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들 모이는 의성…“농촌에도 우리가 할 일이 있었네요”

[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청춘구 행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명석 메이드인피플 대표(가운데)와 행복동 주민 조소형 씨(왼쪽)와 배슬기 씨(오른쪽). 우연한 기회로 의성과 인연을 맺은 이들은 농촌마을에서 새로운 희망을 엿봤다.

지난해 첫 ‘의성 살아보기’ 진행
청춘구 행복동에 모인 청년들
6주 머물며 ‘진짜 살기’ 결심도
“농사만 짓는다는 편견 바뀌었죠” 

프로젝트 참가자 일부 남아
농촌 정착 도전…마을에 활기

편견 가졌던 주민도 ‘이젠 응원’
올해는 ‘더 길게 살아보기‘ 추진
실제 취업·창업 뒷받침 계획


‘청춘구 행복동’은 경북 의성 안계면에 있는 가상의 청년 마을이다. 올 여름 이곳에 모였던 청년들은 6주간의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마치며 눈물을 보였다. 각자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농촌이라는 공간 속에서 관계 맺음이 이토록 소중한 것인지 깨달음을 얻은 감동의 눈물이었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의성에 오게 됐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왔지만 나도 농촌에서 뭔가를 하며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된 청춘구 행복동 프로젝트 1기생인 배슬기 씨. 유치원 교사를 그만두고 삶의 경험을 좀 더 쌓기 위해 이곳에 온 그는 프로젝트가 끝나고 아예 의성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의성에 남은 청년들은 10여명. 위드(with) 코로나 시대, 이들은 농촌으로 눈을 돌렸다. 인구 소멸 지역으로 꼽혔던 의성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농촌이라고 꼭 농사를 짓는 건 아니야 
의성군 이웃사촌지원센터는 경북도와 의성군이 추진하는 ‘이웃사촌 청년 시범마을’ 사업을 돕는 중간지원 조직이다. 센터는 올해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청춘구 행복동’과 ‘예술가 1촌 맺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농촌 주민들과 도시 청년들이 서로 교류하며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청년들에게는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일깨워 주기 위함이다. 

‘청춘구 행복동’ 1기생 배슬기 씨는 “창업이란 생각은 꿈도 안 꿔봤고, 그냥 평범하게 회사 다니며 사는 생각만 했다”라며 “우연한 기회에 의성에 내려와 보니, 그런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더 쉬워지는 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농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라는 배슬기 씨는 이웃마을에 유튜브 강의를 하며 업사이클링 등 새로운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같은 행복동민 조소형 씨도 농촌에 오면 농사만 지어야 하는 줄 알았다. 외국에서 여행사를 다니다가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의성까지 오게 된 그는 “의성에 살아보겠다는 생각까진 안했는데 와서 보니 우리들을 찾는 분들이 있고, 꼭 농사가 아니더라도 일할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장명석 메이드인피플 대표.

‘청춘구 행복동’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명석 메이드인피플 대표는 “공부해서 대학가고, 취업하고 연봉 얘기밖에 안 하는 세상이다. 청년들이 경험을 쌓고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라며 “농촌에 있다고 꼭 농사만 지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하던 일을 지역에 있는 것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을 생각하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일단 한번 살아볼래
농촌에 사람이 줄다 보니,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각 지자체에서도 청년 인구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의성군도 마찬가지다. △청년시범마을 일자리사업 △도시청년시골파견제 △청년농업인 스마트팜 교육 등 농촌에 젊은이를 유치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런 정책만 믿고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의성군 이웃사촌지원센터 민재희 팀장은 “청년 정책과 연계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주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부터 사업 공간을 임대하는 것부터 주민과 연계 고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라며 “그래서 센터가 지원해 줄 테니 주민들과 어울려 살아보고 이곳에 정착할지 결정하라는 취지로 ‘의성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농촌 마을주민들은 청년 정책으로 마을에 온 젊은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지 않다. 배슬기 씨도 마을 이장님이 슬쩍 귀띔해 그런 분위기를 알아챘다고 한다. '베짱이처럼 나랏돈 받아 놀고만 있다'거나 '왜 외지인에게 지원을 하느냐'라고 하는 분이 계셨다고. 하지만 ‘의성 살아보기’를 통해 그런 오해를 풀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낸다는 게 그의 말이다. 

민재희 팀장은 “하드웨어 사업이 안착하기까지는 2~3년 걸리니 그 사이에 청년 살아보기 사업과 같은 주민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을 진행 한 것”이라며 “내년에는 올해 부족했던 점들을 보완해 적은 인원이라도 좀 더 길게 살아보며 실제로 의성에 안착해 창업하거나 취업할 수 있는 쪽으로 추진하려 한다”라고 전했다. 

정재영 안계면 주민자치회장은 “어디든 마찬 가지겠지만 농촌에 와서 청년들이 활동하면 의복부터 맘에 안 들고, 인사 안하는 것 가지고도 뭐라고 한다. 도시에 살면서 어디 지나가는 사람한테 인사하나”라며 “요즘엔 젊은 사람도 많이 보이고, 코로나로 제약도 있지만 활기도 좀 있다. 주민과 청년들이 소통하며 접촉점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생각 한다”라고 말했다. 

◆농촌과 도시청년이 공존하려면
“저도 처음에 시집 왔을 땐 적응하느라 힘들었어요.” 안계면 주민자치회 간사 윤화영 간사는 남편이 있는 의성으로 시집 온지 11년차 된 여성이다. 결혼 초기, 시집을 왔어도 외지인을 대하는 듯한 눈길이 느껴졌다는 그이지만 이젠 주민자치회 간사 역할까지 맡게 됐다. 

윤화영 간사는 “20대 청년들의 정서가 농촌의 정서와 부딪히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라며 “처음부터 다 잘 맞을 수 없다. 주민과 청년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이 생긴다면 서로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에 청년들이 들어와 정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서로가 서로를 이해야야 하지만, 우선순위를 둔다면 주민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는 게 맞는 것 같다”라며 “주민자치회에서도 회장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보려 한다”라고 전했다. 

유학 후 고향인 의성로 돌아와 레스토랑을 연 소준호 씨.

도시청년들도 농촌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조언. 유학 후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고향인 안계에서 창업한 소준호 씨는 “도시청년들이 농촌 살이에 더 많이 도전하면 좋겠다”라며 “농촌에 와서 할 게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막상 와서 생활하면 도시에서 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도 의미 있는 일이 된다”라고 전했다. 

또 “옛날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생각”이라며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도시에서 보다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달빛레스토랑’을 열었다. 돈가스와 스파게티, 그리고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시즌메뉴가 메인요리다. 

그는 “창업할 때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도시도 아니고 누가 오겠냐고”라며 “하지만 레스토랑이 여기 하나뿐인데다 메뉴도 양식이지만 어르신들에게 친숙한 돈가스를 내놓다보니 코로나 상황에서도 큰 영향을 안 받았다”고 말했다. 

‘청춘구 행복동’에 사는 배슬기·조소형 씨 생각도 비슷하다. 농사 말고는 할 게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농촌에 지내보니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곳이라는 게 그들 생각이다. 위드(with) 코로나 시대, 청년들이 농촌마을로 눈을 돌린다.

 

“막 호흡이 돌아온 단계…체력 보강은 이제부터”

‘힙’한 시골로 알려져 관심집중
별천지로 비춰지는 것은 경계

유정규 이웃사촌지원센터장.

◆유정규 의성군 이웃사촌지원센터장

“청년이 얼마나 늘어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장기적 호흡으로 의성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데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유정규 센터장은 의성군이 청년 정책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것에 경계의 목소리를 냈다. 최근엔 소위 젊은이들이 사는 ‘힙’한 시골로 언론에 알려지며 이웃사촌지원센터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일까지 있었다. 

유정규 센터장은 “행정에선 좋아할지 모르지만, 마치 의성에 오면 별천지가 있는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며 “지금은 응급 상황으로 얘기하자면 청년 정책으로 이제 막 호흡이 돌아 온 단계이지, 체력을 보강하는 일은 이제부터”라고 강조했다. 

그는 농촌의 인구감소 문제가 농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로, 인구를 늘리기 보다 어떤 사람을 살게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유정규 센터장은 “어쩔 수 없이 사는 사람 100명보다, 살고 싶어 사는 50명이 있는게 훨씬 행복한 마을”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인구 늘리기를 말하지만, 결국 의성에 살고 싶은 사람을 어떻게 오게 할 것이냐, 또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안 떠나도록 할 것이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른 지자체도 그러한 방향으로 가야지 정책자금 받아 2~3년 지나고 다시 떠나버리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돈으로 사람을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려고 했는데 지원까지 해주는, 의성은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 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관계인구 즉 의성을 이해하고, 관심을 갖는 사람을 늘리는 정책이 지속적으로 깔려야 한다. 그래야 마을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며 “그것이 예산은 적게 들이면서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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