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더 ‘보랏빛 향기’ 따라 사람이 왔다, 마을이 살아났다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사진 제공=광양시청 홈페이지.

금광 폐광과 함께 암흑기
150→50여 가구 위축됐지만 
꽃 키우며 마을 다시 활기

2015년 심은 라벤더 ‘대박’ 
치유정원 연 최대 6만명 찾아
작년 코로나에도 2만명 훌쩍 

입장료·꽃다발 판매 수익에
화장품·초 등 가공품도 인기
마을 폐교에 예술촌 설립
초등학생 체험학습 돕기도


몸도 마음도 지칠 데로 지친 ‘위드(with, 공존) 코로나’ 시대. ‘치유’와 ‘힐링’이라는 화두가 우리 사회에 던져진 가운데 치유를 상징하는 꽃이자 보랏빛 향기를 내는 라벤더가 광양 본정마을을 찾는 시민들과 이곳 주민, 그리고 마을까지 함께 치유하고 있다. 

“사람들이 떠나고 빈집만 늘던 어머니 고향 마을에 라벤더 단지가 조성되자, 치유하러 사람들이 오고, 여러 가공품이 만들어지며 축제도 열렸어요. 폐교된 어머니 모교는 예술촌으로 변모했고요. 사람들이 마을에서 희망을 얻고, 마을도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고 ‘살아있는 마을의 시작(살마시)’이 될 사업들을 구상하게 됐어요.”

올해 로컬푸드 취재 중 만난 청년 벤처기업 ‘가로주름’ 황현조(27) 대표의 말이다. 그는 외갓집이 있는 본정마을의 변화상을 보고 사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경영학도였던 젊은 청년의 눈엔 무엇이 보였을까. 사라실 라벤더 단지 중심에 있는 전남 광양시 광양읍 사곡리 본정마을을 찾았다. 

광양 본정마을은 현재 라벤더가 만개하는 6월을 기약하고 있지만, 라벤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라벤더를 주원료로 해 화장품, 향초, 아로마 오일 등 다양한 라벤더 가공품이 생산되고 있다. 사진은 본정마을에 라벤더를 처음으로 심은 김동필 씨(사진 왼쪽)와 딸 김선영 씨가 라벤더 제품을 들고 있는 모습.

◆부촌에서 빈촌으로
1960년대만 해도 국내 3대 금광단지로 부촌의 상징이었던 본정마을은 폐광과 함께 암흑기에 들어갔다. 그러다 5년여 전 라벤더를 심으며 마을이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본정마을에 라벤더를 들여온 당사자이자, 이 마을에서 태어나 농어민후계자 등 영농활동을 하며 27년간 마을 이장까지 맡은 김동필(64) 씨는 본정마을의 산증인이다. 지난 12월 18일 본정마을에서 만난 김동필 씨는 수십 년간의 본정마을 역사를 꿰뚫고 있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60년대엔 광양은 물론 전라도에서 제일 부촌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이 본정마을이었어요. 수천 명의 유동인구에 지역에서 전기도 제일 먼저 들어왔고, 병원, 이발소, 영화 상영관 등 당시엔 없는 게 없을 정도였어요.”

소위 잘나가던 부촌의 상징이었던 본정마을은 1970년대 초 폐광과 함께 저물었다. 산에 둘러싸여 있어 농토가 적었던 마을에 주민들만 많아서 먹고 살기조차 힘들었던 것. 그러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이 떠났고 마을 내 초등학교까지 폐교가 됐다. 

“본정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농토가 넓지는 않아요. 그런데 금광으로 인구만 많다 보니 폐광 이후 마을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죠. 한때 150가구를 넘기기도 했는데 50여 가구까지 오그라들었어요.”

사진 제공=광양시청 홈페이지.

◆라벤더가 피니 사람이 왔다
마을의 흥망성쇠를 직접 겪은 김동필 씨는 27년간 이장 생활을 하며 마을을 살리려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른 농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이농 현상 속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는 등 그동안 농업·농촌에 찾아온 한파는 본정마을도 피해갈 수 없었던 것. 

그러다 지병으로 이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5년 전 우연히 라벤더를 본 김 씨가 본정마을에 라벤더를 심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본정마을에 라벤더 단지가 조성되며 라벤더 주 개화기인 6월을 전후해 두 달 동안 작은 시골마을에 수만 명의 구름인파가 몰렸다.  

“5년 전 순천정원박람회 작가 분을 알게 됐고, 박람회 장식 철거 과정 중 현장에 있던 라벤더 세 그루를 본정마을에 가지고 와 심었어요. 그런데 라벤더가 보랏빛을 풍기며 보기에도 좋고 향이 나며 우울증 개선을 비롯해 여러 효능도 갖고 있는 등 다양한 매력이 있는 거예요. 워낙 마을이 쇠락해가니 마지막 승부수로 라벤더를 한번 심기로 했죠. 전국을 수소문해 라벤더 주산지인 강원도 고성에서 라벤더를 가져와 2015년 가을에 1500평 정도 라벤더를 심었더니 다음 해 소위 대박이 났습니다.”

김 씨의 말처럼 본정마을, 그리고 본정마을과 지역 6개 마을을 합쳐 예전부터 부르던 사라실마을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 씨는 본정마을은 물론 이웃 마을도 함께 살 수 있고, 라벤더라는 단어와도 잘 어울리는 ‘사라실 라벤더 치유정원’이라고 라벤더 단지 명칭을 정했다. 라벤더가 마을 곳곳에 피는 것과 맞물려 사라실 라벤더 단지엔 한해 최대 6만명까지 찾았고, 코로나19 타격을 받았던 2020년에도 2만5000여명이 라벤더를 보러 마을을 방문, 치유하고 돌아갔다. 

“우리나라에서 라벤더 주산지이자 관광 상품화된 곳이 강원도 고성인데, 고성과 광양은 지리상 거의 끝과 끝이죠. 그래서 고성에서 라벤더를 못 보는 이들에게 광양에도 라벤더 단지가 있다는 것을 온라인 등을 통해 알렸는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어요. 6월 보라색 라벤더가 피면 경관이 장관을 이뤄 사진 찍기 제격이고, 향도 좋은 데다, 우울증, 아토피  개선 등 여러 효능효과도 있어 라벤더가 관광 상품이 된 거죠.”

사진 제공=광양시청 홈페이지.

◆가공, 체험… 마을이 다시 살아나다
라벤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면서 마을엔 여러 수익도 발생했다. 입장료(환경개선부담금)와 함께 라벤더 생화를 끊어서 꽃다발로 팔았고 이는 드라이플라워가 돼 방향제로도 쓸 수 있었다. 여기에 김동필 씨의 큰 딸 김선영(37) 씨가 합류하면서 여러 라벤더 가공품도 상품화됐다. 4년 전 학원강사직을 내려놓고 젊은 피로 수혈된 김선영 씨는 자격증을 따서 라벤더 아로마, 향초, 화장품 등을 상품화해내기 시작했다. 이 제품들은 현재 방문객은 물론 오픈마켓 등 온라인을 통해서도 판매되고 있으며 입소문을 타고 재구매율이 높다. 또한 음식점 운영은 물론 초등학생 등 여러 계층을 대상으로 체험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김선영 씨는 “라벤더는 여러 효능, 효과가 있는데 특히 아토피 등 피부 진정 효능이 있어 화장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외에도 마을 폐교에 조성된 예술촌과 연계해 초등학생 대상 체험학습 등 여러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벤더단지가 본격 조성되던 2016년 본정마을 소재 폐교에 사라실예술촌이 설립됐다. 김 씨의 전언처럼 현재 예술촌과 라벤더단지과 연계돼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사라실예술촌장 조주현(52) 씨는 “폐교가 된 사곡초등학교는 배우고자 하는 지역민들의 열정이 모여 설립됐다. 지역민들이 십시일반 출자해 학교 터를 조성했다”며 “비록 폐교됐지만 그 마음을 이어가며 지역 작가들이 창작하고 창의하는 문화·교육 공간으로 만들고자 예술촌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조 씨는 “예술촌이 설립되는 시점에 라벤더 단지도 마을에 조성되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관광객들이 라벤더도 보고 예술촌도 방문하는 등의 간접적인 효과는 물론 서로 연계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직접적인 효과도 발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이 몰리고 다양한 상품 개발과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되면서 본정마을은 생기를 되찾고 있다. 이를 누구보다 눈앞에서 목격한 마을 주민들이 마을 변화상을 잘 알고 있다. 

본정마을 청년회장 이경헌(51) 씨는 “사람들이 찾으니 마을이 생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마을가꾸기 사업과 연계해 마을 입구부터 정비를 해나가니 마을이 하루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며 “원래 본정마을이 밤, 매실, 고사리 등으로 먹고 살았는데 이제 관광이라는 최대 수익원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만개한 라벤더 단지.

 

빈집 펜션으로 개조…‘머물다가는 마을’ 만들 것

신비 약재 ‘동충하초’ 재배로
라벤더 관광과 투톱 전략 추진


◆본정마을이 꿈꾸는 더 나은 미래
흥망성쇠를 겪었던 본정마을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앞날을 준비하고 있다. 그 중심에 신비한 약재로 알려진 ‘동충하초’가 있다. 라벤더 개화기인 6월 전후 특정 시기에만 관광객이 몰리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연중 관광 상품화할 수 있고 효능도 좋은 동충하초를 재배해 라벤더와 투톱으로 세우는 전략이다. 

김동필 씨는 “귀뚜라미를 활용해 동충하초를 재배하고 있다. 라벤더는 5~6월 중심으로 관광객이 몰린다면, 연중 재배될 수 있는 동충하초로 체험학습과 가공 상품화를 동시에 꾀하려 한다”며 “내년(21년)엔 구체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곧 선을 보일 동충하초.

이와 함께 21년도엔 ‘머물다가는 본정마을’을 만들기 위해 빈집을 펜션으로 개조하는 등의 사업도 본격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이 속엔 광양읍 지역관광 루트 중심에 본정마을이 있다는 것도 고려됐다. 이를 통해 현재 50여 가구를 100가구 이상으로 늘려 관광객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정착할 수 있는 본정마을로 발돋움하려 한다. 

김동필 씨는 “광양읍 관광 동선이 대형 아울렛, 곧 개관하는 도립 미술관, 와인동굴, 사라실예술촌, 금광단지, 구봉산 전망대로 이어지며 그 간격이 대부분 1km 거리로 가깝고, 이 가운데에 본정마을이 있다”며 “이에 본정마을에 머물 수 있도록 지자체와 협조해 빈집 개선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김 씨는 “한때 광양 중심에 본정마을이 있었는데 그 영광을 재현하고, 이를 통해 광양도 알려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며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든 나날을 겪고 있는데 본정마을에서 힐링과 치유를 하며 극복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본정마을을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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