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화두인 복지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수혜 대상의 범위나 서비스 범주에 대한 이견도 나타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복지 정책의 확대라는 큰 흐름에서 모아지고 있다. 농촌 복지의 필요성도 여러 목소리들 중 하나다. 고령화와 이로 인한 질병·빈곤 등에 따른 취약계층화와 도시에 비해 열악한 정주 인프라 등의 여건 속에 놓인 농촌은 복지 정책이 가장 필요한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복지 정책의 사각지대라는 취약성도 함께 갖고 있다. 농촌 복지에 앞장서는 움직임이 일부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목표 지점은 여전히 멀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양적·질적 측면 모두 말이다.


농촌 복지, 농촌 여건은

농어촌 보건의료기관 5145개소…도시의 10% 수준
문화·여가, 교통, 편의시설 등 군단위도 접근성 취약


농촌 복지는 고령인구 및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노인 복지, 여기에 농어촌이라는 지역특수성을 갖고 있는 데다 의료, 교육, 교통,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요구들이 복합돼 있는 분야다.

농촌 복지 추진의 핵심으론 ‘서비스 접근성’이 꼽히고 있다. 의료분야를 살펴보면 농어촌 주민들의 질병 발생률은 높으나, 병·의원 등 의료 부문의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해 보건 의료 서비스의 도·농간 격차가 매우 큰 상황이다.

2013년 농어업인 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농어촌 보건의료기관 수는 5145개소로 도시(5만4000여개)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평균 병·의원 수도 마찬가지다. 2011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선 도시(시·구)는 266개소인 반면 군 단위는 22개소에 머물고 있다. 면 단위 이하 농촌 지역에선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조차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읍·면 경계를 벗어난 지역의 병·의원과 종합병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각각 51.2%, 89.7%에 달한다.

다른 정주 인프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여가, 교통, 편의시설 인프라 역시 면 단위는 물론 군 단위의 접근성도 취약한 여건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0년 농어촌 삶의 질 실태와 정주만족도’ 자료에 따르면 면적당 문화기반시설 수(개소/㎢)는 농어촌 0.01, 도시 0.13로 10배 넘는 격차를 보이고 있다. 기초자치단체 중 극장 부재 지역도 적지 않는 것이 현 주소다.

박대식 농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정주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여건상 농촌 지역에 상주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고령 인구라는 점에서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주요 의료시설 또는 종합복지사회관, 문화·편의시설 등이 시군 소재지 중심으로 이뤄져 있는데, 면 단위에서의 접근성을 높이는 쪽에 초점을 맞춰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령인구가 30%에 달하는 초고령화 지역인 포천 관인면은 관인농협이 구심점이 되고, 지역 관련 기관들 간 협력을 통해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전개하고 있다. 사진은 지귀례 할머니 댁에서 의료지원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

●포천 관인농협    
“의료·찜질·이동목욕까지…농협서 해드려요”

 

복지 사업 어려움 크지만 
지역주민 요구 적극 수용
거동 불편한 노인들에
직접 찾아가 서비스
심리적 안정감은 덤으로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은 전체 인구가 3100여명에 불과한 전형적인 수도작 중심의 농촌 지역이다. 하지만 인구의 30%가 65세 이상 노인층에 해당될 정도로 노인 인구 비중이 높다. 포천시의 노인인구 비중 15%의 2배가량 된다. 특히 노인 인구 중 80대 독거노인이 많아 절대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다. 이런 속에서 다른 지역과 달리 농협이 선도적으로 나서 농촌 복지 사업을 펼치고 있는 보기 드문 사례가 주목 받고 있다.  

관인농협(조합장 안황하)은 2006년 관인노인복지센터를 설립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복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주요 추진사업은 의료지원, 밑반찬 지원, 찜질서비스, 이미용 서비스, 이동목욕 서비스, 수지침 서비스, 주거환경개선, 문화 서비스 사업 등 전 분야에서 골고루 이뤄지고 있다. 농협 인력과 센터 인력 외에도 지역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적극 참여해 함께 구슬땀을 쏟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인 부분이다.

지자체와의 협력도 눈에 띈다. 지자체의 재정 지원과 관인농협의 의지 및 노력이 어우러져 지역 주민들에게 긍정적인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지역농협 입장에선 복지 사업을 10년 동안 끌고 오기까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관인농협은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적극 받아들여 복지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농협중앙회가 수여하는 ‘2015년 지도사업 선도농협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안황하 조합장은 “관인 지역은 수도작 중심의 전형적인 소규모 농촌인 특성상 노인 인구 비율이 여느 곳보다 많아 일찌감치 복지 사업의 필요성을 깨닫고 다양한 복지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며 “별도의 장례식장도 운영해 농협 조합원뿐만 아니라 주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선=관인면 삼율리의 지귀례(82) 할머니는 오랜만에 찾은 정지영 포천시 중리보건진료소장과 용명숙 관인농협 관인노인복지센터 소장의 얼굴을 보자 반색하며 안부를 묻기에 여념이 없었다. 만성 관절염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에 마음이 들뜬 모습이었다.

정 소장은 혈압 및 당뇨 수치, 복용약 등을 점검하며 일일이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정 소장은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에 진료소가 있는데, 교통편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일일이 가정 방문을 하고 있다”며 “어르신들은 만성 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복용하는 약도 감기나 두통 등 중복 남용하는 경우가 많아 하나하나 묻고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명숙 소장은 “이렇게 의료지원 서비스를 나오면 어르신들은 심적인 안정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를 느끼는 것 같다”며 “지역 보건소 및 지역 병원과 연계해 찾아가는 의료지원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을중(82) 할머니는 다음날 속초 나들이를 앞두고 공교롭게 미용 서비스를 받게 되자 연신 웃음을 지었다.

이 할머니는 “나들이 가는 줄을 어떻게 알고 머리까지 다듬어 주나 몰라”라며 “10여년 전에 할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게 된 지 오래됐는데, 이렇게 찾아와 머리를 다듬어주니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용명숙 소장은 “관인면 지역은 독거노인들이 많은데, 복지 서비스를 해드리기 위해 집에 방문했다가 돌아가신 분이 있어 신고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용 소장은 “복지 서비스를 하기 위해선 어르신들이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인력 부분과 차량 지원 등이 기본이 돼야 하기 때문에 애로점이 적지 않다”며 “인력과 예산 문제 등으로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서비스를 해 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거창군 행복나르미센터가 보건(의료)·복지를 연계한 대면서비스로 지역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왼쪽부터 거창군 서부행복나르미센터 홍수영 간호사, 이미경 센터장, 김경연 통합사례관리사.

●거창군 행복나르미센터
“빈곤층 등 취약계층 중점관리…원스톱 서비스”


2014년 1월 출범한 거창군 행복나르미센터는 개별적으로 이뤄졌던 보건(의료)·복지 서비스는 물론 기타 생활지원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하고 있다. 복지공무원과 통합사례관리사, 보건간호사가 함께 취약가정을 방문, 필요한 보건·복지 서비스를 발 빠르게 제공한다. 희망복지지원단이 행복나르미센터의 중앙센터를 맡고 있으며, 보건·복지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권역별로 아림행복나르미센터, 동부행복나르미센터, 서부행복나르미센터가 운영 중이다.

무엇보다 행복나르미센터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빈곤층은 물론 지적장애나 치매를 갖고 있음에도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중점적으로 관리한다. 이른바 ‘복지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부행복나르미센터가 관리하는 50여 가구 중 상당수가 지적장애나 치매를 앓고 있으며, 기초생활수급 대상 여부와 상관없이 실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도움을 준다.

이미경 서부행복나르미센터장은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대상에 탈락한 빈곤층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동안 방치된 부분이 있다”며 “행복나르미센터의 가장 큰 장점은 가족이 있어도 돌봄이 안 되는 경우를 발견해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산은 관리하는 가구당 연간 50만원 정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인이나 기업, 복지재단의 후원이나 재능기부를 받는 것도 행복나르미센터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이 센터장은 “보건 서비스의 경우 정부의 긴급의료비 지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조건이 안 될 경우 사회복지재단이나 거창군의 ‘아림천사’를 활용하는 등 기존의 복지제도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선책을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농협이나 축협, 기업체는 물론 김밥이나 빵, 곰국 등 작지만 소중한 도움을 주는 분들의 후원이나 미용서비스 등의 재능기부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선=거창군 위천면에 거주하는 조모(48) 씨는 지적장애가 있고, 당뇨병을 앓고 있다. 기초수급자인 조 씨는 돌봐줄 가족이 없다보니 약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한때 당 수치가 650을 넘어(정상 160이하) 당뇨검사기로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혼자선 병원에 갈 수 없는 조씨가 자칫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 거창군 서부행복나르미센터가 조씨를 도왔다.

서부행복나르미센터 홍수영 간호사는 “당수치가 높은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자각증상이 없어지고, 신장이나 간 등 장기손상이 올 수 있어 곧바로 병원치료를 받게 했다”며 “현재 당수치가 350정도로 여전히 높아 위급가정으로 분류하고 수시로 방문해 건강상태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간호사와 동행한 이미경 센터장과 김경연 통합사례관리사는 집안 곳곳을 점검했다. 약과 밥을 잘 먹고 있는지, 고장 난 시설물은 없는지, 난방기름은 남아있는지 등이 점검리스트다. 김경연 통합사례관리사는 “약을 먹었다고 자꾸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 약봉지를 확인하고, 무작정 굶는 경우도 있어 밥을 잘 먹고 있는지 쌀과 반찬 등을 살펴봐야 한다”며 “마당 수돗가를 고치면서 남은 시멘트로 금이 간 집벽을 보수했고, 조만간 주방의 수도꼭지를 교체해 드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거창군 북상면 백모(72) 씨에게도 서부행복나르미센터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극심한 추위를 견디다 못해 딸집에 피신을 다녀올 정도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추위걱정을 하지 않는다. 서부행복나르미센터가 보일러를 수리해주고 연탄을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보일러 수리는 재능기부를, 연탄의 경우 복지재단인 ‘연탄은행’의 도움을 받았다.

“연탄이 되니까 너무 좋아요. 아직도 아침엔 추운데, 따뜻하니까 말도 못하게 좋아요. 방이 따뜻해요. 정말 고마워요.” 백씨가 활짝 웃었다.

고성진·이기노 기자 kosj@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