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종자산업 경쟁력 높이기

[한국농어민신문 최영진 기자] 

국내 종자산업은 영세화가 심화되고 있다. 종자 판매액 5억원 미만의 소규모 업체가 2022년 기준 91.6%나 된다. 그렇다보니 신품종 연구 개발에도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정부 지원을 통한 연구개발 동력 확보와 민간 종자시장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시장 규모, 세계 1% 수준대규모 기업 비율·투자 여력 줄어

세계 종자시장은 연평균 3.8%의 성장세를 거듭하며 2020년 기준 449억 달러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인구 증가와 농작물 재배면적 증가 등으로 세계 종자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거듭하며 2027년에는 547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가운데 글로벌 종자기업은 규모화와 전문화를 통해 진입장벽을 강화하고 시장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종자산업의 상황과 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국내 민간 종자시장 규모는 2017년 5919억원에서 2020년 6505억원 등으로 성장세를 그리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시장 규모의 1%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종자 판매액 40억원 이상의 대규모 기업비율은 2.2%에서 1.8%로 줄었으며 종자 업체 당 판매액도 평균 4억원에 불과하다.
 

그렇다보니 연구 개발에 투자여력을 지닌 기업도 감소하는 실정이다. 2020년 기준 국내 1625개 종자업체 중 육종 실적이 있는 업체는 299개로 전체의 18.4%에 그쳤다. 단순 계산하면 10개중 8개사 가량은 품종 개발 없이 생산·판매만 주력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종자협회 관계자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재배면적 감소와 인구 노령화 등으로 종자 산업발전을 위한 제반여건이 악화되고 있고 시장 규모에 비해 기업은 많아지면서 출혈경쟁이 심화되는 중”이라며 “종자 자급과 농가 소득 제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선 신품종 개발이 지속돼야 하는 만큼 지속적인 투자가 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디지털육종 기술개발’에만 무게신품종 연구개발 지원 병행해야

이런 상황에서 종자 기업들은 정부가 디지털육종 기술개발 중심의 지원정책을 신품종 육성과 양립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종자기업의 핵심인 연구개발 지원으로 해외 종자와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외국 품종 국산화를 통한 신규 시장 확보 등의 이유에서다.

국내 종자기업들은 매년 350억원 가량의 연구개발비용을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1등 기업 농우바이오만 해도 2020년 기준 연구개발비는 168억원에 불과하다. 바이엘(1조9942억원)과 코르테바(1조4864억원), 신젠타(1조2597억원) 등과 경쟁하기에는 초라한 수준이다.  

현재 정부도 육종과 관련한 각종 지원 사업을 마련하며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농림축산식품부가 2025~2027년까지 3년간 450억원을 투자하는 가칭 ‘첨단육종기술 고도화 및 산업화 기술개발’ 사업이다. 첨단 육종 기술개발을 통해 국내 종자기업의 기술혁신을 견인하고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주요 취지다. 

그러나 종자기업이 신품종 개발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굵직한 정부지원은 2012~2021년까지 추진된 골든시드프로젝트(GSP) 이후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농촌진흥청의 ‘신품종개발공동연구사업’이 있지만 종자기업 참여도는 미미하다. 공동연구로 참여해도, 종자 품종을 독점해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해당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은 약 3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A업체 관계자는 “품종 개발의 수단인 디지털육종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품종 개발과 관련한 사업은 없어 무게중심이 기술개발쪽에만 치우쳐 있는 형국”이라면서 “디지털육종 기술뿐만 아니라 신품종 연구개발을 위한 지원 정책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B업체 관계자도 “국내 파프리카 종자시장은 130억원 규모로 알려졌는데, 이중 국내 기업이 개발한 품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그친다”면서 “농가의 로열티 감소와 신시장 확보 차원에서 파프리카 종자 개발에 나섰지만, 투자 동력이 적기 때문에 결국 연구원들을 시장 규모가 큰 고추 품종으로 재배치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파프리카·양파·토마토 등의 채소류, 과수류, 화훼류 같이 자급률이 낮은 품종, 품목에 한해선 정부의 프로젝트를 통해 자금과 인력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정부 사업 선정과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C업체 관계자는 “종자업체에 소속돼 있던 육종가들이 떨어져 나와 개별 업체를 꾸리는 일이 빈번하다”면서 “소규모 부실 업체가 늘면서 시장이 교란되고 있는데, 정부 사업을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실제 개발 및 판매실적 등이 어땠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성과 낮은 업체는 배제하는 식으로 기업 선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꽉 잡은 식량종자“민간기업 진입 문턱 낮추고 시장 활성화해야” 

민간 식량종자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국내 종자 민간시장은 채소작물에만 편중돼 있는데, 이를 식량작물로 넓힐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주요 종자시장은 옥수수와 콩 등 식량종자가 65.2%에 달했고, 채소(16.8%), 기타 곡물(6.1%), 면화(4.1%) 순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국내 민간 종자시장은 채소(62.5%), 과수(10.7%), 버섯(10%), 화훼(7.2%)로 세계 시장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국내 민간 기업의 식량종자 사업규모는 84억원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에서도 ‘제3차 종자산업육성 5개년 계획(2023~2027)’에 식량종자 민간시장 활성화를 주요 사업으로 포함하고, 국립종자원의 정선시설을 저렴하게 제공함으로써 민간기업의 식량종자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식량종자 개발을 막는 직접적인 규제는 없지만, 벼·보리·콩 등 정부가 주요 식량종자를 공급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식량자급률 제고 차원으로 정부에서 식량종자를 보급하고 있는데, 보급종 단가가 시장가 대비 매우 저렴해 민간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C업체 관계자는 “민간기업은 투자대비 수익성이 낮아 식량종자 품종 개발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면서 “법적으로 정부 보급종은 생산비의 95% 이하로 농가에 판매하게 돼 있다. 품종 개발 비용은커녕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운 상황이라 민간기업의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성공한 품종’에 대한 유사품 개발도 민간시장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골드퀸2호’ 등 향기나는 벼 품종을 개발하며 경기도 여주와 화성시 일원에 전용실시하고 있는 시드피아 조유현 대표는 “기업이 특색 있는 식량종자를 개발하면 정부 공공기관에서 농가 경제 안정이라는 이유로 유사품을 만든다”면서 “기업 간 경쟁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현재는 정부가 기업과 경쟁을 하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특화 품종에 있어선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종자업계의 주장에 동조한다. 다만 민간 종자식량 시장 활성화를 어떻게 접근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박기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세계적 기조와 종자시장 규모 등을 보면 식량종자 시장을 민간에게 풀어줘야 한다는 필요성과 당위성은 충분하다”면서 “그렇지만 농가경제에도 영향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급진적인 변화보다 기능성 쌀과 같은 품종을 민간기업이 개발할 때 R&D 지원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현시점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고희종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종자기업 규모화정부 장기프로젝트 필요”

고희종 서울대 교수 
고희종 서울대 교수 

“세계 종자 전쟁에서 살아남고 종자 자급률을 높이려면 종자기업이 규모화 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고희종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국내 종자산업이 발전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이같이 설명했다. 

고희종 교수는 “국내엔 농우바이오와 팜한농·더기반·아시아종묘를 제외하고 R&D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기업이 사실상 없다”면서 “종자산업 전반이 지나치게 영세하고 업체만 늘고 있다. 이에 반해 재배면적은 갈수록 줄면서 출혈경쟁만 일어나는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이어 “종자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있도록 중소규모의 기업을 중견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며 “품종 육성에 최소 5년이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정부가 골든시드프로젝트(GSP) 후속 사업과 같은 장기 투자 계획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종업원 1~2인 영세기업들에 대해선 “소규모 기업들을 일종의 ‘기업 연합체’로 구성해서 규모화하는 프로젝트가 마련돼야 한다”면서 “일례로 종자회사인 ‘파트너종묘’가 품종을 개발하면 유통회사인 ‘다나’가 판매하는 것처럼 형태적 합병에 있어 정부가 일정 지원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채소시장만으로는 민간기업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세계 주요 시장인 식량종자의 민간 시장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고 교수는 “정부가 벼, 보리, 콩, 감자, 옥수수 등 5대 식량작물 가운데 감자와 옥수수를 민간시장에 넘겼다고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연구기관에서 개발하고 있으므로 실질적인 민간화가 아니다”면서 “보급종 가격을 현실화함으로써 민간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정부와 민간의 품종 경쟁구조를 통한 고품질 종자 개발로 농가가 선호하는 품종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영진 기자 choiy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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