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도적’ 부풀리기.. ‘도덕적해이’ 뭇매지난 99년말과 2000년초, 한국사회는 온통 42조 농어촌구조개선사업 및 15조 농특세사업에 대한 감사원과 검찰의 부실·비리 발표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는 98년까지 1차 구조개선사업이 끝나고 제2차 농어촌투융자사업을 결정하는 시기였기에 그 파장은 더 컸다. 언론에서는 이런 부실과 비리사례를 대서특필하면서 농어민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집중 공격했고, 그것은 곧바로 비교우위론자들의 농어촌투융자 불용론으로 이어졌다.■ 부활한 농업투자 무용론그 때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직후, 늘어만 가는 농가부채로 최악의 상황에 몰려있던 대다수 선량한 농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거지반 ‘혈세도적’으로, 농민단체 간부들은 ‘다방농사꾼’으로 몰려야 했다. 농촌투융자는 ‘퍼주기’, ‘나눠먹기’로 폄훼됐다. 감사원은 92년~98년까지 7년간 42조원을 투자한 농어촌구조개선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 사업의 졸속 선정, 추진방향 및 집행과정의 착오, 사업비의 목적외 사용 등으로 위법·부당사례 162건이 적발됐다고 밝혔다. 이어진 검찰의 수사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42조와 15조가 들어가는 농어촌구조개선 투자 57조원이 엄청난 비리속에 수백억원이 증발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농민들은 “문민정부 시절 시장개방에 따른 57조 사업과 경쟁력 위주의 엘리트농정으로 농가부채가 누적되고 있는 만큼 문제점은 철저히 파헤쳐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지만, 그것은 상당부분 정부의 잘못된 농정이 본질이지, 농민들이 돈을 떼먹었기 때문으로 몰면 안된다”고 반발했다. 그리고 2년 뒤 카타르 도하의 도하개발아젠다(DDA, 뉴라운드) 출범을 전후한 이 시기, 농민들은 또다시 비교우위론자들과 수구보수 언론의 농업투자 무용론 공세에 휘말려 있다. 99년 당시는 부도덕한 모럴해저드로 몰더니, 이제는 “변하지 않고 정부에게 손이나 내미는” 게으르고 능력 없는 사람이 되고, 농업은 한계산업인양 몰아부치고 있는 것이다.■ 농어촌투융자는 낭비인가농어촌투융자는 과연 이유 없는 ‘퍼주기’인지 사실관계를 따져보자.농어촌구조개선사업이 추진된 배경에는 ‘개방농정’이라는 정부의 원죄가 있다. 86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시작, 89년 BOP(국제수지조항) 졸업 등 국제정세와 맞물려 정부의 정책은 개방확대로 치달았다. 선진국병에 걸려 89년 BOP를 스스로 졸업하면서 ‘농어촌발전종합대책’이 나왔고, 91년에는 92~2001년까지 42조원 농어촌구조개선투자계획이 발표된다.92년 12월 당시 김영삼 대선후보는 ‘신농정 구상’에서 42조원 사업을 앞당겨 집행하고 농발위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쌀 시장 만큼은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개방을 막겠다”고 공약했다.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해 말 UR이 타결됐으며,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농림부 장관의 퇴진 속에 42조 투융자계획을 98년까지로 3년 앞당기고, 시장개방에 대한 정부와 기업, 국민 책임분담 성격의 농어촌특별세 15조원사업이 만들어진 것이다. 1단계 구조개선 사업은 사전 준비도 충분치 않은 상태서 단기간에 다양한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부적격자가 선정되고 정부 자금이 부당하게 사용되는 등 부실과 비효율이 있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유리온실 처럼 시설 과투자에 따른 과잉생산과 시설 유휴화 등은 문민정부 농정실패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이며, 1단계 사업은 생산기반 구축, 시설 및 장비지원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 투자돼 장기간에 걸쳐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 농민보조금 기껏 2조6000억원92~98까지 42조 투융자계획의 투융자 실적은 전체가 41조7021억원이지만, 국고 기준으로는 35조3977억원이며, 이 가운데 보조는 16조4915억원, 융자가 18조9062억원이다. 42조원 속에는 지방비가 3조7916억원이 있고, 특히 농민이나 조직의 자부담이 2조5128억원이다. 보조금의 경우 생산기반 기술개발 등 사회간접자본(SOC)와 공공부문에 보조금의 대부분인 13조4794억원이 들어갔고 직접보조인 소득지원은 3조2058억원에 불과하며, 그것도 생산자단체에 지원한 56872억원을 빼고 농민에게 돌아간 돈은 기껏해야 2조6386억원이다. 같은 기간 농특세 예산에서도 농민에게 돌아간 보조는 2378억원에 불과하다. 또한 99~2004년까지 6년간 45조원을 투입하는 2차 투융자의 경우 개별 농민에게 주는 보조금은 완전히 없어지고 융자로 바뀌었으며, 역시 자부담이 2조5000억 수준이다. 마치 농민들이 국민의 혈세인 보조금을 나눠먹은 것처럼 여기고 있지만, 지원된 돈 대부분이 융자금이나 자부담금이고, 그것은 지금 농가부채로 변해 농민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농가부채는 정부가 농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밀어부치는 개방농정에 따른 농산물 가격폭락의 결과라는 점도 잊으면 안된다. 이상길 기자 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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