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잘사는’ 어촌마을…바지락 ‘마을연금’으로 이뤄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바지락을 채취해 판매한 수익의 30%를 마을연금으로 운영하는 태안군 만수동어촌계 사례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크기 상관없이 바지락 캐다
양식장 황폐화, 회원 갈등까지

판매수익 30% 연금으로 적립
수익 나누며 어르신 은퇴 유도

씨알 굵은 상품으로 단가 높여
노인들은 고된 노동 벗어나고 
젊은이는 소득 늘어 ‘신바람’
양식장 키우는 방식으로 관리
환경 개선에도 힘모아

충남 태안군 안면도 남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만수동 마을 어촌계. 전국 최초로 마을연금을 자발적으로 조성해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은퇴연금을 지급하면서 마을이 탈바꿈한 곳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마을연금을 조성하고도 어촌계 회원들의 소득이 더 높아졌고, 젊은 귀어인들이 대기 순번을 뽑고 정착을 기다리는 어촌마을이 됐다.

천수만 간척지를 가로질러 안면도로 이어지는 안면대교에서도 차로 30여분 더 들어가면 태안군 고남면 고남7리 56가구가 함께 살아가는 만수동 어촌계가 닿는다. 만수동 앞 갯벌이 이 마을 어촌계 회원들의 삶과 마을연금 터전이다.

“바지락으로 마을연금을 운영해요. 어촌계 공동작업으로 바지락을 채취하고 공동판매해 소득을 배분, 일을 못하는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소득은 더 높아졌어요”

전제능 어촌계 회장은 마을연금을 이 같이 설명하며 말문을 열었다. 

전제능 어촌계 회장(오른쪽)과 방규환 마을이장.

◆마을연금이 무엇입니까
만수동 마을 앞바다에 펼쳐져 있는 어촌계 마을양식장은 31ha 면적으로 주로 바지락을 양식한다. 어촌계 회원들의 부모님 세대 그 이전부터 가꿔온 마을양식장에서는 동절기가 되면 자연산 굴도 채취하고, 8ha 규모의 해삼 양식장도 관리하며 서로의 힘이 되고 있다.

이름만으로는 생소한 마을연금은 바지락에서 나온다. 마을양식장에서 캔 바지락 판매액에서 일부를 어촌계 운영비로 따로 공제한 후 당일 작업한 수익의 70%를 회원들이 공평하게 나눈다. 그리고 30%는 마을연금 자금으로 적립한다.

마을양식장 바지락 작업에 나오지 못하고 어촌계에서 은퇴한 고령의 어르신들 몫으로 하는 것이다. 지병을 얻거나 불의의 사고로 활동하지 못하는 회원들도 수혜 대상이다. 이 같은 마을연금은 2016년 6월부터 시작됐다. 전국 최초의 사례다. 은퇴한 어르신들에게 지급되는 마을연금은 바지락 생산량에 따라 대략 한 해 1인당 지급액이 적었을 때는 300만원 정도, 많으면 38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전제능 회장은 “바지락 채취는 봄부터 가을까지 사리 때 3일 정도씩 한 달에 6일을 일해요. 바지락 작업에 나온 회원들에게 그날 출하대금을 균등하게 지급하고, 마을연금으로도 30%를 적립하죠. 매일 작업량과 판매액을 휴대폰 문자로 전송하며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지요”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당일 채취한 바지락은 무역업체를 통해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됩니다. 판매 단가 또한 일반 상인에게 넘기는 것보다 더 높게 받고 있지요. 한 달에 2번 정산해 수협을 통해 어촌계 회원들과 마을연금 수혜자 각자 통장에 입금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마을연금에 어촌계 앞날을 걸다
만수동 어촌계는 선대부터 가꿔온 마을양식장을 터전으로 하고 있었지만 이대론 어렵다는 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마구잡이식 바지락 채취로 양식장이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소득도 높일 수 없었다. 어촌계 회원들 간 갈등도 깊어지면서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전제능 회장은 “마을양식장은 말 그대로 어촌계 회원들의 마을공동 자산인데, 예전에는 바지락을 그냥 캐기만 했어요. 건장한 젊은이들과 고령의 어르신들이 경쟁하며 바지락을 캐다보니 씨알이 굵든 작든 간에 가리지 않았죠. 전체 생산량이 많을지 몰라도 상품성이 떨어지다 보니 회원들은 제값도 받지 못하고....”라고 예전 상황을 얘기했다. 사실 전제능 회장은 벼농사와 안면도 특산물인 고구마 등 농업을 해 왔는데, 2014년 6월 어촌계장으로 추대되면서 가장 큰 걱정이 바로 이러한 마을 분위기였다고 한다.

태안군 만수동 어촌계 전경.

그렇게 어촌계장 일을 맡으면서 만수동 마을을 바꿔볼 아이디어를 고민하다 일이 고된 양식장에 어르신들이 나오지 않게 할 방법으로 ‘바지락 마을연금’을 착안해 냈다. 그가 어촌계장을 맡고 1년쯤 지난 후 대의원회를 열어 ‘마을연금’을 안건으로 꺼냈다고 한다. 당연히 찬반 의견이 엇갈렸고, 당시 반대하는 회원들에게 상품성이 좋은 바지락만 채취해 출하하면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하며 개별적으로 찾아가 설득한 끝에 비로소 2016년 6월부터 마을연금이 시작됐다고 한다. 

전제능 회장은 “어르신들이 힘에 부치다보니 작은 씨알의 바지락도 채취했고 이 때문에 젊은 회원들과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바지락을 선별 채취하는 것이 기본인데, 어르신들과 수익을 나누면서 바지락양식장에서 은퇴를 유도했지요”라고 마을연금 배경을 설명했다. 


◆마을연금 부담해도 소득은 높아져
마을연금 성과는 첫해부터 나타났다고 한다. 바지락 생산량은 그 전보다 줄었지만, 씨알이 굵고 좋은 바지락 출하로 판매단가를 높일 수 있었다. 당연히 통장으로 들어오는 소득도 20% 정도 더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크기가 작은 바지락을 캐지 않으니 키우는 방식의 양식장 관리가 가능해졌고, 양식장 환경개선에도 힘을 모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만수동 어촌계 회원들은 마을연금 덕분에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마을이장과 부녀회장을 지낸 만수동어촌계 회원인 김명숙 씨는 “마을연금을 받는 어르신들이 늘 고맙게 생각하죠. 예전에는 (바지락 등)있는 것만 캐고 말았는데, 이제는 마을양식장을 가꾸고 동네도 발전하고 있어 뿌듯합니다”라고 전한다.

현재 마을이장을 맡고 있는 방규환(63세) 씨도 “바지락 생산량이 줄었지만 오히려 소득은 높아졌어요. 마을연금이 잘 운영되고 있고 앞으로도 만수동마을을 지탱하는 기둥이 돼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들어오는 어촌계로 계속 가야겠지요”라고 강조한다.   

전제능 회장은 “마을양식장은 어촌계 회원들의 공동자산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형평성에 맞춰 운영하면서 회원들의 소득을 똑같이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금 운영 이후 귀어인 12가구 마을에 정착

어촌계 가입비 1만원으로 낮춰
귀어인은 여러 분야 재능기부


◆만수동 마을 활기를 찾았다
만수동 마을에는 모두 56가구가 있다. 이 중에서 마을연금을 운영한 이후 귀어인 12가구가 정착했다. 어촌계 정식 회원으로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것도 1인당 가입비 1만원으로 어촌계 문턱을 파격적으로 허물어버린 것이다. 다만 기존 어촌계 마을주민에게 자신들의 전문기술을 재능기부 하는 조건을 달긴 했다.

전제능 회장은 “우리 어촌계로 귀어 한 젊은이들은 저마다 잘하는 기술을 갖고 있어요. 에어컨 등 가전제품 전기기술자, 인터넷 활용을 잘하는 회원 등 다양합니다. 어촌계 문을 여는 대신 재능기부를 당부했지요. 귀어인들 재능기부로 온라인 택배판매, 바지락과 농산물을 포장한 꾸러미상자 등 새로운 판매방식을 개척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귀어 한 신규 회원에게도 부녀회장, 어촌계 사무장, 간사 등을 맡겨 마을일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그 결과 기존 마을주민들과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귀어를 희망하는 모든 분들이 어촌계 회원으로 만수동마을에 정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거주할 주택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존 주민들이 마을을 떠날 경우 살던 집과 대지를 매입할 수 있지만, 자금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태안군에 공동주택 건립을 건의하고 있다고 한다. 전제능 회장은 “마을에 태안군 부지가 있는데, 나대지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에 공동주택을 지어 임대하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귀어 할 수 있는데, 군에서 적극 검토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젊은이들이 정착하지 않으면 앞으로 10~20년이 지나면 우리 마을은 모두 고령자들이 될 것입니다. 누가 마을양식장을 관리하고 마을을 이끌어 나가겠습니까. 가능한 젊은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해야 마을이 유지되고 마을연금도 지속되겠지요”라고 말했다.

특히 마을연금으로 어촌계 회원들이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됐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도 깊어진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전제능 회장은 “바지락 작업이 힘겹다는 건 어르신들이 더 잘 알지요, 작업을 나가는 날에는 어르신들이 식자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기도 해요. 마을연금이 가져온 가장 큰 성과는 더욱 화기애애한 마을이 됐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병성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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