서 쌀전업농육성정책과 함께 경영이양직불제를 도입했다,

이어 1997년 친환경농업육성법 제정에 따라 1999년 친환경농업직불제, 농업·농촌발전계획 상의 농가소득안정대책의 일환으로 2001년 논농업직불제, 2002년 쌀소득직불제가 도입됐다.

농업직불제 개편의 핵심 논란거리인 쌀변동직불제는 지난 2005년 도입됐다. 2004년 당시 정부는 쌀에 대한 정부수매제도를 폐지하는 양정개혁을 단행하면서 이에따른 농가손실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기존 논농업직불제와 쌀소득보전직불제를 논고정직불제와 쌀변동직불제로 변경해 쌀소득등보전직불제로 통합·개편했다.

또 농민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던 한·칠레FTA에 대한 보완책으로 2004년 FTA피해보전직불 및 폐업지원제가 도입됐으며, 이어 한·미FTA의 보완조치로 논농업직불제 도입 11년여 만에 밭농업직불제가 도입됐다. 이외 2004년 도입된 조건불리지역직불제와 2005년 도입된 경관보전직불제 등을 포함해 국내에서는 모두 7개, 쌀소득등보전직불제상 쌀 변동직불제를 별도로 구분해서 볼 경우 8개의 직불제가 현재 운용되고 있다. 

◆직불제 확대, 그간 정부는 미온적=그간 정부는 직불제의 확대운영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는 평가다. 새로운 직불제가 도입되거나 직불금 단가가 인상된 이유가 대부분 우루과이라운드협상(UR)이나 WTO 협상 및 FTA 같은 시장개방에 따른 대책이었거나, 대통령선거와 같은 정치적으로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 이뤄졌다는 점 때문이다. 정부가 아닌 정치권에서 논의가 먼저 시작됐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도입된 경영이양직불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은 UR협상. 9년여를 끌었던 UR협상이 1994년 타결되면서 시장개방이 심화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농업구조개선을 통한 경쟁력 향상을 농정의 핵심과제로 추진했다. 쌀전업농육성정책과 맞물리면서 고령농의 농업은퇴를 지원하기 위한 조치로 경영이양직불제가 도입됐다.

쌀변동직불제도 마찬가지. 가장 많은 직불제 재원이 투입되고 있는 논고정직불제와 쌀변동직불제는 2004년 정부의 수매제도 폐지 계획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도입됐다. 

한·미FTA의 국회비준 과정에서 도입된 것이라고 분석되고 있는 밭고정직불제도 도입된 시기가 2012년으로 18대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고, 또 논고정직불제의 단가 인상도 18대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의 농정공약으로 제시됐다. 지난 해 인상된 밭고정직불금도 앞서 2017년 제19대 대선과정에서 대선 공약으로 제시됐었다.

이처럼 무역협정에 따른 시장개방이나 대선 등의 대형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직불제를 새롭게 도입하거나 단가 인상이 이뤄지면서 ‘정부가 스스로 나서서 새로운 직불제를 도입하거나 단가를 인상한 적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직불제 개편과정에서 농민단체가 정부의 입장에 신뢰를 보일 수 없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 구랍 20일 국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황주홍 위원장과 정운천 바른미래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주최로 열린 직불제 개편 토론회 장면. 정부안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에 더해 전면 재검토 주장까지 나와 향후 논의과정에서의 난관이 예상된다.

●개편논의 어디까지 왔나

정부, 쌀·밭직불제 합친 후
작물 무관 동일단가 지급계획

농민단체, 3조이상 예산 전제
쌀값 안정장치 법제화 촉구

쌀 외 주요 30여개 품목대상
가격변동대응직불 도입 제안도


농업직불제 개편에서 가장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것은 ‘현행 직불제를 어디까지 바꿀 것인가?’로 보인다. 농식품부는 현행 각종 고정직불제와 쌀변동직불제를 통합하는 선에서 공익형 직불제로 전환하자는 입장이다. 예산도 현행 직불제 예산에 일정액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우선 시작하고, 이와 함께 쌀변동직불제 폐지에 따른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농식품부가 직불제와 관련된 예산을 확정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는 달리 농민·생산자단체에서는 3조원 이상의 예산반영을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면서 과잉 쌀에 대한 자동시장격리 등과 같은 가격안정장치의 법제화를 함께 요구하고 있다.

전농에서는 한발 더 나가 현행 농지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는 직불제를 농가 중심으로 전환하고, 일정 수준의 금액을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직불제 개편을 통해 농가의 기본소득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민간연구기관인 GS&J에서는 쌀변동직불제를 폐지해 고정직불화 하고, 직불금 수령의 조건으로 일정규모 이상이 농가에게는 생산조정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주요 30여개 품목을 대상으로 가격변동대응직불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가격변동대응직불이란 현재 쌀 품목에만 도입돼 있는 변동직불제와 유사한 제도를 국내 생산 주요품목으로 확대하자는 것으로 주요 33개 품목을 대상으로 적용하더라도 예산소요액이 연간 2조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GS&J는 추정하고 있다.

광범위한 직불제 개편에 대해 농식품부는 ‘역부족’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예산도 문제지만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의 직불제 전환이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또 직불제 개편 논의에서 제기될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와 이에 따라 제기될 농지법 개정논의가 ‘경자유전’논의로까지 확대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반의 농지를 부재지주가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논의자체가 사회적 이슈로 비화되면서 자칫 개편의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는 것.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 직불제 개편을 통해 그간 쌓여 있던 가격안정화, 부재지주문제 등을 모두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논의 자체가 동력을 잃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이번 개편이 완전히 완성된 제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건은 예산…공익적 가치 보상-농업경영 안정장치 동시 고려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

농업 공익·다원적 가치 보상
쌀은 물론 주요 농산물로
가격안정장치 확대 목소리


구랍 17일 2019년도 농식품부 사업계획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이개호 장관이 브리핑을 통해 밝힌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 장관은 브리핑에서 2016년 직불금 지급사례를 들면서 “2016년도에 쌀값이 12만600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변동직불금이 모두 소진될 정도로 직불금이 집행됐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0.5㏊ 미만 농가들에게 지원을 했던 금액이 놀랍게도 70만원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직불제로 농업인의 소득을 보장하는 것은 어렵다는 분석을 내놓은 셈이다.

또 일부 농민단체에서는 직불제 개편을 통해 기본직불 방식으로 이보다 다소 높은 농가당 100만원가량을 지급하자는 안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조차도 월 단위로 따질 경우 8만원 수준. 사실상 ‘농업인의 소득을 보장한다’기에는 역부족인 금액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FTA피해보전직불과 폐업지원을 제외한 직불제 규모는 최근 5년 기준·3년 기준으로 1조7000억원·2조1000억원가량, 산지쌀값이 최저치로 하락하면서 쌀변동직불금이 허용보조한도인 1조4900억원 전액이 지급된 2016년 기준으로는 2조6000억원가량이었다.

또 최근 3년간 농식품부가 농업직불제 관련 사업에 편성한 예산은 2015년 1조5684억원가량·2016년도 2조1124억원 가량·2017년도 2조8542억원 가량으로, 해당연도 농식품부 총예산 14조431억원·14조3681억원·14조4887억원의 11.1%·14.7%·19.6% 수준이었다.

이에 따라 어렵게 개편 논의 테이블이 마련될 것으로 보이는 농업직불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 반영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논의 과정에서 쌀을 비롯해 추가적으로 주요 농산물에 대한 가격안정장치 마련을 통해 농업소득을 안정화시키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농식품부도 쌀에 대해서는 가격안정장치 마련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 다만, 이를 주요 품목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확정적인 방안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농민단체 한 관계자는 “직불제 개편을 통해 농업부문에서 제기되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면 논의가 진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직불제는 농민단체 요구예산 규모에서 출발하면서 농업의 공익적·다원적 가치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고, 농업소득과 관련해서는 별도의 소득안정장치를 마련해 농민 스스로가 농업경영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직불제 개편과 함께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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