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한국 농약산업은 원천기술이 매우 취약하다. 농약 원제 수입의존도가 2022년 기준 91.2%나 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농약이 수입산 원제로 제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원제 수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나라 농민들에게 직격탄이 될 수도 있다. 국내 농약사업의 숙원인 농약 원제 개발에 대해 짚어봤다.
 

#꾸준히 성장하는 국내외 농약 시장
국내 농경지 면적 감소에도 ‘완만한 성장’세계시장 성장세는 더 가팔라

국내 농약 시장은 완만한 성장을 해왔다. 농약연보에 따르면 2017년 1조4932억원에서 2022년 1조8138억원으로 성장했다. 또한 국내 농경지 면적 감소에도 농약 출하량은 성분을 기준으로 2015년 1만8979톤, 2020년 1만7884톤, 2022년 1만9469톤, 2023년 1만9399톤 등으로 집계됐다. 다만 최근 기상이변에 따른 농약 약제별 사용 패턴에 변화가 나타났다. 가뭄, 폭우, 폭염 등 기상이변이 심해지면서 농작물 병 발생 빈도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최근 살균제 사용량이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 농약시장의 성장세는 더욱 뚜렷하다. 글로벌 농약산업 규모는 2016년 560억 달러에서 2021년 650억 달러로 매년 성장을 이어왔다. 그러면서 신젠타(Syngenta), 바이엘(Bayer), 바스프(BASF), 코테바(Corteva) 등 상위 10대 글로벌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90.5%로 세계 농약 시장을 평정하고 있다. 글로벌 상위 농약기업의 매출을 보면 2022년 기준 신젠타 161억3600만달러, 바이엘 156억6900만달러, 바스프 88억42만달러, 코테바 84억7600만달러 등으로 보고 된 바 있다.

이와 관련 고영관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세계 농약시장에서 글로벌 상위 10개 업체가 90%를 점유하고 있다”며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에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산업”이라고 진단했다.
 

#허약한 원천기술 이대론 안 된다
핵심재료 ‘원제’, 해외에 의존물량 2%만 자급해 원자재·환율 등 휘둘려 

글로벌 기업이 세계 농약시장을 손아귀에 쥔 상황에서 우리나라 또한 이 기업들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농약을 제조하는 핵심 재료인 ‘원제’를 해외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다. 실제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농약 원제 자급률은 금액으로 6.5%, 물량으로 2% 등 매우 초라하다. 2022년의 경우 국산 자급률은 금액 기준으로 8.8%였기 때문에 수입산 비율이 91.2%에 달한다. 

이는 국내 농약업계의 기초기술 수준을 그대로 대변하는 수치다. 국내 농약산업이 성장하더라도 원제 수입으로 유출되는 이른바 ‘속 빈 강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원제 수입을 보면 2022년 8036억원(1만9406톤)으로 같은 해 국내 농약시장 규모 1조8138억원의 44%에 달할 정도다.

그렇다보니 원자재 수급, 환율 등으로 글로벌 원제시장에 변동이 생기면 국내 업계와 농약시장은 몸살을 앓을 정도로 속수무책이다. 지난 2021년 미국, 유럽 등 다국적 농약 원제사들의 가격 인상에 이어 2022년 일본, 중국, 인도 등 세계적으로 원제가격이 인상된 사례가 있었다. 게다가 환율마저 상승하면서 국내 업계는 고스란히 수입단가를 올려야 했다.

당시 농약업계를 대변해 한국작물보호협회는 “농약 원제 수입의존도가 매우 높아 국제가격과 수급 불안정 등 대내외 여건에 따라 제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며 “생산 비용이 상승하면 업계 경영이 악화 되고 양질의 농약제품 공급에 불안 요소가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원제사가 한정된 물량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 공급시기와 물량을 제한하고 단가가 높은 국가에 우선적으로 배정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원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래도 국산 원제 가능성 있다
팜한농 신물질 제초제 원제 ‘테라도’ 누적 매출 2000억 돌파

2019년 해외시장 진출 시작
미국·브라질 등 9개국 수출

천문학적 연구비 감당 힘들어
화학연구원과 산학협력 개발
농진청 관련 새 연구과제 ‘기대’

농약산업의 존립 기반이 원제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가운데 한국화학연구원과 팜한농이 공동 개발한 신물질 제초제 원제 ‘테라도’의 성공 사례가 주목받는다. 지난 2018년 국내 시장에 처음 출시된 테라도는 2019년부터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해 미국, 브라질, 호주, 캐나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등 세계 9개국에 수출됐다. 2023년의 경우 국내 200억원, 수출 750억원 등 950억원의 판매실적으로 기록하면서 출시 이후 누적 매출 2000억원을 돌파한 베스트셀러 농약 원제 자리에 올랐다. 테라도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2023년 농약 수출 실적은 4억990만 달러로 2022년 2억4600만 달러보다 102.8% 급증했다.

명경 팜한농 신규물질연구소장은 “신물질 1개 개발에만 수백억원의 연구비를 투자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 여건상 단독 개발이 결코 쉽지 않다”며 “테라도는 한국화학연구원과 팜한농 산학 협력으로 성공했다. 저항성과 안전성 확보를 기반으로 신물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테라도의 성공은 그동안 축적된 연구개발로 가능했다. 1987년 물질특허제도가 도입된 이후 국내에서 신물질 작물보호제가 가디언, 하나로, 피안커, 플럭소, 피제로, 포아박사 등의 제품명으로 개발돼 상용되면서 축적된 연구개발 기술로 행운의 숫자인 일곱 번째 ‘테라도플러스’가 탄생한 것이다.

원제 개발에 통상 10~15년이 걸리고, 투자비도 천문학적 수준이다. 그렇다고 100% 성공을 보장할 수도 없다. 글로벌 농약기업의 경우 세계시장에서 올리는 매출과 자금력으로 원제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신젠타 1개사만 보더라도 2022년 연구개발비 9억4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약 1조2500억원을 투자해 한국의 기업들과 비교 자체를 언급할 수준이 아니다.

이에 국내 원제 개발에 대한 정책적 노력과 체계적인 투자 계획이 절실한 상황에서 올해 농촌진흥청이 ‘수출전략형 신 작물보호제 기반 기술 개발’ 연구과제에 들어간다. 국산 원제 7호인 테라도의 성공을 이어가는 사업이다. 올해 40억원의 예산을 세워 9개 세부 연구과제가 시행된다.

농약업계는 “국내 농약산업 특성상 원제보다 완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농산업 발전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기초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원제 신물질 개발에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의견을 내고 있다.
 

#전문가 인터뷰 / 고영관 한국화학연구원 친환경신물질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원제 확보하지 못하면 식량 생산도 차질” 

원제 연구개발, 식량안보로 봐야

 “원제 연구개발은 한국의 농약산업은 물론 무엇보다 식량안보 차원이라고 봐야 한다. 원제 수입의존도가 높은 현실에서 자칫 원제를 확보하지 못하면 식량 생산도 문제될 것이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 1987년부터 신물질 연구를 담당해 온 고영관 박사(책임연구원)는 원제 기술의 중요성을 이 같이 설명했다.

고영관 박사는 “작물보호제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는 농작물 생산량 변화와 관련 일본에선 평균 49%, 미국에선 평균 65% 감소한다는 자료가 있다”며 “저독성, 환경 친화형, 고기능성 신물질 시장이 성장하고 있고 세계적인 연구개발도 이에 맞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7종의 신 작물보호제가 개발돼 상용화됐고 미국 환경보호청 등록도 2건을 기록하는 성과가 있다”며 “테라도가 대표적인 것으로 농약 원제 원천기술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매우 이례적인 성과였다. 앞으로 신물질 원제 개발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원제 개발에 대한 정부의 연구지원을 특히 강조했다.

고영관 박사는 “원제 개발은 내수용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수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농약 원제 개발은 신약 개발과 유사해 고도의 융복합 지식이 필요하다. 10년 이상 개발 기간과 수백억원의 개발비가 필요해 국내 기업 단독으로 개발이 어렵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과 산학 공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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