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매년 약 1만5000대의 중고 농기계(트랙터·이앙기·콤바인 기준)가 중고 농기계 시장에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장이 다소 얼어붙으면서 농기계업체 대리점의 경영을 악화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중고 농기계 유통 플랫폼에 올라온 제품들.
매년 약 1만5000대의 중고 농기계(트랙터·이앙기·콤바인 기준)가 중고 농기계 시장에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시장이 다소 얼어붙으면서 농기계업체 대리점의 경영을 악화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사진은 중고 농기계 유통 플랫폼에 올라온 제품들.

전남에서 농기계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E씨. 최근 트랙터 한 대를 판매했지만 마냥 기쁘진 않다. 농가가 갖고 있던 중고 농기계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아직 팔지도 않은 중고 농기계 시세를 새 제품 가격에 미리 반영해 새 제품 가격에서 할인해 판매했다.

그는 “예를 들어 1000만원짜리 농기계를 팔아도 중고 농기계를 떠안기 때문에 실제 판매액은 800만~900만원에 불과하다. 농가에서 받은 중고 농기계를 팔아야 그나마 수지타산이 맞지만 트랙터 같은 선호 기종이 아니면 잘 팔리지도 않거나 구매가격 보다 최대 50%까지 낮춰서 판매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고 농기계가 농기계업체 대리점들에게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매년 국내 농기계 시장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중고 농기계가 대리점의 자금줄을 묶으면서 경영난을 호소하는 대리점들이 적잖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농기계 판매와 함께 사후 서비스 등을 추진하고 있는 대리점들이 무너지면 대농가 서비스도 악화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대리점 자금 흐름 악화시키는 중고 농기계
‘연 1만대’ 트랙터 중 70~80%만 국내 거래이앙기·콤바인은 절반 그쳐

전국의 대리점들은 처리하기 어려운 중고 농기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전국의 대리점들은 처리하기 어려운 중고 농기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국내 중고 농기계 시장 규모는 정확히 산출되지 않고 있다. 다만, 농기계업계는 매년 새 트랙터 판매물량이 약 1만~1만2000대 수준인 만큼 중고 물량도 이 수준에서 매물이 나올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기계업계 관계자는 “종합형 농기계업체 5개사가 통상 1만~1만2000대의 트랙터를 공급하고 있다. 즉, 중고시장에도 매년 트랙터 1만여대가 쏟아져 나오고 이중 70~80%가 국내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이앙기·콤바인 같은 계절성 기종은 약 5000대 정도가 새 제품으로 판매되는데 중고로 나오는 5000대 중 거래비중은 50%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농기계 새 제품의 거래방식은 신차를 구매할 때와 비슷하다. 다만, 중고 농기계와 중고 차량의 처리방식은 다소 상이하다. 예를 들어 새 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는 자동차 딜러에게 찻값을 모두 지불한다. 그리고 기존에 타던 중고차는 딜러를 통해 중고차 유통업자에게 판매해 일부 가격을 보상받는다.

반면 농기계의 경우 농기계 새 제품을 구매할 때 지불하는 가격에서 중고 농기계 가격을 제외하고 구매가격을 책정한다. 만약 농기계 세 제품 가격이 1000만원, 농가가 사용하던 중고 농기계 가격을 1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농가는 대리점에 900만원만 지급하면 된다.

문제는 중고 농기계 처리가 원활하게 되지 않으면서 대리점들의 자금이 묶이고 있다는 점이다. 농기계업체의 임원 A씨는 “매년 중고 농기계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트랙터 중 실질 거래는 70~80% 수준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20~30% 트랙터 중 일부는 수출되지만 대부분은 대리점이 재고로 쌓아두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농기계업체 관계자도 “농기계 대리점에 가보면 중고 농기계가 쌓여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대리점들이 신제품을 팔기 위해 불가피하게 중고 농기계를 떠안은 여파다. 중고 농기계 판매가 원활하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품질이 좋지 않은 농기계도 많기 때문에 판매에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앙기·콤바인 같은 계절성 기종은 더욱 심각하다. 두 농기계가 연간 5000대 정도 거래되지만 중고 농기계로 매매되는 건 50%도 안 될 것”이라며 “새 제품을 팔기 위해 이앙기·콤바인을 받은 대리점 입장에선 계륵이다”고 덧붙였다.

#균형 맞지 않는 구입가격과 판매가격
신제품 팔기 위해 떠안지만 수리비 만만찮아'고가 매입, 저가 판매'

대리점들의 경영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구입가격 보다 월등히 낮은 판매가격이다.

전남에서 B업체 대리점을 경영하고 있는 C씨는 “자동차는 시장 규모가 크고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할 수 있지만 농기계 시장 규모는 작고 구매층이 한정돼있다. 그래서 100만원에 매입해도 그 가격에 팔기 어렵다. 고가에 인수해서 저가에 판매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A씨는 “중고 농기계 가격은 사는 사람 마음이다. 정확한 품질 평가 등을 통해 책정되지 않는다. 100원에 샀는데 50원 깎아줘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충남에서 대리점을 경영하고 있는 D씨도 “중고 농기계를 보유하고 있으면 자금이 묶이기 때문에 싼값에라도 팔수밖에 없다”며 “중고 농기계를 매입하고 판매하려면 수리과정이 불가피하다. 적잖은 수리비용이 들지만 그런 부분은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노후농업기계 조기 폐차 지원 사업의 보조금 지급 기준

농기계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가격 구조가 중단된 노후농업기계 조기폐차 지원 사업에서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후농업기계 조기폐차 지원 사업은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을 실현하기 위해 2021년과 2022년 시범사업으로 추진했다. 동급의 화물트럭과 비교해 미세먼지 배출이 약 3배 이상 높은 2012년 말 이전에 생산한 노후 트랙터·콤바인에 대해 연식·마력별로 차등해 조기폐차 지원금을 정액 지원하는 사업이다. 국비와 지방비가 각각 50% 투입된다. 보장가격은 최소 100만원(생산연도 1989년·30마력 미만·트랙터 기준)에서 최대 2249만원(2012년·90마력 이상)이다.

B업체의 C대표는 “이 사업이 진행된 후 중고가격 시세가 10~15% 정도 상승했다. 농기계를 폐차해도 최대 2249만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중고시세가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이 사업을 통해 노후 농기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농기계 컨디션에 상관없이 시동만 걸리면 일정 금액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폐농기계 같은 중고 농기계를 갖고 있는 농가 입장에선 도움이 됐지만 이 같은 인식으로 중고 농기계 가격은 다소 거품이 생겼다”며 “영농 규모가 작은 농민들이나 취미농 등에겐 새 제품 가격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중고 농기계를 구매해야 하지만 올라간 시세가 진입장벽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중고 농기계 산업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서 중고 시세 등이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것”이라며 “대리점들이 신제품 판매 과정에서 떠안은 중고 농기계로 인해 자금줄이 묶이고 있다. 작년처럼 농기계시장이 20~25% 축소된 상황에서 대리점 경영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대안은 없나
노후 농기계 조기폐차 지원 재시행·개도국 대상 수출 확대전략 세워야

ODA사업 연계 수출 모색
검증된 중고 유통플랫폼 필요

농기계업계는 대리점들의 경영 악화가 대리점 폐업, 농가 서비스 악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현장에서는 노후농업기계 조기폐차 지원 사업을 가장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있다.

노후농업기계 조기폐차 지원은 들녘이나 산속에 숨어서 보기 흉했던 농기계를 처리하면서 농촌 환경이 개선됐고 미세먼지를 저감할 수 있었던 사업이다. 시동만 걸려도 높은 가격을 책정 받을 수 있었던 만큼 농민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은 물론 농기계 대리점들도 자금 순환 등에서 긍정적이었다.

대리점 대표인 C씨는 “노후농기계 조기폐차 지원이 환경 보호와 농기계시장 활성화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중고 시세 거품을 수반하는 단점도 있지만 이는 보완하면 된다. 농가 입장에서도 일정 가격을 보장해주는 만큼 정부가 재시행 했으면 좋겠다. 다만, 중고 농기계 가격이 객관적인 수준에서 형성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중고 농기계 수출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현재 중고 농기계 수출 관련해선 정부는 물론 관련 업계에서도 정확한 통계를 집계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수출 활성화를 위해 정확한 실태조사부터 수반돼야 한다.

농기계업계 관계자는 “어느 나라에 얼마나 중고 농기계가 수출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정확한 통계부터 갖춘 뒤 각 나라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한 후 수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A농기계업체 임원은 “대기환경보존법에 저촉되지 않는 엔진들을 탑재한 농기계도 많다. 그런 농기계를 제3국 또는 개발도상국 등에 수출하면 자원재활용, 수출 증대, 외화 획득 측면 등에서 효과적이고 농기계 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ODA 사업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중고 농기계를 수출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혁주 순천대 교수는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려면 그 나라에 맞는 제품이 들어가야 한다. 그런 기술은 회사가 직접 습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ODA 사업 등과 연계해 개도국의 농업기계화 현황 등의 데이터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개도국에 농기계 수출에 나선다면 일정 부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혁주 교수는 또 “사실 농기계 수출의 장애물은 AS다. 그래서 개도국에서 농업기계를 다룰 줄 알고 이를 수리하는 기사 등을 배출하는 일을 코이카(KOICA) 같은 조직을 통해 지원한다면 개도국도 농업기계화율을 높일 수 있고 우리도 중고 농기계 수리가 가능해져 수출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농기계 신제품 판매의 교두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중고 농기계의 국내 유통 활성화를 위해 검증된 플랫폼 또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농기계업체 임원 A씨는 “자동차처럼 중고 농기계의 워런티를 제대로 보장해주고 연식·모델 등에 따라 중고시세를 객관적으로 책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민간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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