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얼마 전, 강원 양구군이 구리농산물도매시장에 수박 파렛트(팰릿) 출하 여건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팰릿 단위 선별작업을 거치지 않은 수박도 도매시장으로 출하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 소식이 알려졌다. 산지 선별시설이 확충될 때까지 예전처럼 산물 출하를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구리도매시장은 서울 가락시장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수박 팰릿 거래를 의무화한 곳으로, 2021년 시범사업에 이어 2022년부터 전면 시행하고 있다. 이번과 같은 산지의 ‘긴급 요청’은, 물류 효율화라는 이유로 주요 농산물도매시장에서 팰릿 거래 도입을 품목별로 확대하는 추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팰릿 거래 도입에 가장 적극 나서고 있는 공영도매시장은 가락시장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가락시장 시설현대화 이슈와 맞물려 신축 예정인 채소2동에서 취급하는 품목을 중심으로 추진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면서 2017년 무·양파·총각무에 이어 2018년 양배추·대파·산물쪽파 등의 품목을 적용했고, 올해 4월부터 배추도 팰릿 거래를 시작했다. “시기상조”, “여건상 불가능”, “시장이 부담해야 하는 물류비용을 왜 산지에 떠넘기는 것이냐”는 등의 얘기가 산지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가락시장을 비롯한 주요 도매시장은 거점 물류 기능의 효율과 활용을 높이는 것이 시장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인식 아래 팰릿 거래 도입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올해 들어 서울시공사는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도 수박 팰릿 거래 의무화 방침을 추진해 논란을 빚고 있다. 시장 내 도매법인 3곳(농협공판장 포함), 시장도매인 등 대다수의 시장 종사자들이 반대 의사를 밝히는 상황에서도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서다. 강서시장 유통인들은 가락과 구리에 이어 수박 팰릿 거래를 의무화한다면, 강서시장 출하자의 대부분인 중소농들이 대응 여력이 떨어지는 만큼 시장 반입량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강서시장에서 빠져나갈 물량이 다른 주변 시장으로 옮겨갈 경우 해당 시장의 물량이 예전보다 증가해 수박 시세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중소농들의 출하 선택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도매시장 설립 취지와 목적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서시장 도매법인 3곳이 수박 출하자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선별시설의 투자 여건’을 묻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90%인 45명이 “현재 여건으로 불가능”하다고 답했고, ‘강서시장의 수박 팰릿 의무화 추진’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74%인 37명이 “불필요하고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여러 문제들이 지목되고 있지만, 서울시공사는 “강서시장 내 하역 인원들이 고령화된 데다 인력 수급이 원활치 않아 중장기적으로 물류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며 팰릿 거래 추진을 위해 하역 여건의 위기 상황이라는 점만을 피력하고 있을 뿐, 산지와 시장 유통인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공사가 강서시장에서 올해부터 수박 팰릿 거래를 추진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올해 출하 물량이 파종되기 전인 지난해부터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고 산지 출하자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홍보를 진행하는 등 사전 준비에 공을 더 들여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해관계자와 당사자들의 공감대 없이 추진 명분에만 기대어 추진돼 왔던 정책이 성공하지 못한 사례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봐왔다.  

중장기 차원의 물류효율화 추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다만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양구군처럼 시설기반이 미흡한 여건을 가진 산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농민들을 생각하는 도매시장이 되기를 바라본다.

고성진 유통팀 기자 kosj@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