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우위 밀려 농업예산 ‘천덕꾸러기’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농림부 기획관리실엔 비상이 걸린다. 5월말까지 시한인 다음해 세입세출예산안을 만들어야 하는 탓이다. 얼마를 달라 요구서만 낸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어서 기획예산처가 ‘내린’ 지침에 맞추랴, 하루 수십 번씩 예산처쪽과 조율하랴 눈코 뜰 새가 없다. 한 푼이라도 더 얻으려는 쪽과 깎으려는 쪽이 맞서니 오가는 말이 고울 리 없다. ‘돈전쟁’이라 부를 만하다.“사업별 예산안이 예산처쪽에 넘어가고 있는데, 반응이 좀 시원찮다”. 마감을 한 달이나 앞둔 농림부의 반응은 “건전재정 유지라는 큰 틀에 따라 규정대로 심의할 것”이라는 예산처의 당당함과 사뭇 다르다.관가에선 이를 ‘승패가 뻔한 싸움’이라고 말한다. 정부 ‘서열’이나, 산업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리는 농림부에게 예산당국은 버거운 상대라는 얘기다. 경제분야 고위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몇 년 전 기자에게 “정치논리로 예산을 주긴 주지만, 줘도 못 쓰는 게 농업예산”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했다.농민들에겐 턱없이 모자란다는 원성을 듣지만, 정부 안에선 ‘줘봐야 뭣하냐’는 구박을 받아야 하는 게 우리 농업예산의 현주소다. ▲‘42조원 투자’는 없었다=농업예산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93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직후 ‘농어촌구조개선사업’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정부는 98년까지 42조원을 투자, 농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업은 농가부채를 두배이상 늘리고, 농가소득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일부는 지원금을 악용하기도 했다. 이를 빌미로 온 나라엔 농업투자 무용론과 농민들의 ‘도덕적해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악명을 떨쳤다. 실제 집행된 돈 46조원 가운데, 정부의 직접투자액은 22조원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농민 자부담, 융자, 지방비 부담이다. 농림부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인사는 “그 기간동안 집행된 40여조원 가운데 농민에게 실제 혜택이 돌아간 액수를 환산했더니 5%도 안됐다”는 놀라운 말을 했다. ▲힘에 밀린다=농업예산은 주식시장에 빗대 ‘2부종목’이라 불린다. 국방, 건설 등 비교우위를 점한 분야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올해 농림예산 9조2594억원은 전체예산 111조9767억원의 8%에 해당한다. 전체예산이 11.7% 는 반면, 농업쪽은 5.5% 증가하는데 그쳤다. 국방부 16조3000억원, 건설교통부 14조8000억원, 교육인적자원부 28조1000억원 등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치다. 이는 최근 정부 재정정책이 공적자금 지출, 대규모 시설투자, 국채 이자지급, 방위비 등 경직성 경비에 기조를 맞추고 있는 탓이다. 예산전문가들은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식량안보와 직결된 점을 감안, ‘잠재력’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디에 쓸 지 불분명하다=재정학자들은 ‘예산의 본질은 돈이 아니라, 정책과 사업에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적재적소에 돈을 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획예산처가 낸 2003년 농어촌부문 예산편성지침은 ‘도하개발아젠다(DDA)협상에 대비한 구조조정과 농어민 소득안정, 생활환경 개선’에 초점을 뒀다. 문제는 농어민소득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직불제 확대 등에 필요한 돈을 다른 분야에서 끌어오는 게 아니라, ‘증산관련 투자를 적정화’하는 방법으로 ‘자가발전’토록 했다는 점이다. 30년대부터 농민들한테 보조금을 줘 온 미국은 지난해 230억달러를 직불금으로 썼다. 전체 농업예산의 20%가 넘는 수치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농업예산의 70%(평균)를 직불금으로 농민한테 주고 있다. 이종화 전국농민회총연맹 대외협력실장은 “WTO협상 때 식량안보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한 것은 농업이 제2의 국방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라며 “직불금 등 소득안정을 중심으로 농업예산은 훨씬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배영환 기자 baey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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