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따낸 예산, 다 쓰지도 못하고 도로 반납○ “돈 줘도 못쓴다” 비난 자초지난달 중순 제229회 임시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한 위원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2001년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초과 징수된 세금과 예산불용액을 합한 것) 2조4000억여원을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쓰자는 것이었다. 민망할 만큼 싸늘한 답변이 기획예산처쪽에서 돌아왔다. “사용방안을 아직 결정한 바 없고, 법률이 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구체적인 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답이 틀렸다고야 할 수 없지만, 이날 회의장 주변은 예산당국이 여전히 농업 투자에 인색하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예산철만 되면 나도는 “농림부는 예산을 줘도 못 쓴다”는 소문의 책임은 전적으로 예산당국에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가장 큰 원인제공자는 바로 농림부다. 어렵게 예산을 확보해 놓고도 제대로 쓰지 못해 꼬투리를 잡힌 탓이다. 최근 농림예산 집행 실태를 알아본다.▲부실한 예산집행=농림부는 외환위기 뒤 크게 늘어난 농어가 부채문제를 풀기 위해 2000년 부채대책 예산으로 7347억원(전체 8조1000억여원의 9%)을 확보했다. 그러나 실제로 집행된 돈은 5725억원(77%)밖에 안됐고, 18%인 1335억원이 불용 처리됐다. 나머지 286억원은 재해대책 무상양곡대 부족분 지원, 차관사업 이차보전에 전용됐다. 외환위기 직후 부채대책이 시작됐지만, 97년부터 4년동안 예산 집행률은 80%를 넘지 못했다. 농업인자녀학자금지원사업도 비슷한 경우다. 현장 숙원사업임에도 2000년 예산 150억여원 가운데 122억원(81%)밖에 쓰지 못했다. 8만4000여명을 대상으로 했지만, 6만여명만 혜택을 봤다. 23억7000만원은 재해복구비, 임용결격 공무원 퇴직보상금으로 썼고 4억8000여만원이 남았다. 학자금 지원사업 집행률은 98년 74%, 99년 80%로 높아졌지만, 늘 20%가 남아 기획예산처로부터 ‘과다계상’이란 지적을 받았다. 심지어 국회는 사업을 교육인적자원부로 넘기라는 권고까지 했다. 2000년 3월 구제역이 창궐했을 때 가축방역사업 예산은 170억8500만원에 예비비 266억원을 합해 436억원이었다. 이 때 불용액은 108억원(63%)이나 됐는데, 허둥대느라 예산집행이 늦어져 농협과 지방자치단체가 자비로 소독약품을 먼저 사버린 탓이다. 어디다 썼는지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농림부는 같은 해 농업기반공사에 출자 명목으로 400억원, 농지관리기금엔 출연으로 400억원을 집행했다. 이 돈은 국회 결산과정에서조차 어떻게 쓰였고 성과는 어땠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집행률이 높다고 무조건 잘 쓴 것도 아니다.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에서 자치단체 등에 나가는 보조금(2000년)은 전체예산 2조원 가운데 98%를 집행했다. 하지만 보조금 집행은 사업자가 자기부담을 하지 않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수가 많아, 이처럼 높은 집행률은 농림부가 되레 관리를 하지 못해 돈을 낭비했음을 반증한다. 쓸 곳에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아끼지도 못했다. 2000년 구제역 파동 때 15개 시·도는 12개 예방약품을 조달구매가 아닌 경쟁입찰·수의계약으로 사는 바람에 13억원을 낭비했다. 최근 해마다 자연재해가 되풀이되고 있지만, 그 때마다 복구비를 농어촌구조개선사업계정의 이·전용금과 예비비로 충당하는 것도 문제다. 최소한 평균 재해복구비를 계산, 본예산에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2001년 ‘논농업직불금’ 예산, 전체 농림 예산의 2% 불과▲감질나는 직불예산=예산을 잡아놔도 못 쓸 바엔 중요한 곳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일. 2001년 현재 농림부 논농업직불금 예산은 1700억여원으로 전체 농림예산의 2%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이 전체 농업예산의 78%를 직불예산으로 쓰고 있고, 미국 20%, 대만 11%, 일본 9% 선에 견주면 초라한 수치다. ○경지정리·도로 공사에 치중, 농민지원 8년새 2378억 고작▲농민 혜택 없는 농어촌특별세 사업=농어촌특별세 사업은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협상 타결에 따른 농어업인 피해보상을 목적으로 94년 시작됐다. 농어민 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하지만, 경지정리·도로 공사 등에 치중, 실제 농어민한테 돌아간 액수는 98년까지 5년동안 2378억원(전체의 4.5%)에 불과했다. 게다가 지난해 농특세 수입은 애초 계획 2조4195억원보다 8939억원이나 적은 1조5256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수산예산 집행률 53% 정부 부처 가운데 ‘꼴찌’ 수모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수산분야 예산을 채 절반도 집행하지 못했다. 2001년 수산예산 9298억원 가운데 집행액은 4925억원으로 53%에 그쳤고, 항만·해운을 합한 전체 집행률도 50%를 겨우 넘어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낮았다. 결국 해수부는 330억원(3.5%)을 올해로 넘기고, 45억여원을 예산당국에 반납하는 수모를 겪었다.특히, 어민 실익과 직결되는 연근해어업구조조정사업은 2618억원을 받아놓고 263억원을 써 10%대의 저조한 집행률을 보였고, 수산물 유통가공·수출 예산도 952억원 가운데 287억원을 집행하는데 그쳤다. 또 자원관리형 어업으로 전환한다는 요란한 구호를 내세우고도 관리형 어업 예산 897억원 가운데 73.7%(661억원)를집행하는데 그쳤다.당시 해수부는 연근해 어업구조조정은 어민·업종간 이해관계가 얽혀 추진하지 못했으며 유통가공사업은 주 사업주체인 수협이 신규투자를 하지 못해 예산집행을 못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사업을 하겠다며 예산을 확보해놓고, 민원을 핑계로 못한 것은 해수부의 업무 조정력과 추진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배영환·박종찬 기자 baey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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