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프롤로그/농촌 고령화 실태

농촌의 고령화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고, 뚜렷한 해법도 없다. 불과 10여년 후에는 ‘농가인구 2명 중 1명은 65세 이상 고령농’이라는 무시무시한 전망도 있다.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후계인력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이제는 고령농의 삶의 질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때다. 본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지원(2017년 소외계층매체 지원사업 선정)을 받아 농촌 고령화 실태를 점검하고 △소득·일자리 △돌봄·건강 △문화·교육 등 ‘협동’을 통해 고령농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있는 국내·외 우수사례를 소개한다. 특히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농촌 고령화 위기의 대응방안을 함께 모색한다. 총 6회.
 

▲ 지난 9월 20일 영동마을 이장인 이수형 씨(오른쪽)와 전 마을이장이자 마을 최연소자인 류철종(57) 씨가 노인회관에서 어르신들의 안부를 살피고 있다.

#현장/전남 고흥 영동마을
한때 300명 인구가 56명으로
4개 초등학교, 1개로 통폐합
평균나이 70세·최연소 57세
자식들 오는 추석 때나
마늘모종 심기 가능


추석연휴를 10여일 앞둔 지난 9월 20일. 전남 고흥군 두원면에 위치한 영동마을은 마늘농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어르신들로 분빌 노인회관에는 80세를 훌쩍 넘긴 어르신 두 분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을이장 이수형(68) 씨는 “일손이 없다보니 마늘모종 심을 채비를 다 해놓고, 자식들이 내려오는 추석연휴만 기다리고 있다”며 “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추석연휴 때 마늘모종을 심는 새로운 풍습이 생겼다”고 씁쓸해했다.

영동마을은 인구 56명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나이가 가장 어린 주민은 57세.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80세가 넘다보니 평균나이는 대략 70세 정도다. 이수형 씨는 “예전에는 인근 바닷가 갯벌에서 소득을 얻는 반농반어 가구가 많았고 인구도 300명을 넘었는데, 갯벌이 없어지면서 마을인구가 빠르게 줄었다”며 “두원초등학교의 경우 예전에는 학생 수가 1000명을 웃돌았는데, 지금은 인근 4개 초등학교와 통폐합 됐음에도 불구하고 학년 당 학생 수가 10명이 채 안 된다”고 전했다.

고령화와 맞물려 독거노인 비중도 빠르게 늘고 있다. 실제로 영동마을 어르신 중 절반가량은 독거노인이다. 이 씨는 “바로 옆 마을은 올해만 다섯 분이 돌아가셨다. 점점 독거노인 비중은 늘어나고, 요양원에 가는 분도 많은 게 현실”이라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을에 일할 사람이 없고, 활력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생활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다. 올해는 그나마 보건소에서 노인회관으로 찾아오는 건강교실과 노래교실을 진행했다. 이수형 씨는 “어르신들 상당수가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보건소에서 찾아오는 건강교실과 노래교실을 신청해 1주일에 1번, 3개월 동안 수업을 받았다”며 “이마저 수요조사를 해서 따로 신청을 해야 건강교실이나 노래교실 등의 문화활동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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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고령화 실태
20년 간 농가인구 47% 감소 반면 노령층은 38%까지 증가
2015년 농촌 독거노인 11.8%…면지역은 15.5%로 더 높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20년 동안 농가 수는 약 150만호에서 109만호로 27.5% 감소했고, 같은 기간 농가인구는 약 485만명에서 257만명으로 47.0% 줄었다. 농가인구 중 20세에서 39세 사이 청년층 비율은 21.4%에서 11.0%로 낮아진 반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율은 16.2%에서 38.4%까지 증가했다.

농가인구의 감소 및 고령화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2026년 농가인구는 199만명 수준으로 줄어들고, 총 인구 중 농가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3.8%에 그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또한 전체 농가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6년 39.3%에서 2026년 49.3%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0여년 후에는 농가인구 중 절반이 고령농인 셈이다.

특히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농촌(읍+면)지역 독거노인 비율은 2015년 기준 11.8%로 도시지역(동) 5.1%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면지역에 한정하면 농촌의 독거노인 비율은 15.5%로 더 높아지는데, 면지역의 고령화 정도가 읍지역보다 훨씬 심각하다.

실제로 2015년 농촌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은 21.4%(2005년 18.6%)로 고령화 추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고령화 정도는 읍지역과 면지역이 차이를 보인다. 2015년 읍지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14.8%인데 반해 면지역은 28.0%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는 인구밀도가 높은 읍지역 보다는 면지역에서 인구감소 및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 진단/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삶의질정책연구센터장
“시장의 실패, 국가와 협동조합이 해결해야”

의료·문화·복지·교통 등
기본적 사회서비스서 배제
빈곤층 노인 돌봄 필요

농촌은 전통적으로 필요한 것을 가족이나 지역공동체 중심으로 해결해왔다. 몸이 아프면 자식이나 옆집이 돌봐줬고, 농사일도 함께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 및 지역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돌봄 등의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을공동체가 제공한 대표적인 서비스가 ‘장례’였다. 온 동네사람들이 꽃상여 메고 초상을 치렀는데, 지금은 마을에서 장례를 치르는 곳이 거의 없다. 실제로 최근 농촌지역에는 장례식장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현재 전국의 장례식장 1100여개 중 414개가 농촌 지역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제는 농촌지역의 경우 빈곤층 노인이 많다보니 시장에서 실패가 일어나고, 이를 국가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이마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일상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에 접근하는 평균수준에 못 미치는 이른바 ‘사회적 배제’가 발생하게 된다.

농촌지역의 노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적 배제를 경험하는데, 특히 경제적 배제를 가장 많이 경험하며, 건강과 근로, 교육의 배제를 경험한다. 이런 사회적 배제의 증가는 우울 및 자살생각 등 노인 정신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사례를 보면 인구감소에 따른 ‘사회적 배제’의 악순환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먼저 마령면 인구가 감소했다. 인구가 줄면서 수요가 줄어든 마령시장은 그 기능을 상실했다. 뒤이어 지역농협은 진안읍에 소재한 진안농협과 통폐합됐다. 그리고 한의원과 약국이 폐업했고, 군내 버스회사는 배차시간을 조정하고 노선을 축소했다. 지속적인 수요 감소로 면사무소 소재지에 있는 식당도 폐업했다. 이렇게 중심지 기능이 소실되면서 주민들이 의료, 문화, 복지 등의 기본적인 생활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마령면사무소 소재지가 아니라 진안군청이 있는 진안읍까지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마령면에 주소를 둔 초등학생들은 5학년이 되면 진안읍 등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간다. 지역 내 젊은 층의 인구는 계속 유출된다. 진안군 마을만들기지원센터는 2030년쯤이면 마령면이 생활권 중심지로서 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농촌지역의 가족 및 지역공동체가 해체된 가운데 시장에서 실패가 일어났고, 대안은 국가와 협동조합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이를 보완하는 협동조직이 필요하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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