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7월부터 수박 파렛트(팰릿) 거래를 전면 시행하겠다는 방침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5월 중순 강서시장 내 경매제 시장에 출하된 수박이 다단식 목재 상자(우든칼라)에 선별돼 놓여있는 모습.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서 7월부터 수박 파렛트(팰릿) 거래를 전면 시행하겠다는 방침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5월 중순 강서시장 내 경매제 시장에 출하된 수박이 다단식 목재 상자(우든칼라)에 선별돼 놓여있는 모습. 

서울 가락시장, 경기 구리시장과 함께 수도권 주요 농산물도매시장인 강서시장. 거래금액(2021년 기준 1조2700억원) 규모로는 가락시장에 이은 전국 2위다.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가 공존하고 있어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가락시장과 달리 중소 출하자의 비중이 큰 편이다. 이 강서시장에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7월부터 수박 파렛트(팰릿) 거래의 전면 시행을 추진하면서 유통인과 산지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농가 물류비용·작업시간 부담 가중수도권 시장서 물량 이탈 초래

강서시장에서 수박을 취급하는 도매시장법인 3곳(농협공판장 포함)을 비롯해 시장도매인 등 유통 종사자들은 수박 파렛트 거래 시행에 대해 시장 여건상 ‘시기상조’라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매시장법인들은 “수박 파렛트화는 근본적으로 중소 수박 출하주들이 수박 농사를 포기하도록 하는 조치일 뿐만 아니라 다른 시장으로의 물량 이탈을 초래해 강서시장의 수박 반입 물량 감소가 나타나고 거래 금액이 줄어드는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공통 의견을 공사에 전달했다. 

수박 취급 비중이 많은 시장도매인의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시장도매인은 “출하주와 유통인 모두 득이 되지 않는 제도 도입을 왜 무리하게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시장도매인들의 입장을 정리하는대로 공사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반입량 감소 우려는 수박 파렛트 거래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가락시장과 구리시장 사례에서 기인한다. 2021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2년 4월 파렛트 거래를 전면 시행한 구리시장은 시행 이전과 비교해 수박 반입량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 도매시장 통계연보에 따르면 구리시장의 수박 반입량은 2021년 1만6274톤에서 2022년 1만3990톤으로 14% 줄었다. 가락시장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2016년 시행으로 전년 대비 반입 물량이 12% 이상 빠졌다.

농협구리공판장 관계자는 “6~7월 수박 성출하기 기준 반입량은 2020년 4500톤이고, 파렛트와 바라(낱개) 출하를 병행한 2021년도 전년과 비슷한 4500톤 정도 된다. 파렛트 거래를 전면 시행한 2022년에는 3770톤으로 물량이 16% 정도 빠졌다”며 “APC 또는 선별 작업장을 이용하기 어려운 중소 농가들은 파렛트 작업 비용과 시간 모두 늘어나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음성의 S농협과 연평균 10억원 정도 거래해 왔는데, 파렛트 전면 시행 이후 거래 금액이 1억원으로 대폭 감소했다. 급하게 박스 출하를 추진했는데, 물류비와 시간이 더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농가에 돌아간 가격이 이전 바라(낱개) 출하했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굳이 수도권 대신 지방 시장으로 출하하는 선택을 했다”면서 “여력이 안 되는 산지에선 도매시장 출하 대신 포전거래로 넘기거나 지방 시장으로 빠져나간 사례가 꽤 있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주요 도매시장의 수박 반입량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다. 고령화, 인력난, 수익성 악화 등에 직면한 산지의 수박 재배면적이 해마다 줄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인데, 수도권 3곳 시장 중에서는 그나마 강서시장 반입량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줄곧 3만톤 이상을 유지(2015년 3만1300톤·2016년 3만2000톤·2017년 3만1700톤·2018년 3만1800톤·2019년 3만2600톤·2020년 3만3300톤·2021년 3만6300톤·2022년 3만2400톤)하고 있어 가락·구리시장과 차이를 보인다.

가락시장은 2015년 6만4000톤에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5만6000~5만8000톤 수준을 유지하다가 2020년 5만4000톤, 2021년 5만1000톤, 2022년 4만6000톤까지 크게 떨어졌다. 구리시장도 2015년 2만2900톤에서 점점 감소해 2021년 1만6000톤, 2022년 1만3990톤으로 하향 추세다.

가락시장 수박 경매사는 “구리시장 파렛트 시행 추진으로 산물 출하 물량이 강서시장으로 많이 갔다. 가락시장과 구리시장으로 가지 못한 물량이 강서시장에 출하되는 등 일종의 반사효과를 누린 측면이 있는데, 강서시장이 파렛트 거래를 시행한다면 반입량 감소폭은 예상보다 훨씬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물류효율화? 산지 유통 더 복잡해지고 선별 관련 비용 부담도↑”

공사가 파렛트 거래 추진으로 기대하는 물류효율화, 거래단가 상승, 시장경쟁력 확보 등의 효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서시장 관계자는 “파렛트 시설을 투자하면 한번 투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 회수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중소 농가들에게는 쉽지 않은 부분이다. 또 파렛트 작업 시설이 있음에도 산지에선 성출하기에 선별이 밀리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결국에는 바라(낱개)로 출하하는 물량을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받아줘야 파렛트 출하 물량을 끌어올 수 있는데, 이 부분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파렛트 거래를 시행한다고 해도 우리(강서시장)한테 물량을 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강서시장 A도매시장법인 관계자는 “수도권 시장 3곳이 파렛트 거래를 한다고 하면, 출하자의 1순위 선택은 경매가격이 높은 가락시장일 것이다. 가락시장과 구리시장도 시행하고 있으니 강서시장도 못 할 게 없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강서시장의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 것이지, 파렛트화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하는 공사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오히려 선별을 대행하는 업체들이 생기면서 산지의 물류비용 부담은 커지고, 유통경로는 복잡해진다는 얘기도 있다.

구리시장 관계자는 “파렛트 거래가 시행된 이후 시장 외부에서 선별만 해주는 업체들이 생겼다. 하역반 비용보다는 비싼 편이어서 결과적으로 선별업체 배만 불리는 꼴이다”라며 “물류효율화와 유통간소화를 추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농가 비용 부담이 늘어나고 유통경로만 더 복잡해진 셈이 됐다”고 했다.
 

“여력 없는 농가 ‘출하 선택권’ 제약받을 수 있어일방 추진 안 된다”

파렛트 작업 여력이 안 되는 산지에서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 시장으로의 진입이 점차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락·구리·강서시장의 수박 거래물량은 2021년 기준 10만4400톤. 전체 도매시장 거래물량(24만9000톤)의 42% 정도를 차지한다. 중소 농가들의 수도권 판로가 끊길 수 있다는 점에서 강서시장 파렛트 거래 전환 여부는 꼼꼼한 정책 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구리시장의 C도매시장법인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파렛트 거래로 가야 한다는 방향성은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며 “다만 수익 감소와 인력 확보 등 영농 여건 악화로 수박에서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는 사례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파렛트 거래를 연착륙하는 것을 전제로 추진해야지, 판로를 막아 농사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서시장의 B도매시장법인 관계자는 “수박 파렛트 거래 시행은 영세농의 도매시장 출하를 제약할 수 있기 때문에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취지에 반할 수 있다. 출하자와 유통인 등과의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시행 시기를 못박고 강행하겠다는 움직임은 성과주의 행정에 집착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제기돼 온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이후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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