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대선 연속기획 <1부> 문재인 정부 농정 5년의 교훈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김선아 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당초 기대했던 농정개혁은 실현되지 않았다. 개혁의 고삐를 강하게 죄어야할 집권 초 농정공백이 이어졌고, 뒤늦게 출범한 농특위는 ‘자문기구’라는 제도적 한계와 내부 갈등 탓에 흔들렸기 때문이다. 정부 요직에 들어가 변화를 이끌어야 했던 인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이제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고 추진하는 일은 새 정부의 과제로 넘어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과거의 경험에서 배워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었다.
 

‘농정개혁 골든타임’ 놓치지 말아야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농업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을 중요하게 언급했다. 그 해 4월 발표한 농업공약 1호로 “대통령이 농어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하고, 농어업특별기구 설치, 농지법 개정을 통해 경자유전의 원칙 재확립 등을 공약했다. 4월13일 한농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만들어 온 잘못된 농정을 철저하게 뜯어고치겠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농어민특별위원회를 설치하겠다.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농업비서관을 임명하겠다. 농업 전반에 걸쳐 마음을 열어 농민과 소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선 당시 기대와는 달리 ‘농업 홀대’, ‘농업 패싱’ 논란 속에 문재인 정부 임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 “농민들과 농정을 의논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수많은 국정 현안에 묻혀 사라졌다.

농특위 사무국 관계자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에 따른 선거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인수위 과정 없이 국정과제를 발표했고 이러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출범 초 농업분야 비전과 전략, 과제를 제대로 세우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권 초기부터 국정 과제의 하나로 농정 개혁을 포함, 강도 높게 추진하지 않으면 매우 어려운 길을 갈 수 밖에 없음을 실감했다”면서 “정부 출범 초기 국정의 비전과 노선을 정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논의를 놓치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청와대 조직 개편, 농특위 권한 강화 여론

여기에 대통령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내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탄탄한 추진체계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청와대 조직개편을 단행, 농업・먹거리 수석을 두자는 제안은 그 일환이다. 현재 청와대 농해수비서관은 청와대 정책실 경제수석 아래 1급 비서관에 불과, 정부와 정치권 내에서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책을 조율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는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대통령의 정책의지가 관료들을 움직이는 핵심인 만큼 대통령비서실에 농업・먹거리수석비서관을 두고,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도 농업・먹거리정책관을 신설, 대통령 직할 체계와 국무총괄 총리실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청와대에서 농업·먹거리 관련 보좌기능을 강화하면서 당·정·청 관련 정책 조정을 활성화하고, 국무총리실을 통해 농업·먹거리·농촌 관련 범부처 정책을 효율적으로 연계 조정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농특위 관계자도 “현재로선 정부 정책 수립과 추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 청와대인데, 현재와 같이 경제수석 산하의 농해수비서관의 한계는 분명하다”면서 “농업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안 중 하나가 대통령 비서실에 농업・먹거리 수석비서관 신설”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영삼 정부에서 설치됐던 ‘농림해양수석실(최양부 농림해양수석비서관)’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UR(우루과이라운드)이 타결되면서 농정이 최대 이슈로 부각되자 농림해양수석실과 농어촌발전위원회가 가동됐다. 수석실은 ‘농어업 경쟁력 강화’와 ‘농어촌 개발’, ‘농어촌 복지’ 분야 세 명의 비서관을 두고, 농어업 정책을 관장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했었다.

농특위의 위상과 권한을 강화, 실질적인 정부 부처간 거버넌스와 민관 거버넌스 조직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농특위에서 활동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현재 농특위는 의결 전인 의제나 의결된 의제조차도 농식품부가 반대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라며 “관료 중심의 농정을 농민, 민간과의 협치를 통한 농정으로 바꾸려면 농특위 권한 강화는 필수”라고 지적했다.

농업경제학자인 K박사는 “같은 대통령 직속기구지만, 2050탄소중립위원회의 경우 엄청 힘이 세서 위원회가 시나리오를 내면 거기에 사회 전체가 반응을 하고, 울며겨자먹기라도 어쨌든 기재부를 비롯해 다른 모든 정부 부처가 참여해 전략을 쫙 내놓지 않느냐”면서 “농특위의 위상과 권한에 대한 법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대를 위한 타협과 협상이 필요한 때

농정 개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료들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야심차게 정치적 결정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을 정책으로 구현하고 집행하는 일은 결국 관료들의 역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농특위 사무국 관계자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세력 중 행정 관료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결국 개혁에 저항하는 기존 관료사회의 생각을 바꾸려면 실력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정전문가인 K박사는 “원래 관료란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며 온갖 핑계로 개혁법안을 지연시키는데 능숙하다”면서 “디테일로 경쟁하면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늘공(늘 공무원)에게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구체적 실행방안이 담긴 시행령이나 시행세칙 등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으면 개혁의 취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그는 “관료들을 움직여 제도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관료 이상으로 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갖던가, 그게 아니면 차근차근 농업계내 목소리를 모아 합의를 이끌어내고, 그 힘을 등에 업어 ‘정치력’으로 관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G 박사도 “시민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 논리, 그리고 운동 차원에서 주장할 수 있는 내용과 정책적으로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는 내용은 매우 차이가 크다”면서 “그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걸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들을 규합해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농민단체 관계자는 “예전 연대기구 경험상 성격과 배경이 다른 농민단체들 간에 힘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관료들의 갈라치기로 서로 양분될 것이 아니라 단체가 다 배경이 달라도 틀에서는 힘을 보태 목소리 내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농민단체도 타협과 협상의 기술을 익힐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나왔다. K 박사는 “농업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바뀌어 품목별 이해관계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제 아주 중대한 사안이 아닌 다음에야 농업계가 한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은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농업계가 각자의 이해관계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상태에서 적절하게 타협하고 협상하는 기술을 배우는 게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A박사는 “다시 한 번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농지문제 해결, 농업인·농민 등 정책대상자 기준 해결, 농산물 가격문제 해결, 농업노동력 문제 해결 등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면서 “다른 것은 이러한 기본이 밑바탕이 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적 공감대·지지 얻어야 개혁 성공

농업·농촌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농업·농촌의 문제가 국민 모두의 과제이자 국가적 과제임을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농특위 사무국 관계자는 “농업문제 해결이 주요 국정과제가 되려면 필수 조건이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농정이 농업과 농촌을 지키고 살리는 방향으로 수립, 추진되도록 하고 한편으로는 농정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데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계가 서로 힘을 보태가면서, 각각의 이해관계를 넘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무엇으로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지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그것이 농업계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농민시민단체가 내부 토론을 활성화하고, 논리성과 설득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지역순환경제센터의 서정민 박사는 “농업분야는 관료화된 행정조직과 유사하게 연구자와 전문가, 관련시민사회까지 모두 고령화되어 있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패배주의 또는 피해의식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이러한 관점은 외연 확대를 방해하고 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데 한계로 작용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민적 합의, 사회적 공감대를 주창하지만 점점 섬처럼 고립되고 있는 것이 농업·농촌의 현실”이라며 “직불제 선진 사례로 거론하는 스위스가 직불금 예산을 확대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등 국민적 지지와 공감대를 중시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연구원 강마야 박사는 “지금은 전문가나 지식인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고 대중의 시대로,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한다’라는 생각의 전환, 해결주체의 전환을 주문한다”면서 “농정 대전환을 바란다면,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더욱 뜨겁게 학습과 공부에 매진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일방적으로 정부에만 투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농정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학습과정을 거친 후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정책대안들을, 보다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상길·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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