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농정에서 가장 핵심의 하나가 안정적 농업예산 확보이다. 농업예산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농축산물 시장개방과 함께 역대 정권마다 농심 달래기의 단골 메뉴로 강조됐지만 그동안 국민들의 오해와 불신만 키운 채 흐지부지 끝났다. 더욱이 농촌의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가속화되면서 농업예산은 생색내기에 그치는 등 국가 전체예산에서 외면 받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새정부 출범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대비하면서 남북 농업협력 재개와 지속가능한 농업발전 등을 위한 농업예산 확보가 강조된다. 특히 농업인에게 직접 지원하는 직불제 예산 비중을 대폭 확대해 안정적 영농을 보장하는 예산개편 방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업예산 감소…농업 홀대 극심
예산 부풀리기로 불신 초래
그나마 적은데도 집행률 낮아

지속가능성·다원적기능에 초점
농정 예산구조 개편 급선무
직불금 비중 50%까지 늘리고
직불제도 다양화 서둘러야



◆농업예산비중 10년 새 반토막

역대 정권에서 농업예산 비중은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인 2008년 국가 전체 예산의 6.2%에서 올해 3.6%로 10년 만에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취임 이전 농업예산 비중을 국가 전체 예산의 10% 배정을 강조했지만 취임 후 2002년 9%였던 농업예산 비중이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6.5%까지 하락했다. 2000년 이후 농업예산 증가추이를 보면 노무현 정부인 2003년~2007년 5.02%를 유지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연평균 약 3.8%로 낮아졌다. 박근혜 정부인 2013년~2016년 농업예산 증가율은 약 1.7%로 하락했다.

실제로 역대 정권의 농업예산 비중은 이명박 정권 초기 2008년 15조9821억원으로 국가 전체 예산 257조2000억원의 6.2%였다. 2011년에는 국가 전체예산이 309조1000억원으로 300조원을 넘었지만 농업예산은 17조6358억원으로 5.7%까지 추락했다. 국가 예산 증가율 5.6%에 비해 농업예산은 2.2% 증가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전체예산이 342조원으로 5.1% 올랐지만 농업예산은 18조3862억원(1.4% 증가)으로 비중은 5.4%에 그쳤다.

농업예산 홀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지난해 국가 전체예산은 386조4000억원으로 2.9% 늘었지만 농업예산은 19조3946억원으로 0.5%였다. 올해는 더욱 심각하다. 국가 전체예산이 400조5000억원으로 6년 만에 100조원 증액됐으나 농업예산은 19조6221억원(1.2% 증가)으로 비중이 4.9%까지 하락했다.

이같은 농업예산 비중 감소는 예산당국의 농업경시와 무분별한 예산정책 및 비효율적 예산집행 등 여러 가지 요인에 기인하다. 정권마다 시장개방 대응 전략으로 제시한 무분별한 예산정책이 국민들의 불신을 키웠다. 실제 예산반영은 낮은데도 정권기간 동안 투입할 전체 예산을 일시에 투자하는 것 처음 부풀리거나 기존 예산을 시장개방 대응에 전용함으로써 오해를 초래했다.

김영삼 정부의 42조원 농어촌 구조개선사업과 김대중 정부의 45조원 농업·농촌 발전계획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까지 이어진 119조 농업·농촌 종합대책도 예산중복 정책으로 꼽힌다. 정작 한·중FTA 비준에 맞춰 여·야·정이 합의한 1조원 상생기금은 기금운영본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기업체의 협조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예산집행의 비효율성도 문제다.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전체 국가예산 집행률이 약 97.1%인데 반해 농업예산 집행은 약 83.6%에 그쳤다. 예산 자체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계획된 예산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불용처리된 것이다. 3년 동안 불용예산이 3조3391억원에 달한다. 더욱 큰 문제는 재정당국의 농업예산 감축 계획에 있다.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농식품부 예산은 2016년 14조3681억원을 정점으로 2018년 14조757원, 2019년 14조217억원 등으로 갈수록 축소된다. 연평균 0.2% 줄이는 방안이다.


◆예산 확대, 직불제 중심 개편을

국가 전체 예산에서 농업예산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농업계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핵심사안의 하나로 꼽힌다. 매년 국가 예산 증가율 만큼 농업예산을 배정해 농업의 다원적 기능수행과 소득안정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의 경우 대선 농정공약 요구에서 농·식품분야와 농식품부 소관 예산 증가율을 국가 전체 예산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비중도 5%까지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통해 농가 소득과 경영안정망 정비 및 확충의 핵심 과제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물론 농업의 다원적 기능 강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영위하자는 취지다.

강마야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농정 예산구조, 이렇게 바꾸자’를 통해 정책적 효과성 확보를 강조했다. 농정목표는 농가소득 향상 및 안정적 식량공급 등인데도 관련 부문 예산 비중은 5년 전 대비 줄었다는 것이다. 농가소득 및 경영안정 부문의 경우 2009년 21.4%에서 2014년 17.6%로 줄었고, 농업체질강화는 같은 기간 20.1%에서 23.5%로 증가했다. 양곡관리 및 농산물 유통부문은 같은 기간 25.9%에서 25.4%로 비슷해 외형상 정책목표와 실질적 정책수단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강 박사는 농정예산 구조를 ‘지속가능성, 다원적 기능 함양’에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정부개입영역 사업군 개편을 제시했다. 논 농업 인프라(SOC)와 농촌지역개발사업은 단계적으로 감축하거나 일몰하되 미래 농업 인력의 인적자본 투자와 밭농업 인프라(SOC, 지특회계 확대), 직불 등 소득안전망, 농촌사회복지 사각지대 해소. 환경경관·지역자원 보존 등 다원적 기능 함양정책, 학교·공공급식 등 공동조달 정책, 식품안전·위생검사·방역 정책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이와 함께 예산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 직불제 개편이 강조된다. 새정부 임기 내에 농업직불금을 전체 농업예산의 50%까지 높이고, 장기적으로 유럽연합(EU)이나 스위스처럼 예산의 80%까지 확대하자는 것이다. 농업직불제는 쌀고정·변동직불제를 비롯해 경영이양직불, 친환경농업직불, 조건불리지역직불, 경관보전직불, 피해보전직불, 폐업지원직불, 밭농업직불 등 9개이다. 지난해 예산은 2조1124억원으로 농식품부 예산 14조3681억원 대비 14.7% 수준이다. 특히 쌀 직불금에 집중돼 이에 대한 개선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최근 농민행복·국민행복을 위한 농정과제 공동제안 연대는 새정부 농정과제의 하나로 직불제 확대·재편을 통한 농업재정 계획을 제시했다. 다원적 기능의 직접지불제와 시장개방 피해로 인한 소득보전 직불제의 조화를 통해 농가소득 안정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자는 취지다. 아울러 일정 조건을 갖추거나 의무를 준수하는 농업인은 누구나 지원받는 기본형과 가산형 직불제로 확대 재편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이와 함께 이정환 GS&J 이사장은 신정부의 농정방향 시리즈(4) ‘농업의 가격조건 악화 대책-가격변동대응 직불’에서 가격변동대응 직불 대상 품목을 쌀 등 모든 농산물로 확대해 현행 쌀 변동직불 방식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는 특정작물의 재배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농업 총 생산액의 10%인 약 4조4000억원까지는 품목 불특정 최소허용보조로 AMS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산소요액도 쌀을 포함해 연간 최대 2조70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돼 충분하다는 논리다.

문광운 기자 moonkw@agrinet.co.kr


●선진국 농업예산 살펴보니…

EU 농업예산 직불금 비중 지속 확대
시장가격 지지 벗어나 생산자 지지로
미국 재해보험 등 안정망 확충 무게


EU(유럽연합) 농업예산은 약 571억3771만 유로(2013년 기준)로 국가 전체 예산(1509억 유로)의 약 38%에 달한다. EU 농업예산은 직불금 예산 비중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EU 농업예산에서 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61%(250억유로)에서 2013년 72%(409억유로)까지 늘었다. 예산 성격도 시장가격을 지지하기 위한 예산이 축소된 반면 생산자 지지나 환경보전 등으로 예산 비중이 옮겨져 왔다.

안병일 고려대 교수의 ‘EU CAP(공동농업정책) 개혁의 주요 내용’을 보면 2014~2020년 CAP 목표는 △실행 가능한 식량 생산 △자연자원에 대한 지속가능한 관리 및 기후변화 대응 △지역의 균형적 발전 등이다. 이 같은 목표 아래 생산과 연계된 직불제는 없애는 대신 식품안전이나 환경보호, 동물복지 등의 의무를 준수하는 조건으로 예산을 새로 마련했다. 또한 직불금 제도에서 상호준수 의무를 부과해 이를 지키지 않는 농가에게는 직불금을 줄이거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는 규정을 두었다. 이는 농가소득을 지지하는 동시에 농업·농촌의 지속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 농업예산 약 1553억1600만 달러(2013년 기준)로 국가 전체 예산(약 3조8030억 달러)의 4.1%이다. 미국의 농업예산을 보면 농산물 가격지지나 농가지원 관련 예산이 감소하는 반면 농작물재해보험과 같은 농가 안전망 확충 예산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미국의 재정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농가지원 예산을 줄였지만 연방작물보험 프로그램 예산을 확충하는 등 농가가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정책을 동시에 전개해 온 것이다. 이와 함께 작황에 관계없이 지급되는 고정직불제는 폐지하는 대신, 가격하락 및 단수 감소 등으로 발생하는 농가 손실분을 보전해주는 가격손실보상제도, 수입손실보상제도 등이 새로 도입됐다.

임정빈 서울대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미국의 농업법은 수입손실보상제도를 통해 작물보험에 의해 보상되지 못하는 일정부문의 농가손실을 지원하고 있으며, 기존의 마케팅론 제도를 통한 최저가격보장, 가격손실보상제도를 통한 목표가격 보장, 그리고 작물보험을 통한 대규모 손실위험보상 등 이중 삼중의 농가소득 안전망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김관태 기자 kimkt@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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