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에 열린 제13차 농어촌지역정책포럼‘. 수년전부터 지역이 주도하는 상향식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정책의 주체인 지역주민, 특히 농촌주민의 참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리더의 역량이 중요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농촌이 여러모로 힘들다. 고령화에다, 과소화와 공동화까지 겹치면서 농촌이 살아날 수 있는 ‘틈’이 좁아지고 있다. 이젠 정부가 그 틈을 열긴 힘들어졌다. 오랜 세월동안 추진해온 정부중심의 정책이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으로 눈을 돌렸고, 지역이 농정을 주도하려면 농촌주민들의 참여가 필수라는 목소리다.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농촌리더에 주목하는 이유다. 아주 작은 틈을 비집을 수 있는 농촌리더, 농업에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지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왜 리더가 필요한가

정부 성장지상주의 정책 한계 뚜렷…‘아래로부터’ 개혁 움직임
재정적 지원 얻어내고 주민들 속에서 공감대 넓히며 변화 주도
마을이 가진 고유자원 발굴하고 조직화, 자기발전동력 삼아야


2014년 12월 15일에 진행됐던 ‘제13차 농어촌지역정책포럼’. ‘농촌정책의 새로운 방향과 과제, 지역현장의 관점에서 보다’란 주제의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리더를 화두로 꺼냈다. 노승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위촉전문위원은 농어촌 지역정책의 방향으로 ‘지역핵심리더 육성’을 제시했다. 또 충남대학교 농업과학연구소의 전영미 박사는 자립형 민간거버넌스의 모범사례인 ‘홍성통’을 설명하면서 “한명의 리더가 마을을 먹여살린다”는 말과 함께, 홍성통의 주력활동 중 하나인 ‘지역리더양성’에 힘을 주기도 했다. ‘농촌의 미래는 리더로 결정된다’,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왜 리더를 강조하고 나섰을까.

우리나라 농촌이 처한 현실에 기인한다. 농촌은 이미 초고령화사회다. 농촌인구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농사를 지을수록 빚만 늘어난다. 시장개방도 가속화되고 있다. 성장지상주의식 정부주도의 하향식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기 힘든 구조다. 때문에 이제는 지역주도의 상향식 모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결국 농촌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정부가 아닌 지역이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핵심은 지역주민, 즉 농촌주민의 ‘참여’다. 따라서 농촌주민을 선도하고, 공감시키고, 이끌어가며, 조직화할 수 있는 사람, 농촌의 ‘리더’가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유정규 좋은경제연구소장은 “훌륭한 리더의 존재는 농촌지역개발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국지리학회지에 실린 ‘농촌지역 마을리더의 핵심역량에 관한 연구’에서는 “농촌지역의 성공적인 발전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경쟁력의 일환으로 마을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이 같은 농촌마을 리더의 핵심역량에 대한 관심은 마을사업의 주된 성공요인 중 하나로 마을리더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정규 소장의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이근호 수원시 마을르네상스 센터장도 “생각하는 지역사람(리더)이 나서면 지역문제는 해결된다”면서 “이제까지의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어온 중앙, 대집단의 역할은 존중받아야겠지만, 새로운 변화, 더욱 나아가는 변화를 원한다면 지역으로, 나아가 지역의 사람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만큼 리더의 역량에 따라 농촌의 변화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자연스럽게 ‘농촌리더가 하는 일’에 초점이 모아진다. 유정규 소장은 ‘충남 (농촌)지역리더육성의 기본방향과 정책과제’란 보고서에서 리더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로 자원동원을 꼽았다. 그는 “지역사회 밖의 자원을 지역사회 내부로 끌어들이는 기능과 지역주민과 함께 일하는 기능”이라고 말했다. 전자는 지자체나 중앙정부의 각종 지역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인 고용자나 재정적 지원을 얻어내고, 지역사회의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을 의미하며, 후자는 지역사회 공동의 목적달성을 위해 지역사회 내부의 주민들을 공감시키고,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곧, 농촌으로 물리적 자원을 가져올 수 있고, 이 자원을 농촌주민들과 함께 활용해 지역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농촌의 ‘리더’라는 해석이다.

정기환 국민농업포럼 상임대표는 “그동안 리더들은 정부정책을 집행하는 실행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면, 이제는 지역이 갖고 있는 고유한 자원을 잘 발굴하고, 조직화해서, 자가발전동력으로 나오도록 하는 게 리더의 일”이라며 “따라서 외부에서 공모 등으로 리더를 뽑기보다는 지역사정을 잘 알고, 사람들간의 유대관계가 깊은 리더를 지역에서 육성하고, 자연자원 뿐만 아니라 인적자원까지도 조직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더의 조건, 현장부터 알아야/전용표 한농연정선군연합회장 
“현장문제 파악하고 답 찾는 게 할 일”

다방면의 지식 가지고 있어야
정치적 역량 발휘해 해결 가능
‘혼자 할 수 없다’는 것 인정
주민 함께 더 좋은 대안 고민을

▲ 전용표 회장은 정선의 특산물인 황기를 들어보이면서 ‘마케팅’에 주력해온 그간의 활동을 설명했다.

“현장에 관심을 가지면 다 리더입니다. 리더라는 간판이 중요하지는 않죠.”

전용표 한농연정선군연합회장은 ‘리더’라는 말에 손사래부터 쳤다. 34세란 젊은 나이에 마을이장을 맡았고, 지금은 정선군한농연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는 “저는 리더가 아니에요”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20여년 가까이 농촌에서 궂은 일을 해온 그는 자신이 리더가 아니란다. 그의 평소 신념에 따른 모습인 듯 하다. 전 회장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처럼, 현장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답이 보이기 마련”이라며 “그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 ‘나는 리더입니다’라고 명함을 내밀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 회장이 말한 관심이란 무엇일까. “농업이 왜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전 회장은 “농촌사회가 초고령화된데다 다들 돈 번다면서 도시로 나가 일할 사람이 없고, 시장개방되면서 수입농산물이 밀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관심이었다. 왜 우리 농업이 어려운지에 대한 진단. 그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에둘러 말했다. 끝까지 ‘리더’라는 표현은 하지 않은 채.

전 회장의 ‘관심’에서 나온 첫 번째 ‘답’은 마케팅이었다. 그가 한농연정선군연합회장을 맡아 처음 택한 전략이었다. 전 회장은 “보조금 타는 식의 정책에 매몰되기 보다는 스스로 지역에서 살아남는 법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농민들에게는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파는 게 그 어떤 일보다 우선인데, 그렇게 하려면 청정마을 정선에서 나고 자랐고, 그러니까 품질 만큼은 보장한다는 신뢰감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발품을 팔았다. 지난해에는 울산, 대구, 부산, 구미 등 4개시에서 직거래 행사를 열었고, 인천의 경인불교대학 수미정사와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온전히 정선군 농산물을 알리기 위함이다.

전 회장은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을 물었을 때 가장 먼저 배움을 강조했다. 리더라는 말에 손을 내저었던 그였기에 질문에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그는 “예를 들어 정선군의 어느 농민이 불이익을 당했을 때, 이를 파악하고, 그 진위를 따져 농협이나 지자체에 건의를 해야 할텐데 내가 아는 게 부족하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까”라고 물은 뒤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배움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회장을 맡든, 이장을 맡든, 어느 직위를 맡는다면 다방면의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사과의 현재 시세가 이렇고, 이 가격으로 어느 기간동안 이어지면 농민들이 피해를 보고, 어느 가격대를 형성해야만 생산비 이상을 건질 수 있다는 정도의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졸인 전 회장이 5년전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한 것도 배움의 연장선이다.

마지막으로 ‘함께’를 강조한 전 회장. 배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농촌주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회장은 “혼자 끌고 나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분명 벅찰 수가 있는데, ‘내가 100% 다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고민을 공유하게 되면 더 좋은 안을 만날 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로 23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전용표 회장. 평생을 정선군에 몸담아왔던 그는 ‘농촌리더의 기본조건으로는 첫째 지역의 내부에 있으며, 둘째 농업생산을 하고 있는 활동자형 리더를 들고 있다’거나 ‘지역리더에는 내부 생산물의 판매망을 확보하는 사람, 자신이 아닌 지역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직거래망을 갖고 있는 사람 등이 있다’고 말한 전문가들의 얘기에 빗대어 보면, 그는 ‘리더’다.


●농촌 의원도 리더      
주민 목소리 대변할 ‘지역대표’…제대로 자질 검증해야


국회의원들은 지역대표성을 갖는다. 지역구에서 선출된 만큼 지역주민들의 주장을 대변해야 한다. 그 지역이 농촌이라면 당연히 농촌주민들을 대신해 국회에 그들의 목소리를 전해줘야 한다. 지역의 입장을 모아 전달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라면, 국회의원도 리더 중 한명이다. 문제는 농촌 지역의 리더인 농촌 국회의원들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윤덕 더불어민주당(전북 전주을) 의원실에 따르면, 14대 국회에서 농촌 지역구는 73곳으로 전체 선거구 중 30.8%였지만, 15대 국회에서는 49석(19.4%)로 대폭 줄어든 이후, 16대 국회는 38석(16.7%). 17대 국회는 26석(10.7%), 18대 국회는 25석(10.2%), 19대 국회는 23석(9.3%)로 매년 줄어왔20대 국회에는 또다시 5석이 축소된다. 결국 국회에서 농촌을 위한 법을 제·개정하고, 예산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

문화, 복지, 교통, 재정, 환경 등 각 분야에서 농촌이 소외받지 않으려면 그만큼 농촌 국회의원이 여타 상임위에 골고루 배치돼야 한다. 그러려면 농촌 국회의원을 늘리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지난 19대 당시 타 상임위 활동을 더 들여다보자.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는 기획재정위원회의 김영록 더불어민주당(전남 해남·완도·진도) 의원은 쌀 관세율 513%를 관철시키기 위한 ‘관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내놨다. 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소속 박완주 더불어민주당(충남 천안을) 의원은 RPC(미곡종합처리장)에 농사용 전기를 적용할 것을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이완영 새누리당(경북 칠곡·성주·고령)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농어촌 지역 쓰레기 분리수거 실태조사 및 제도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내는가 하면, 김광림 새누리당(경북 안동) 의원은 농촌지역의 통계조사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법이나 예산에 온전히 반영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당시 도시지역구 국회의원의 한 보좌관이 “농촌이 이렇게 어려웠나?”라고 반응했다는 점에서 농촌 국회의원의 의견들은 농업·농촌의 현실과 농어민의 입장을 국회에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기재위, 환노위, 산업위, 보건위 뿐만 아니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18개 상임위에 농촌 주민의 의견이 활발하게 개진돼야 한다. 한명의 외침보다는 10명, 20명의 외침이 더 힘을 받기 마련이다.

때문에 농촌 국회의원들이 제 역할을 한다는 전제에서 ‘농촌 국회의원 지키기’는 농촌리더를 육성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농촌 국회의원이 많다고 해도 그들의 능력이 약하다면 ‘숫자만 많은 농촌 국회의원’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의 자질을 검증해야 하는데, 농촌리더들이 해야 할 일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최근 거창군농업회의소가 거창군수 후보 초청 농업정책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비록 국회의원이 대상은 아니었지만, 국회의원과 함께 또다른 리더인 군수를 검증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이처럼, 농촌리더가 농촌 국회의원들이 농업과 농촌, 농민을 위해 발벗고 나서줄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농촌리더의 역량은 더욱더 중요하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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