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반입되는 수박에 대해 파렛트 거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시장 내부에선 반대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반입되는 수박에 대해 파렛트 거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시장 내부에선 반대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강서농산물도매시장(강서시장)에 수박 파렛트 출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올해 시범 사업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구상 중인데, 시장 내부에선 ‘시기상조’라는 반대 여론이 주를 이뤄 진통이 예상된다. 출하자 대부분이 중소농 위주인 강서시장 여건과 맞지 않아 반입량 감소 등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물류 효율화 이유로 연내 시범사업 계획2025년 전면 도입 목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강서지사 및 강서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파렛트와 산물 출하 병행으로 반입되고 있는 수박의 경우 △올해 시범사업 형식으로 현행 운영하되 △내년(2024년)부터는 5톤 반입 차량에 한해 파렛트 출하를 의무화하고 △내후년(2025년)에는 전면 도입하는 방향으로 3개년에 걸친 시행 일정이 검토 중이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 17일 공사가 주재하고 시장 유통 종사자(도매시장법인, 시장도매인 등)이 참여하는 ‘수박 파렛트거래 추진 협의체’에서 논의됐다.

공사 강서지사 유통관리팀 관계자는 “큰 틀에서 3개년에 걸쳐 단계적 도입을 목표로 한 것으로, 아직 확정되지 않은 부분”이라며 “올해 2월과 3월 협의체 회의를 열고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시장 종사자들로부터 관련 의견을 수렴했다”고 말했다.

올해를 시작으로 파렛트 출하 의무화를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기본 방향은 세워진 가운데 구체적인 시행 시기 등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전면 시행 적용 대상에 대해서도 조율 여지가 남아있다.

이 관계자는 “추진 계획은 내부 검토를 거쳐 4월 안으로 확정할 계획”이라며 “전면 시행과 관련해 중소농 출하자를 감안, 1톤 차량에 대해 최대한 유예하는 쪽도 생각하고 있다. 소농이나 준비가 안 되는 분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 4월 산지 상황을 살펴본 후 조정해 나가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공사는 사업 추진 명분으로 물류 효율화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출하자의 수취가 향상 △품질 표준화와 유통시간 단축 등에 따른 소비자 편익 증가 등의 원론적인 기대효과를 부각하는 대신 하역인력 고령화, 근무여건 악화 등 강서시장의 하역 문제를 현실적인 이유로 들며, 당위성을 피력하고 있다.
 

출하자 대부분 중소농산지 물류비 부담 늘어 반입량 감소 우려

강서시장의 주요 유통 종사자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출하자의 대부분이 중소농 위주인 만큼 파렛트화 추진은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파렛트 출하에 따른 물류비용을 산지가 부담해야 하는 실정에서 고령·중소농들이 다른 도매시장으로 출하할 수밖에 없어 시장 반입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농수산물도매시장통계연보에 따르면 강서시장의 수박 거래물량은 2021년 기준 3만6000톤 정도로, 가락시장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물량을 취급하고 있다. 

강서시장 내 A도매시장법인 관계자는 “강서시장에 출하하는 수박 농가들은 자체적으로 선별 가능한 선과장이 없는 소규모 농가들이 많다. 파렛트 출하를 의무화하면 이 농가들은 다른 도매시장으로 출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출하자 입장에서는 비용 부담이 늘어나거나 판로가 잃게 되는 피해를 입게 되고, 강서시장도 반입량 감소가 우려되는 만큼 파렛트 출하 의무화 추진은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했다.

현재 수박 파렛트 출하가 의무화된 농산물도매시장은 가락시장(2014년 시범사업 이후 2016년 5월 전면 시행)과 경기 구리시장(2021년 시범사업 이후 2022년 전면 시행) 등 2곳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파렛트 출하 여력이 떨어지는 농가들의 산지 물량이 반입되는 등 강서시장이 일부 ‘반사효과’를 누린 부분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사라지는 데다, 가락시장과 구리시장에 비해 가격(경매가)경쟁력이 떨어지는 여건을 감안할 때 사업 추진에 따른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할 수 있어 보인다.

가락시장의 수박 경매사는 “가뜩이나 수박 산지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전체 물량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파렛트 출하 의무화가 시행되면 시장 반입 물량은 확연하게 줄 수밖에 없다. 가락시장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는데, 전체적으로 물량이 줄어들면서 품질이 고급화되는 경향을 띠었다”며 “하지만 가락시장은 취급량이 워낙 많은 중앙도매시장이기 때문에 출하 산지 조직화 규모가 크고 대응 역량을 갖춰 안착된 부분이 있었지만, 지방도매시장인 강서시장은 상황은 전혀 다를 것이다. 반입량 감소에 따른 피해 등 후폭풍이 훨씬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매사는 “구리시장의 경우도 파렛트 출하를 의무화했는데, 그러다보니 같은 조건이면 가락시장을 1순위, 구리시장을 2순위로 인식하는 농가들이 많아 구리시장의 반입 물량이 많이 줄었다. 물론 파렛트 출하를 하지 못하는 산지 물량이 다른 시장으로 빠져나간 부분도 있다. 실제로 이 때문에 구리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서시장의 B도매시장법인 관계자도 “구리시장에서 작년에 수박 파렛트화를 진행했다가 출하주와 도매법인이 시장 주변 장소에서 제3자에게 수박선별을 위탁해 오히려 선별 시간이 더 걸리고 출하주와 도매법인에 이중 비용이 발생한 선례가 있다”면서 “수박 파렛트화는 선별업체의 배만 불릴 뿐 도입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하역노조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출하자들에게 부당한 유통비용을 부담시키려는 수박 파렛트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출하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농안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며 도매시장 존재 이유를 망각한 행위”라며 “궁극적으로는 수박 물량을 감소시키고 중소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서시장의 한 시장도매인 관계자는 “시장도매인들도 파렛트 출하 의무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산지의 여건이 충분치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인력 부족으로 산지의 선별 역량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선별 공간이나 시설도 부족하기 때문에 파렛트화를 추진한다고 하면 산지의 어려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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