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면적 443.2㎢ 인구 2만7419명. 총 면적 중 임야가 77.3%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 바로 전남 구례군이다. 지난 2월 현재 65세 이상 인구 고령화율 29.7%. 전남도 내에서도 가장 작은 기초자치단체인 구례군이 두 해 전 찾아든 이웃으로 활기를 찾고 있다. 구례군이 조성한 농공단지인 용방단지에 아이쿱생협이 구례자연드림파크를 조성하면서 부터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매달 1만명이 구례군을 찾도록 하는 자연드림파크는 6차산업의 중심모델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유가 뭘까?
 

▲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300km를 달려 구례자연드림파크를 찾은 아이들. 우리밀로 만든 라면과 빵·만두 등의 식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고 신기했다고.

#도시지역 소비공동체가 농촌으로

아이쿱생협 구례자연드림파크
매달 1만여명 발길 이어져
지역 일자리 460여개 창출
35년 만에 인구도 늘어나 활기


이른 아침부터 경기 하남 시청 앞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봄을 맞아 형형색색의 옷으로 차려입은 어른들과 아이들까지 40여명이 다소 들뜬 모습으로 미리 도착해 있던 버스에 오른다. 아침부터 시청 앞을 북적이게 한 일군은 광주와 하남에 살고 있는 생협회원들. 청년이 돌아오는 구례의 자연드림파크로 떠나기 위해서다.

하남시 망월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서형 군도 아침부터 들뜨기는 마찬가지.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장학습을 떠난다는 것도 좋았지만, 구례라는 곳이 처음 가보는 곳인데다 집에서 먹고 있는 식품들이 만들어지는 공장을 직접 가본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함께 가는 아이들과도 서먹하지 않다. 2년전부터 텃밭에서 함께 만나 어울렸던 아이들이고, 최근부터는 지역공동체 사업으로 서예와 오카리나를 함께 배우는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아침 8시경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12시가 다 돼서야 구례에 도착했다. 거리만도 300km. 멀긴 멀었다. 하지만 지루함도 잠시. 대학 캠퍼스처럼 조성된 구례자연드림파크에 도착해 김치공방·우리밀공방·라면공방·육가공공방 등을 돌아보면서 ‘내가 먹는 라면이, 내가 먹는 돼지고기가 저렇게 만들어지는 구나’하는 생각에 신기했다.


#아이쿱이 구례로 간 이유  

이날 광주와 하남의 소비자들이 아이들을 동반해 찾은 곳은 바로 아이쿱생협이 운영하는 구례자연드림파크. 자연드림파크가 구례에 자리를 튼 것은 지난 2014년 4월이다. 구례군이 조성한 용방농공단지를 매입하고, 여기에 라면공방을 비롯해 우리밀공방, 김치공방, 육가공공방 등과 저온저장물류센터를 세워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초 용방농공단지는 전자나 IT기업의 입주를 염두에 두고 조성된 단지였다. 식품가공부분으로 조성된 택지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구례군이 조성부지 모두를 아이쿱에 내주면서 지역단위의 친환경식품클러스터가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농업이 중심인 기초자치단체와 소비자협동조합인 아이쿱이 상호 상생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결과, 구례자연드림파크에는 현재 일자리 460여개가 만들어졌고, 지역 농산물 수급에도 일조를 하고 있다. 특히 자연드림파크가 들어온 후 35년만에 인구가 증가하는 일도 벌어졌다. 대도시 주변 시군이 아니라 농업중심의 지자체로서는 이례적인 일.

460여개의 일자리 중 구례군에 거주하는 사람이 80%를 차지하고, 전남도로 지역을 넓히면 90%이상이 지역민이다. 다른 곳에 거주하던 직원들도 구례자연드림파크에서 근무하려면 주소를 구례로 옮기도록 한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지역과 함께 하겠다는 협동의 마음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서 이웃이 된 사람들

“건강한 안전먹거리 출발은
튼튼한 농민 생산자로부터”
아이들도 자연스레 농촌 체험
국민농업 발전 디딤들로

 

하남에서 생협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는 박정훈 씨. 왜 생협 활동을 하는지 물었다. ‘농업·농촌을 위한 마음의 발로’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달랐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서 회원이 됐다”는 그는 “생협 활동의 시작은 조합원으로서, 소비자로서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머리를 풀었다. 이른바 ‘물품 구매가 목적인 구매 조합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나만 좋은 것을 먹는 것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다른 소비자들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것, 그리고 ‘지속적으로 좋고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농민들도 튼튼해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이 뒷받침이 돼야만 우리 아이들도 건강한 환경과 삶을 누릴 수 있겠구나’하는 것으로 사고가 확장되면서 현재는 활동가로 활약하고 있다.

박정훈 씨는 “생협은 기본적으로 윤리적인 소비라는 것을 추구하는데, 소비자의 입장에서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을 바라게 되고, 이런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생산자에게 제대로 된 대가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런 것들을 소비자와 농촌이 이웃이 되어 서로가 나누고, 또 아이들에게도 상생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히 박 씨는 “생협에서는 특별하게 구매하지 않은 물품에 대해 선금을 내는 제도가 있는데, 월마다 일정금액을 선수금으로 내고 있다”면서 “먼저 선금을 내놓고, 물품을 구매하면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쿱이 선수금제도를 도입한 것은 지난 2011년. 조합원이 앞으로 이용할 물품대금을 이용전에 납부하는 제도로, 생산자들이 집중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영농시기에 선계약금을 지원하거나, 수매시기 수매자금으로 사용한다. 지난해 경우 선수금을 신청한 회원이 5만8435명에 자금도 179억5000만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박정훈 씨는  “시장경제에서 자신이 구매하지도 않는 예상 구매액을 사전에 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그만큼 수매선수금은 높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며, 세계 협동조합의 역사에서도 매우 드문 경우”라고 말했다.

#이제 서울 안가도 돼

대학 캠퍼스처럼 지어진 여러 공방뿐만 아니라 구례자연드림파크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개봉영화관과 매월 열리는 록페스티벌이다. 민경진 구례자연드림파크 이사장은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이용해 가공하는 농식품클러스터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에 문화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말한다.

개봉영화 한편을 보려고 해도 대처로 나가야 하는 것이 농촌지역의 현실인데, 전남도 내에서도 가장 작은 구례군에 개봉관이 있다. 구례자연드림파크의 자랑 중 하나다. 지역에서 접하기 힘든 개봉관이다 보니 연간 영화 관람객만 5만명 정도가 이곳을 찾는다.

“수도권에서 보면 300km나 떨어져 있기 때문에 '누가 여기까지 찾겠느냐' 하지만 지난해 유로 이용객만도 11만명이나 됐다”면서 “특히 도시하면 볼거리와 즐길거리 많다는 것으로 농촌지역과 비교가 되고 또 이런 것 때문에 도시를 동경하는데, 이를 해소해보자는 뜻으로 매달 ‘클럽-데이’를 정해 홍대 인디밴드나 지역 가수들을 불러서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구례군과 록페스티벌을 열었는데 무려 4000명이나 되는 관객이 들기도 했다고.

없어졌던 산부인과도 생겼다. 민 이사장은 “가능하면 구례의 기존 상권과 겹치지 않는 선에서 우언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찾다보니까 3~4년 전에 산부인과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됐다”면서 “다른 의사들과 업무가 겹치지 않고, 또 산부인과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다문화가정이 많다는 점 등에서 지원을 통해 구례보건의료원 내 산부인과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아아쿱은 매년 2억원을 이 산부인과 운영에 지원할 계획이다.

재미있는 것은 또 있다. 자연드림파크 내에는 기숙사가 있는데, 입주를 하려는 직원은 무조건 주소지를 구례로 옮겨야 한다. 민 이사장은 “기업이 들어오면 인구도 늘어나야 하고, 같이 상생해야 하지 않느냐는 차원에서 기숙사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모두 주소지를 구례로 옮기도록 했다”면서 “하다못해 자동차세도 더 내고, 또 소득세도 내고 하면서 지역 세수를 높일 수 있고, 인구유입도 가능하다는 차원에서였다”고.


추가로 5만㎡(1만5000평)가량의 농공단지를 추가로 매입해 내년이면 다른 공방들이 들어선다. 또 채소단지 9만9000㎡(3만평)가량을 구입해 재배농민들과 함께 밀과 마늘을 심고 재배한다. 조합원들이 둘러보고 ‘어떻게 키워지는지, 그리고 공방에서는 어떻게 가공이 돼서 납품이 되는지’를 직접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이와 함께 구례를 찾은 소비자들이 관광을 하면서 지역경제에 일조하도록 한다는 계획.

민경진 이사장은 “구례가 작은 군이기는 하지만 사라져서는 안되는 것이고, 소비자와 농민이 결국은 이웃이라는 관점 속에서 농업·농촌이 살아야 우리의 안전한 먹거리 공급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농업에 대한 꿈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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