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줄면서 학교가 사라지고 있는 농촌.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 농민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출퇴근을 감내하지만 늘어난 생활비에 신음하고, 아이들은 학교를 찾아 등하교 버스에 몸을 맡기거나 기숙형 학교입학을 강요받는다. 농어촌 학교통폐합이 불러온 새로운 형태의 ‘탈농촌 현상’이다. 우리 농업·농촌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파괴하고, 농민들마저 농촌을 떠나게 하는 농어촌학교 통폐합 문제를 짚어본다.
 

 
▲ 거창읍에 위치한 ‘거창중학교(위)’와 고제면에 위치한 ‘거창중학교 고제분교장(아래)’을 지난 3월 30일, 같은 날 30분 간격으로 촬영한 모습. 잔디밭이 깔린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는 거창중학교와 달리, 고제분교장에는 학생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시설도 매우 낙후돼 있었다.

●출퇴근·기러기 농민 급증, 거창군을 가다

고제면 40~50대 절반이상
거창읍에서 출퇴근 중
사교육비에 생활비까지
경제적 부담 가중 호소

읍으로 인구 쏠리면서
면지역 공동화는 가속
학교 통폐합→인구 감소
악순환 고리 계속


거창군 고제면에서 20년 넘게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김상택(49) 씨는 6년 전 거창읍으로 이사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가 정든 고향집을 떠난 이유다. 김 씨는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둘째와 셋째 아이도 초등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친구가 너무 없어서 결국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남아있는 분들에겐 미안했지만 아이들 교육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거창읍에서 고제면까지의 출퇴근 거리는 약 24km로,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출퇴근을 감내하며 거창읍으로 이사했지만, 자녀교육에 대한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전체적인 사교육비 증가로 경제적 부담이 커진 탓이다.

김 씨는 “집사람과 농사일 마치고 7시쯤 퇴근하는데, 그 시간까지 딸아이 4명을 사설교육기관에 맡겨야 하기 때문에 사교육비가 많이 나간다”며 “읍내에 나오면 좋을 것 같았는데 전체적인 생활경비가 크게 늘어 부담이 많이 된다”고 밝혔다.

김 씨처럼 출퇴근을 선택한 농민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고제면의 경우 자녀가 있는 4~50대 농민 절반 이상이 거창읍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게 김 씨의 설명. 그는 “주변에 자녀교육 문제로 출퇴근하는 농민들이 엄청 많은데, 심지어 농장인근에서 따로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도 있다”며 “최근에는 면지역 중학교를 통폐합해 기숙형 중학교를 짓고 있는데, 학부모들 사이에선 기숙형 중학교에 대한 찬반논란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출퇴근 농민이 급증하면서 농촌공동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실태파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창군 농어업회의소 김훈규 사무국장은 “농민들의 경우 주소지를 옮기면 지역농협부터 바꿔야 하고, 법인활동이나 보조혜택 등 각종 불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소를 옮기지 않고 엄마와 아이들만 읍내로 주소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며 “통계상으로 보면 농촌에서 계속 농사를 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정부나 관계기관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있는데, 일부 마을에는 ‘출퇴근 이장’이 있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농촌지역의 학교통폐합으로 인해 교육인프라가 발달한 읍지역(도심)에 인구 쏠림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사실이다. 거창군의 경우 이미 인구 6만3000여명 중 60% 이상이 거창읍에 거주하고 있다. 김훈규 사무국장은 “거창은 교육도시로서 대학진학률이 높고 사교육도 발달해 인근의 합천과 함양은 물론 도시에서도 거창읍으로 주소를 옮기는 경우가 있다”며 “거창읍에서 외지의 학생들과 지역 학생들이 경쟁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면지역 학교는 도태되고 있고, 이 같은 현상은 앞으로 전국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지역공동체 역시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김훈규 사무국장은 “정부의 각종 마을사업에 젊은 농민들이 주축이 안 되고, 노인들만 교육에 동원되고 있다”며 “심지어 공동의 마을행사에도 젊은 농민들이 발을 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우려했다.

농어촌학교 통폐합으로 이처럼 많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귀농귀촌 가구가 이미 교육·문화 인프라가 좋은 읍지역으로 집중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예산절감을 위해 농어촌학교의 통폐합을 장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훈규 사무국장은 “귀농귀촌 가구 상당수는 이미 자녀교육을 마쳤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는 교육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농촌의 학교 문제가 귀농귀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며 “결국에는 농촌학교의 교육수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농촌학교의 통폐합과 인구감소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 학교 운동장에서 추산초등학교 학생들이 등하교 버스에 오르고 있다. 이 학생들은 등학교 버스가 다른 마을을 다녀올 동안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함께 등하교 버스를 기다렸다.

●‘통폐합 갈림길’ 충북 괴산 추산초등학교
전교생  26명에 올 신입생 ‘0’…깊은 고민

찬 “낙후 시설 방치·교육 질 하락”
반 “등하교 멀고 마을 더 황폐화”
주민들 최선책 찾기 위해 논의중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 위치한 추산초등학교는 최근 통폐합의 갈림길에 놓였다. 1990년대 후반만 해도 100명에 육박했던 학생 수는 현재 26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신입생을 단 1명도 받지 못했다. 문제는 입학 가능한 학생 수가 2020년까지 매년 2명 정도라는 점이다. 새롭게 전학 오는 학생이 없으면 향후 복식수업(한 학급 안에 두 학년 이상의 학생들을 한 교사가 가르치는 수업 형태)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인근 목도초와 통폐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목도초의 경우 학생 수가 32명으로 추산초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나마 시설이 좋다는 이유로 통합학교로 논의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의견은 정확히 5:5로 갈린다. 법적으로 학부모 70% 이상이 찬성해야 통폐합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추산초 학부모들은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의견을 나눴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찬성 쪽에선 학교가 분교장이 될 경우 예산감소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하고 있다. 함께 뛰어놀 친구들이 없는데다, 낙후된 시설도 찬성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실제로 추산초의 경우 건강에 해로운 슬레이트 지붕이 아직도 방치되고 있고, 학생 수 감소로 인한 예산축소로 내년부터는 영양사 선생님마저 없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반대 쪽에선 등하교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목도초의 경우 추산초와 거리는 6km 정도에 불과하지만, 등하교 버스를 이용할 경우 일찍 버스에 타는 아이들은 1시간이나 걸려 등하교를 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마을에 학교가 없어지는 것 자체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추산초가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 때문이다.

원웅동마을 이장이자 추산초등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용희(47) 씨는 “학교통폐합을 두고 학부모들이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최선책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통폐합학교 우수사례를 둘러보는 동시에 산촌유학 등 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추산초는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15년 전부터 통폐합대상 학교로 분류돼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관련예산은 점점 줄고 학교시설이 낙후됐다는 게 학부모들의 주장이다. 이용희 씨는 “학교운동장에 천연잔디와 인조잔디 중에 뭐가 좋다는 식의 뉴스를 보면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린다”며 “추산초는 심지어 발암물질이 있는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면 벽면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이유로 리모델링만 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이 같은 교육당국의 처사가 아동학대와 다름없다며 분노하고 있다.

학교차원에선 예체능 수업의 경우 복식수업을 진행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펴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추산초등학교 신사호 교장은 “지난해부터 음악·미술·체육 등 예체능 수업은 전학년이 모여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웅성웅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조화로운 수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현재 30명 정도의 학생 수만 유지되면 우리 학교의 규모로 충분히 꾸려갈 수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2020년이면 전교생이 10명 안팎에 불과할 것 같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학교통폐합을 추진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 교장은 “교육당국에서 작은학교를 유지하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최소한 행정절차를 간소화해 선생님들의 행정업무 강도를 낮추고, 농촌지역의 작은학교에 맞는 교육프로그램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들만 도시로 내보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는 이용희 씨는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농사짓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근데 아이들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껴요. 아이들이 저 때문에 온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고통 받는 것 같았거든요. 농사 같으면 나무를 심거나 밭이라도 늘려보겠지만, 학교문제는 정말 방법이 없네요.”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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