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

▲ 우리동네의원은 의사 이훈호 씨(가운데) 외에도 간호사 신은영(41) 씨(왼쪽)와 물리치료사 최인숙(31) 씨 등의 직원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함께 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농촌, 머지않아 노인 돌봄과 건강문제는 농촌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특히 농촌의 경우 병원 등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교통까지 불편하기 때문에 도시와는 차별화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은 농촌의 ‘의료서비스 접근성’ 문제를,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개선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까운 곳 있으니 수시 방문 가능
진료시간 넉넉
생활습관까지 챙겨
맞춤진료로 ‘건강지킴이’ 든든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성지’로 불리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 이곳을 대표하는 협동조합 중 하나가 ‘홍성우리마을의료생협’이다. 2015년 창립한 홍성의료생협은 그해 여름, 홍동면 상하중마을에 ‘우리동네의원’을 개원했다. 의사 1명과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 직원이 총 4명에 불과한 작은 병원이지만, 지역주민의 만족도는 기대 이상이다.

지역주민인 정수현 씨는 “아이 때문에 병원에 자주 가는데 읍내에 있는 병원은 과잉진료를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지만 우리동네의원은 전혀 그런 게 없다”며 “특히 인간적인 부분에서 신뢰를 갖게 됐는데, 다른 병원의 경우 의사선생님이 진료를 보기 편하게 아이를 꽉 잡고 있어야 되지만, 우리동네의원은 선생님이 아이가 놀고 있는 곳에 와서 무릎을 꿇고 눈높이 진료를 본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특히 작은 시골마을에 병원이 문을 열면서 많은 변화들이 생겼고, 지역 어르신들이 병원을 찾는 횟수도 크게 늘어났다. 우리동네의원 의사 이훈호(39) 씨는 “시골에 사는 노인들의 경우 대부분 군단위 병원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두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마을에선 대부분 볼일을 보고 10시 넘어 병원에 오신다. 한마디로 본인 위주로 진료 스케줄을 짜는 것”이라며 “특히 수시로 병원에 들러서 ‘이 약은 뭐냐?’, ‘몸이 아픈데 어디 병원을 가야 되냐?’ 등을 편하게 물어보시면 안내를 해드리는데, 제가 주치의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농촌지역의 현실에 맞는 맞춤형 진료가 이뤄지는 것이다.

진료 환자는 한달 평균 400~500명 정도. 상대적으로 진료시간이 넉넉하고, 지역주민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건강관리에 이점이 많다. 이훈호 씨는 “무조건 약을 쓰는 게 아니라 생활습관에서 질병의 이유를 찾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여유를 갖고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라며 “무엇보다 지역주민들과 관계가 쌓이면서 가까운 곳에서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물론 의료생협이라는 특성상 수익구조가 좋은 편은 아니다. 이훈호 씨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주민들의 건강’이라는 공익을 우선하다보니 일부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당장은 시골마을에 병원이 생김으로써 주민들의 건강이 어떻게 변하는지 파악하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동네의원은 학교와 지역아동센터와 연계한 건강교실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이훈호 씨는 “앞으로 아이들에겐 건강을 위한 생활습관 등을 교육하고, 특히 어르신들에게는 개인의 건강상태나 의학정보 등을 담은 ‘건강수첩’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라며 “의사는 항상 환자들에게 배우는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의사로서 경험도 많지 않은데 믿고 기다려주는 주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전했다.
 

자료: 2016 농어업인 복지실태 조사(농촌진흥청)


"의사들, 농촌서 일하고 싶어도 쉽지 않아요"

병원 없고 보건소 근무 제한
지역특성 고려, 활성화 필요

“이웃간 뜸 떠 주기 왜 안되나”
대체의학 논란에 아쉬움도


농촌에서 공공의료서비스 혜택이 온전히 전해지려면, 최소한 사명감을 갖고 농촌에서 의료활동을 하려는 의사들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 2010년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면서 홍동면과 인연을 맺었다는 우리동네의원 의사 이훈호 씨도 사실 보건소에서 더 근무하기를 희망했다. 도청에 문의를 하고 관련 판례도 찾아봤지만 제도적으로 더 근무할 방법이 없어 의료생협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훈호 씨는 “같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있었고, 교육환경도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계속 홍동면에 있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며 “개인적으로 병원을 차리거나 의료생협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농촌에 오고 싶은 의사가 있다면 보건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이훈호 씨는 “농촌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보건소 단위에서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제도적으로 의사가 농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엔 대체의학 시술행위에 대한 법적 해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시설이 부족한 농촌지역에선 뜸과 같은 대체의학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현행법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홍동면에 있는 ‘우리마을뜸방’은 최근 의료법 위반을 이유로 임시휴업 상태다. 지역주민들이 서로 뜸을 떠주며 건강을 챙겼던 이곳은 불법의료행위라는 이유로 법정소송 중에 있다. 수년간 아무런 문제없이 마을의 사랑방 노릇을 했기에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우리마을뜸방 활동을 이끌어온 유승희(48) 씨는 “뜸은 건강상 크게 위해가 없고, 서로 떠줄 수밖에 없다. 비용을 받고 한 것도 아닌데 무작정 못하게 것은 의료시설이 부족한 농촌의 현실과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전문가 진단/안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경로당 기점 돌봄서비스·건강프로그램 제공 모색을” 

병원 자주 가야하는 노인들
오히려 더 못가는 게 현실
농촌 의료 접근성 높이려면 
교통 문제 해결이 필수

농촌의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일상생활에서 돌봄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비율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지만, 농촌엔 돌봐줄 시설이나 사람이 부족하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연구결과 건강한 노인은 병원을 자주 가는 경향을 보이지만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노인은 필요하지만 병원을 오히려 못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움직임이 어려우면 의료서비스 이용이 힘들어지고, 건강은 더 나빠지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 농촌의 노인들은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가 있는 마을에서 생을 마감하길 원한다. 다시 말해 마을에서 건강하게 살면서 안정적으로 돌봄을 받을 수 있길 원하는 것이다. 실제로 주간보호센터의 경우 약을 먹고 치유를 하는 곳은 아니지만, 노인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지역사회를 떠나지 않아도 되고, 건강이나 돌봄에 대한 불안감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촌은 주간보호센터 같은 곳이 많지 않고 접근성도 떨어진다. 그래서 최근 100원 택시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용횟수 제한은 물론, 버스 정류장 근처라는 이유로 운행을 하지 않는 곳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양보호사들도 마찬가지다. 환자를 찾아가서 돌봐줘야 하는데 멀리 있는 곳은 꺼려한다. 또 농촌에서는 돌봄 인력을 찾기 힘들어 자연스럽게 거리가 먼 농촌지역은 소외된다. 농촌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교통이 중요한 이유다.

농촌지역의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경로당’을 활용하는 것이다. 연구결과 읍내에 있는 복지관은 몰라도 마을의 경로당을 모르는 노인은 없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작은 시골마을이라도 경로당은 있기 때문에, 이를 기점으로 사회복지사들이 돌봄관련 서비스나 건강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제공할 수 있다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농촌지역 복지관의 사회복지사가 제안한 것처럼 농촌에서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를 발견하고, 1차적으로 읍내병원에 이송하고, 이후 후유증을 최소화하거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 내에 큰 병원까지 갈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하다. 필요한 시설은 부족하고, 교통이 불편한 농촌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이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결국 불안하고 살기 힘들어지면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마을주민들과 지자체, 국가가 도움을 줘야 한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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