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 완주군은 중간지원조직 등 민관협력을 통해 ‘로컬푸드 1번지’의 성공신화를 써내려고 가고 있다. 사진은 안대성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오른쪽)과 정정균 완주군 로컬푸드 팀장.

노인들이 겪는 4가지 고통, 즉 4고(苦)는 흔히 빈곤(貧困)과 질병(疾病), 무위(無爲), 고독(孤獨)을 일컫는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선 이중 빈곤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상대적으로 빈곤율이 높은 농촌은 더욱 그렇다. 빈곤한 노인은 의료서비스를 제때 이용하지 못해 질병이 악화되고, 사회적 활동에도 제약을 받는 것은 물론, 심각한 경우 스스로를 비관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을 주목한 이유는 고령농에게 소득과 일자리를 제공, 빈곤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생산자 조합원 절반이 고령농
대부분 다품목 소량생산
포장·진열 등 유통과정 참여
수수료 10% 제외 모두 생산자몫

농촌 주민들이 주인으로
협동조합 운영 스스로 결정
‘꾸준한 소득’에 대한 확신
지역순환경제 구조 다져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2012년 설립됐다. 완주군에서 2008년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중간지원조직 등을 통해 교육과 연수과정을 거치며 역량을 키웠다. 초창기 2곳의 직매장이 성공을 거두며 조합원이 늘었고, 이에 따라 직매장도 12개까지 확대됐다. 현재 조합원은 1200여명으로, 직원조합원(100명)과 가공법인(100개)을 제외한 1000여명의 생산자 조합원 중 절반가량이 65세 이상 고령농이다.

조합원인 고령농 대다수는 다품목 소량생산을 하며, 포장과 진열 등 유통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이를 통해 유통비용을 아끼고, 소비자에게 적정한 가격에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물론 가격이나 진열방법 등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으며, 생산과정에서는 GAP 수준의 깐깐한 안전기준을 지켜야 한다. 일주일에 한번 정산하는데 10%의 수수료를 제외하고 모두 조합원들의 몫이다.

안대성(48)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은 “고령농의 경우 원래 하던 일을 하는 건데, 로컬푸드 직매장이 만들어지고 소득은 물론, 출근할 곳이 생겼다는 만족감이 매우 높다”며 “경제활동을 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고 덩달아 건강이 좋아진 분도 많다”고 밝혔다.

특히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다양한 가공상품 개발에 노력했고, 이는 완주로컬푸드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현재 직매장에서는 1000여개의 가공품이 판매되고 있고, 이 가공품은 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는 100여개의 가공법인에서 생산한다.

안 이사장은 “우리 지역의 농산물을 구매해달라는 동정에 호소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공식품 개발로 마트 수준의 품목구색을 맞추고, 생산자들에게 다품목 소량생산으로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줬기 때문에 완주로컬푸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가공을 위해 지역에서 원료를 조달하게 되고, 직매장을 통한 소득도 늘면서 순환경제 구조가 만들어졌는데, 단적으로 인구가 적은 면지역에도 편의점과 호프집이 새로 생겼고, 미장원도 장사가 잘 된다”고 말했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이사회와 총회 등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운영된다. 조합원들은 1년에 한번 결산총회를 통해 협동조합 운영전반에 대한 의사결정을 스스로 내린다. 로컬푸드의 안전기준 등이 잘 지켜지는 이유도 조합원들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완주군 농업농촌식품과 정정균(57) 팀장은 “고령농을 포함한 농촌지역의 주민들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로컬푸드 정책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지역순환 경제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경제 활성화 등 로컬푸드 2단계 발전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다는 안 이사장. 그는 10년 뒤 완주가 상당히 재미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현재 완주지역에 협동조합만 80여개가 있어요. 4년 동안 로컬푸드협동조합이 성장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확장된 것이죠. 지금은 인형극이나 축구교실을 하는 협동조합도 있어요. 교육과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협동조합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고, 지역주민들이 협동할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는 거죠. 완주군의 로컬푸드 2단계 발전계획과 맞물려 이러한 협동조직이 어떠한 시너지를 낼 것인지 지켜봐주세요.”
 


#현장/생산자 조합원 남동순 씨
“나이 먹고 매일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아”

남편 뒷바라지만 하다 ‘내 일’ 생겨
‘소비자 실망시키지 말자’ 다짐
판매 농산물 안전기준 준수 철저히

“완주로컬푸드로 제 삶이 달라졌냐고요? 그냥 달라진 게 아니라 완전히 180도 달라졌어요.”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사는 남동순(65) 씨는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이 시작할 때부터 조합원으로 함께했다. 처음엔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남편과 함께 엽채류와 곡물을 재배해 로컬푸드 직매장에 납품하고 있다. 현재 수입은 월 400만원 정도.

“제 개인 소득은 전혀 없었어요, 주로 남편일 뒷바라지만 했고, 농산물을 직접 판다는 생각은 못했죠. 지금은 직매장에 매일 가요. 직접 포장을 하고, 적정한 가격을 매겨서 판매하죠. 매주 수입이 들어오니까 재미있어요. 로컬푸드는 한마디로 제 삶의 활력소죠.”

남씨가 로컬푸드 생산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안전성이다. 소비자들이 맛있게 먹고 건강해지는 게 ‘진짜 로컬푸드’라는 생각 때문이다. “믿고 찾아주는 소비자들이 너무 고맙죠. 조합에서는 소비자를 감동시켜야 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최소한 실망은 시키지 말자는 각오로, 안전기준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어요.”

사실 남씨는 소득보다 매일 출근할 직장이 생겼다는 만족감이 더 크다. “나이 먹고 할 일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아마 완주군에서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의 로컬푸드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초심을 잃지 말고, 당초 취지대로 고령농·소농을 위한 로컬푸드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전문가 진단/정은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조직화 돕는 중간지원조직 필요”

능력있는 전문가 교육 등 담당
마을별 잘할 수 있는 사업 지원

로컬푸드의 역할은 다양하지만 유통 측면에서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로컬푸드는 고령농과 소농에게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고령농과 소농은 자신감을 얻게 되고, 농업·농촌의 활력 증진 등 파급효과도 매우 크다.

실제로 고령농이 돈을 벌게 되면서 자녀들이 부모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자주 고향을 방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귀농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또 로컬푸드 매장을 중심으로 사람들 왕래가 잦고 교류 공간이 필요하다보니 카페와 공방 등이 생긴다. 로컬푸드가 농업·농촌의 지속성과 역동성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긴 어렵기 때문에, 완주군의 사례처럼 고령농과 소농을 조직하고 재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완주군 지역경제순환센터와 같은 중간지원조직이 더 필요하다. 실제로 완주로컬푸드의 성공배경에는 마을단위 교육과 계획생산, 도농교류 프로그램 등을 담당한 중간지원조직이 있었다.

완주군은 농식품부와 행안부 등 각 중앙 부처의 지원사업을 부서별로 관리하지 않고 담당하는 부서를 한 곳으로 집중하여, 필요한 곳에 지원사업을 펼쳤다. 부처간의 칸막이를 없앤 이른바 ‘깔데기론’인데, 이 과정에서 중간지원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능력있는 전문가들이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며, 마을별 인적·물적 자원을 조사하고 마을 역량에 맞게 잘할 수 있는 사업을 단계별로 지원한 것이다.

이제는 농업·농촌도 도시 소비자가 요구하는 내용에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전통문화의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등 체험이나 관광, 자연경관과 힐링 등을 가미하는 농업의 고부가가치 향상 노력이 그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역에 사람이 살아야 하고 무엇보다 지역의 먹거리 문화를 계승하는 무형문화재이고 그 지역에 있는 이야기나 다양한 자원의 쓰임새를 아는 지역자원의 보물창고인 고령농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사회 유지·발전의 중요한 인적자원으로 고령농을 봐라보고, 이들을 협동조합 등으로 조직화할 수 있도록 돕는 중간지원조직이 필요하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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