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전북 순창으로 귀농한 배상일 씨가 자신의 하우스에서 재배 중인 친환경 쌈채소를 살펴보고 있다.


얼마 전 한 서울대 교수가 “딸에게 농고 진학을 권한다”고 해서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인구학의 권위자인 서울대 보건대학교 조영태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나라 농촌지역에 살고 있는 인구가 15% 정도밖에 안된다. 평균 연령은 60세다. 이 세대가 빠져나가면 더 이상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며 “아마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가 20대 초반이 되는 10년 뒤엔, 남들 안하는 농업을 했다는 것 자체가 희소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몇 년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향후 20~30년내 가장 유망한 직업으로 농업을 꼽는 세계적 투자전문가, 짐 로저스도 같은 의견이다. 최근에도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기에 적당한 직업’으로 주저 없이 ‘농부’를 꼽고 “농부의 평균 나이는 미국에서 58세, 일본에서 66세로 고령화가 심각하다…지금 삶이 마음에 안 든다면 농부가 되라”고 말했다.

이미 농업·농촌은 급격한 농업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의 예측이 맞다면, 가까운 미래에 농업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 안정적이고 유망한 직업이 될 지도 모른다. 미리 준비할만한 ‘비빌언덕’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예측’만으로 무일푼의 청년세대가 귀농을 꿈꾸기엔 현실의 장애가 너무 많다.

또 한편으로 농업인구의 감소는 당장의 농업 경영을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농촌은 농번기마다 일손 전쟁을 벌이고 있고, 갈수록 뛰는 농업 노임은 농가 경영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미래에 대한 장밋빛 예찬이 아니라 발 딛고 선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귀농 3년차, 아직은 빈손"

●전북 순창 귀농청년 배상일 씨

대출 막히고 땅 임대도 어렵고
귀농 청년에 현실은 냉혹
직거래로 자구책 모색 안간힘


“제가 몇 년 살면서 느낀 건 농사지어선 돈을 벌 수 없다는 거예요.”

전북 순창에서 쌈채소 농사를 짓고 있는 배상일(40) 씨는 2014년 부푼 꿈을 안고 귀농한 이른바 ‘귀농청년’이다. 도시생활이 힘들어 선택한 귀농이었지만, 농촌의 현실도 만만치 않았다. 돈을 벌기는커녕 당장 농사지을 땅도 없었다. 

“대부분 시골은 집성촌이고, 외지에서 온 사람한테 땅을 잘 팔지 않고 임대를 주지도 않아요. 농지은행에 나오는 땅도 많지 않기 때문에 땅을 임대하려면 마을회관을 쫓아다니며 애걸복걸해야 하죠. 저도 땅을 구하는데 1년이 걸렸어요. 마을 어르신들과 친해지고 나니 땅을 알아봐주시고 도움을 주시더라고요. 그나마 운이 좋았죠.”

배씨는 어렵게 농지은행을 통해 400평 규모의 땅을 10년간 임대했고, 하우스 3동을 지었다. 당장 4000만원 가량의 큰돈이 필요했지만 ‘귀농청년’을 위한 도움은 없었다. 오히려 담보가 없다며 대출도 받지 못했다. “농협은행에서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1000만원도 대출을 못 받았어요. 15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고, 금융거래 기록이 있었을 텐데 땅과 같은 담보가 없다며 대출을 안 해주더라고요. 청년귀농을 장려한다고 하는데, 현실은 정말 냉혹하더라고요.”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배씨는 여전히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연중 생산으로 바로바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쌈채소를 선택했지만, 인건비와 부자재값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게 배씨의 설명이다.

“처음 1년은 준비단계였고, 본격적인 농사는 2년차를 맞았는데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면 사실상 소득이 없어요. 청과에 물건을 내서 경매로 판매하는데, 제값을 못 받기 일쑤에요. 쌈채소 가격은 현재 2키로당 5000원 정도 하는데, 어머님들 인건비가 4~5만원, 박스값 680원, 상하차료 250원, 경매수수료 7% 등 이런 거 저런 거 떼면 정말 남는 게 없어요. 회사에 다니는 아내가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죠.”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한 ‘청년 농산업 창업지원’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일본의 청년 신규취농 급부금 제도를 본 따 만든 이 사업은 농산업 분야 청년창업자 300명에게 2년간 매월 80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배씨 역시 청년창업자로 선정돼 기대를 가졌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깊은 허탈감을 맛보게 됐다. 정부가 갑자기 말을 바꾼 것이다. 지원기간은 2년에서 1년으로 줄었고, 금액 또한 약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지원자금의 사용용도를 소모성 농자재 구입 등으로 제한하면서, 귀농초기 소득보전이라는 본래의 사업취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이게 작년 7월의 일이다.

“정말 필요한 사업이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이제 막 내려와서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월급처럼 생각을 했고, 정부 말만 믿고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온 분도 있었어요. 저도 계획대로 했으면 시설규모를 좀 더 늘려야 했지만, 사용처가 제한되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비료와 상토를 구입하는데 지원금액 대부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죠. 사업내용이 바뀌고 나서는 교육이수는 다 없어지고, 영수증 증빙만 잘하면 되는 걸로 바뀌었어요. 교육에 대한 기대도 컸는데, 허탈했죠.”

상심이 컸지만 그래도 귀농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배씨는 스스로 자구책을 모색 중이다. 당장 올해부터 직거래 판매 비중을 늘려 소득을 높여 볼 참이다. “귀농하면 100 정도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30 정도 좋은 것 같아요. 공기도 좋고 시골 인심도 좋고 장점도 많아요. 다만 정부가 진정으로 청년귀농을 장려하고 싶다면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해주고, 안정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도록 소득을 보전해주는 파격적인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청년 농산업 창업지원’ 실패, 왜?

생활안정자금 지원 공언했다
기재부 반대로 사업계획 뒤집어
유입부터 교육, 안정적 정착까지
호흡의 중장기 프로그램 만들어야

 

농식품부가 지난해 야심차게 추진한 ‘청년 농산업 창업지원’은 사실상 실패했다. 사업이 확정되기도 전에 매달 80만원의 생활안정자금 지원을 공언했다 기재부의 반대로 사업계획을 바꿔버린 농식품부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농식품부는 조만간 이 사업에 대해 평가하고, 진행여부를 기재부와 다시 협의한다는 방침이지만, 당초 매달 80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청년 농산업 창업지원’ 사업의 부활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업이 좌초한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용도제한이 없었던 생활안정자금 지원을 두고 기재부의 문제제기가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기재부 설득에 실패하면서 교육이수 대신 농자재를 구입하고 증빙하는 것으로 사업내용이 180도 뒤바뀐 것이다. 또한 예상과 달리 청년 귀농인 300명 모집이 미달되면서 기재부 수시배정사업 심사에서 추진방식의 변경을 요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경영인력과 배민식 사무관은 “당시 사업담당자가 기재부와 협의가 원활히 진행될 것으로 보고, 생활안정자금 지원을 성급하게 발표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농식품부는 앞으로도 영농진입 장벽을 해소하고, 특히 청년 귀농인들을 위해 영농기반 마련은 물론 귀농 초기 소득보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정섭 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청년 귀농인을 지역농업을 이어갈 후속세대로 이해한다면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긴 호흡을 갖고 ‘육성’의 관점에서 단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정책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귀농 초기 생계문제 해결부터 집중적이고 전문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 부족한 영농기반을 확충할 수 있는 파격적인 융자, 보조, 농지 수급정책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장 일할 사람이 없다” 농번기 일손 전쟁

 

2026년엔 농가인구 절반이 '65세 이상'

▲농가인구 실태=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20년간(1995~2015) 농가 수는 약 150만호에서 109만호로 27.5%가 감소했다. 같은 기간 농가 인구는 485만명에서 257만명으로 47%가 줄었다.

급격한 인구감소보다 더 심각한 건 농가의 고령화다. 109만 농가 중 40세 미만 청년농가는 1만4366호. 고작 1.3%에 불과하다. 70대 이상이 41만1000호(37.8%)로 가장 많고, 다음이 60대(30.5%), 50대(22.7%), 40대(7.7%)순이다.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연구원은 10년 후인 2026년이면 농가 수는 약 96만호, 농가인구는 199만명으로 줄어들고, 이 중 65세 고령인구가 49.3%를 차지할 것으로 추산했다. 2015년 현재 ‘영농 승계자가 있다’는 농가 수는 약 9.8%. 이대로는 농업 인력 유지 및 재생산 가능성이 매우 불투명하다는 얘기다.


적기 파종 놓치고 수확 포기까지

▲인력 구인난 심각=이같은 농업 노동력 부족 문제는 당장 농가 경영을 위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농산물가격 인하 압력과 경영비 상승으로 실질농가소득은 감소하는데, 농업노동 임금은 해마다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고, 그나마 일손을 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적기 파종을 놓치거나 농사를 지어놓고 수확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시설원예나 축산의 경우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농업고용인력 실태 조사 및 수급 안정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농가 가구원 가운데 임시 종사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농가는 74.6%에 달한다. 연평균 농업노동 투입 가운데 가족노동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80.4%, 고용 노동력은 14.7%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노동력의 36.7%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몫이다.


정부·지자체·농협 등 적극 나서야

▲더 적극적인 정책 개입을=타 부문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고, 구인정보 접근이 어려우며, 교통이 불편하고, 농작업의 계절진폭으로 지속 고용이 어려운 농업 노동의 특성상 개별 농가가 고용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농협 등 공공부문의 강력한 정책 개입이 절실하다.

현재 정부는 균특회계를 활용, 2015년부터 전국 5개 권역 13개 시·군에서 ‘농산업인력지원센터’를 설치, 고용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숙식과 교통비 보조, 농작업재해보험 가입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인력 수급에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정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고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고용과 관련, 1년 단위 상용근로자만 허용하고 있는 관련법의 손질과 ‘계절 이주 전문작업단’에 속해 있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양성화 방안 마련, 수요조사체계 개선을 통한 쿼터 배분 현실화, 단기취업 계절근로자제도 확대 등을 검토할 것을 제안했다.

김선아·이기노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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