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주민 하나의 유기체로 똘똘
마을과 마을 연계 활성화 모색도


마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나와 있다. 또한 농업용어사전에서는 ‘주로 도회지 밖에 비교적 소수의 살림집들을 구성요소로 하여 한 떼를 이루고 있는 지연(地緣) 단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을은 농촌을 이루는 근간으로 마을의 발전이 농촌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지난 수십년 동안 농촌의 활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1970년대 이후 산업화에 따른 도시화 집중, 이로 인한 농촌 인구 감소, 국가 GDP에서 농업의 비중 감소 등 이런 저런 이유로 농촌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농촌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농촌 현장 곳곳에서 반등의 기지개를 펴고 있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 관련 통계를 보더라도 희망이 보인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15년 12월 현재 전국의 마을은 3만6792개였는데, 이는 2010년 3만6498개보다 294개 증가한 수치다. 특히 농가가 있는 마을은 3만6197개소로 전체의 98.4%를 차지한 가운데 농가와 임가 마을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농가인구 감소, 농촌 고령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농촌의 마을은 오히려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전국 3만6792개의 마을을 이으면 거미줄 그 이상으로 복잡한 선이 그려질 것이다. 이는 마을들 간에 부족함을 서로 보충해주고 마을 개별 단위의 활성화는 물론 마을과 마을을 연계해 활성화 할 수 있는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변신하는 농촌 마을 사례는 희망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충남 홍성군 장곡면은 고령화율이 특히 높은데, 청년 귀농인들이 힘을 모아 ‘젊은 협업농장’을 일구면서 농촌 마을의 분위기를 완전히 역전시킨 사례로 주목되고 있다. 또한 농사짓기 불리한 조건을 오히려 마을 활성화에 이용한 강원도 평창 의야지바람마을은 농촌 주민이 하나의 유기체가 돼 농촌 마을을 발전시키는 사례로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 홍성군 장곡면에 있는 ‘젊은 협업농장’은 토지 및 시설의 소유가 아닌 임대 형식을 통해 공동 생산하는 협업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 곳은 청년층의 농촌 생활을 돕는 등 ‘인큐베이팅’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통해 마을에 큰 활력이 되고 있다. 사진 제공=‘민택기사진관’.

●충남 홍성 ‘젊은 협업농장’
청년 귀농인 속속
주민과 적극 교류
함께사는 농촌 꿈꿔


충남 홍성군 장곡면은 홍성군 내에서도 전형적인 농업 지역으로 꼽힌다. 홍성군 내 전업농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 그럼에도 고령화는 한계를 넘어선지 꽤 됐다. 홍성군에서 농업인의 고령화가 가장 높은 지역이 바로 이 곳이다. 2014년 충남의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평균 42.7%. 장곡면은 이미 2010년 44%를 뛰어넘었다. 20~39세의 비율 역시 홍성군에서 가장 낮다. 면 단위에 초등학교는 1개소에 불과한 실정. 아이 울음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청년층의 유입이 없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늙어가는 마을의 지속 가능성은 점점 불투명해졌다. 2013년 기준 3100여명의 사람들이 이 곳에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청년 귀농인들이 이 곳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찾아 어르신들이 들기 힘든 상여를 매기도 하고,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가옥의 지붕 위에 설치된 TV수신기를 수리하는 일도 왕왕 생겼다.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변화가 마을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끔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선도한 곳이 장곡면에 있는 ‘젊은 협업농장’이다.

이 농장은 농촌을 사랑하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는 공간이지만, 단순히 농사만 짓는 것은 아니다. 신규 농업인에게는 유기농 재배 교육 등은 물론 현장 교육과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인큐베이팅’ 교육 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농업인과는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살아가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젊은 협업농장’의 시작은 단출했다. 귀농을 꿈꿨던 3명이 힘을 모아 2011년 장곡면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토지와 시설 소유가 아닌 임대 형태로 하우스를 빌려 유기농 쌈채소 등을 재배했다. 2012년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뒤 현재는 10인 내외의 다양한 사람들이 협동조합 방식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매년 일하는 이들이 달라진다. 이 곳에서 생활하며 농업 현장을 배우고 자발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대를 비롯한 새로운 젊은 세대들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이는 ‘협업농장’이라는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청년들에 맞는 농업 실천 방식을 고민한 끝에 ‘협업농장’이라는 개념이 탄생됐다. 개인적 토지, 시설 소유가 아닌 자본이 없는 청년들도 누구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협업농장을 통해 20~30대 청년들이 이 곳을 찾게 됐고, 협동조합 농장의 조합원으로 참여해 농사는 물론 다양한 재능을 펼쳐 나가는 기회의 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면서 사진작가, 영화감독, 디자이너, 교사, 농업 전문가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지역 사람들도 모이고 있고, 장곡면 일대에 다른 젊은 농장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협업농장이라는 개념은 생산 자체를 공동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공동으로 생산하고, 이 수익을 공동으로 나눠가지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농업 활동만 하고 있는 곳은 아닙니다. 농업에 신규 진입하려는 20~30대 젊은이들은 땅을 살 돈도 없는 데다 어르신들처럼 하루 종일 농사만 지으라고 하면 농촌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 활동이 함께 이뤄지고 있어요.”

지금의 ‘젊은 협업농장’이 있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정민철 젊은 협업농장 대표의 말이다. 정민철 대표는 “이런 차원에서 자본이 없는 사람들이 농업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마을 입장에선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20~30대들이 유입되면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효과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곡면 일대에선 젊은 협업농장과 같은 협동조합의 청년 농장이 최근 몇 년간 증가해 5개소에 달한다. 40대 이하 상주인구도 20여명 정도나 된다. 청년 농장이 표방하는 역할도 모두 다르다. 젊은 협업농장은 인큐베이팅 교육기관, 행복농장은 만성정신질환자를 치유하는 농업 시설이다.

정민철 대표는 “장곡면 일대의 이런 움직임은 사회적 농업이라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며 “농장을 만들면서 교육, 치유, 엔터테인먼트 등 젊은이들의 재능이 결합하면서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있게 됐고, 이런 부분들이 농촌 생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지역 마을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들어 수익을 목표로 하는 6차 산업 모델 등이 지역별로 굉장히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 마을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며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람을 불러 모아야 하고, 농촌 생활에 훈련 받은 사람들이 상주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강원도 평창 의야지바람마을은 자연경관과 긴 농한기를 이용한 마을공동사업을 비롯해 정보화마을 등을 통해 마을발전에 힘을 모으고 있다.

●강원 평창 ‘의야지바람마을’
“긴 겨울 활용하자”
주민들 의기투합
눈썰매장 밑천으로


강원도 평창 의야지바람마을에서는 지리적 여건상 겨울이 길기 때문에 4월에 접어들어서야 농사일이 시작된다.

하지만 의야지바람마을의 주민들은 불리한 영농 여건을 활용해 마을의 변화를 추구해 왔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5년. 11월부터 3월까지 5개월이나 되는 농한기 틈새를 활용하고 긴 겨울을 이용해 ‘겨울 눈놀이 사업’을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 마을 농가들은 자신의 경제 사정에 따라 출자를 해 ‘의야지청년회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마을 눈썰매장을 개설해 농한기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의 호응과 함께 시작한 공동 사업 첫 해에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 방문객은 많았지만 사업 운영을 결산해 보니 투자비 대비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첫 해 사업을 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운영의 전문성과 경험 미숙이 문제라고 자체 분석하고 사업을 재정비해 이듬해에도 이어갔다.

이처럼 주민들의 의지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2007년 녹색농촌체험마을, 2009년 정보화시범마을 등에 선정되며 의야지바람마을은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방문 체험객은 내국인보다는 외국인의 비중이 높아졌다. 겨울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동남아 지역에서 온 관객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여행사와 연계해 아예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것이다. 평창군에 따르면 지난해 의야지바람마을을 다녀간 관광객은 5만8000여명에 달해 이 지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정보화 수준도 높다. 마을에 농특산물 판매장과 카페를 겸한 정보화센터를 설치해 운영하면서 지역 농가들에게 농산물 유통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이선학 위원장은 “우리 지역은 산악 지대이지만 대부분 농가들의 영농규모가 크다”며 “따라서 정보화 마을센터를 중심으로 농산물 유통 정보를 공유하며 보다 좋은 조건에 출하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마을공동체 복원 지원체계 구축이 먼저”

수익 측면의 단편적 성과 벗어나야
행정과 협업, 민간 인적자원 개발을

 

“농촌 마을의 미래를 만들고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은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재 농촌 마을의 상황은 마을 스스로 복원하기가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은 지원시스템, 지원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4년 전북 진안군을 시작으로 국내 처음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을 주도해 왔던 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은 충남 지역에서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농촌 마을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그는 이미 고령화가 심화되고, 마을 공동체가 붕괴된 농촌 현실 속에서 행정에 국한된 마을 활성화 사업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원시스템 구축과 지원 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등 장기적 관점에서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봤다.

구자인 센터장은 “농촌 마을이 선택해야 하는 길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며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갈 정도로 어려운 과제들을 농촌 마을에 던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구 센터장은 “행정에 국한된 마을만들기 사업은 한계가 있다”며 “농촌 마을이 기본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색다른 것보다 보편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귀농이나 뜻이 맞는 사람들이 현장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형태가 하나 둘씩 성공하게 되면 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농촌 마을을 살리는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마을 공동체와 행정 협업을 강조하는 부분과 농촌 자치단체의 민간 인적 자원 개발을 위한 방안, 시군 단위 마을 밀착형 중간 지원 조직 설치를 적극 장려하는 대책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성·고성진 기자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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