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문재인 농정 5년의 교훈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김선아 기자] 

문재인 정부 농정 개혁이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농특위 늑장 출범이 꼽힌다. 사진은 2019년 6월18일 개최된 농특위 사무국 현판식.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농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농정개혁을 추진할 사람과 시스템이었다.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농업에 무관심한 정치 엘리트들과 관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의 발탁과 시스템 구축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정의 수장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청와대 농어업비서관(이후 농해수비서관) 인사가 중요했다. 동시에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받아 농정개혁 어젠다를 제시할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의 조속한 설치와 인적 구성도 관심사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이 두 가지 모두 삐걱거렸다. 장관과 농해수비서관 등이 선거 등을 이유로 잇따라 줄사퇴하면서 집권 상반기 잦은 농정공백이 이어지자 정통 농정관료 출신 장관을 중용했고, 이로 인해 변화와 개혁보다는 ‘안정’에 무게감이 실리면서 뿌리깊은 관료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다. 정권의 무관심으로 미적대다 2019년 4월에야 출범한 농특위 역시 ‘농정 틀 전환’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수행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권 무관심, 관료에 막힌 개혁

대통령 직속 간판 달았지만
위원장 대통령 독대 한 번 못해
의견 모아도 협의거치며 ‘칼질’
무한논의-무한반복 ‘피로감만’
농업계 힘 합치지 못한 문제도

“실행력과 강제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위치에 자리잡은 ‘자문기구’였다는 점이 농특위의 근본적인 한계였다.”

농특위 분과위원으로 활동했던 강마야 충남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지난 2~3년간 참여한 모든 이들이 농정의 해묵은 숙제들을 여러 경로로 다양하게 고민해왔지만, 그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농정 틀 전환의 비전과 전략방향을 제시한 것은 성과지만, 문제는 오직 ‘자문’에 그쳐 대통령의 정책의지나 주무부처의 실행 의지가 없으면 아무런 담보가 안되는 태생적 한계가 지속됐다.”

농특위가 이렇게 힘을 받지 못한 데는 정권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없었다는 점도 큰 원인이다. 사실 농특위는 출범 전에도 청와대의 관심 밖이란 얘기가 나왔고, 법이 통과돼 출범하면서도 청와대 위촉장을 직접 받지 못했다. 심지어 두 명의 농특위 위원장 모두 취임 후 단 한 번도 대통령과 (독대를 통해) 직접 농정에 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농특위 활동은 일찌감치 관료들의 벽에 봉착하게 된다. 관료들이 수용하지 않는 의제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대통령 직속이라고 하지만 자문기구일 뿐, 정부를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농특위가 낸 의견을 행정부나 청와대가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농정전문가인 A박사는 “분과위원회에 참여한 민간인들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결과물을 내놓지만, 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빨간펜이나 칼질을 당하고, 이행계획 수립과정에서 제로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목도하기도 했다”면서 “무한 반복-무한 논의만 하는 구조 속에 피로감과 실망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농정전문가인 B 박사는 “디테일에 능숙한 관료들을 압도하려면, 관료들 못지않게 행정도 잘 알고 현장도 잘 아는 사람들이 논리를 갖춰서 콘텐츠를 만들어 나갔어야 하는데 현재의 인력구조상 그게 쉽지 않았다”면서 “여기에 농업계가 힘을 합치지 못한 채 서로 대립하거나 상충하는 상황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정치력이 부족했던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2020년 10월16일 거창군 농업인회관에서 개최된 농지제도개선 소분과 현장간담회. 이듬해 LH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농특위는 농지법 개선 논의를 진행해왔다. 
2020년 10월16일 거창군 농업인회관에서 개최된 농지제도개선 소분과 현장간담회. 이듬해 LH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농특위는 농지법 개선 논의를 진행해왔다. 

 

외부자의 차가운 시선
정부에 들어가서 뭐했나?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은 어떤 역할을 했나?

문재인 정부 들어 정치인, 전문가, 컨설팅업체, 농민시민사회 출신 등 적지 않은 인사들이 농식품부 장차관을 비롯, 청와대 농해수비서관과 행정관, 장관보좌관 등 정무직이나 고위공무원으로 근무했거나 하고 있다. 또한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한국마사회, 농정원 등 관련기관에도 비슷한 경로로 수장이나 임직원으로 포진했다. 농특위에도 위원이나 전문임기제공무원으로 들어갔다. 영향력이 있는 청와대와 농식품부에 진입한 이들은 농정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여서 주목의 대상이었다.

이들 중 다수는 농민단체를 비롯한 농업관련 NGO, 민간연구기관, 컨설팅업체 출신으로, 매년 합동으로 대안농정대토론회를 열어 기존의 경쟁력주의(생산주의), 기업농주의, 개발주의 농정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으로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농업의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주장을 펴 온 이들이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농정 공백과 개혁 동력의 실종 속에서 관료주의가 득세하면서, 기대하던 농정의 변화는 체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정학교 특정학과 출신들끼리 요직을 독식하며 회전문 인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불거졌다. 일부는 민간에 있을 때 자신이 취하던 입장과 달리 적극적으로 관료사회와 발을 맞추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일부는 “책임 있는 위치”여서 더 이상의 문제 제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물론 이들 모두 나름 고민하고 노력 했을 터. 하지만 이에 대한 A박사의 분석은 뼈를 때린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진들과 청와대 수석, 비서관 및 행정관, 여당 등 그들만의 견고한 관료사회가 농정 개혁의 장애물이었다. 관료사회로 편입된 이들은 이미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버리고 심리적 유착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C 박사는 “특정학교 특정과 출신들끼리 돌려막기식으로 요직을 나누고 스피커를 독식하는 모양새여서 불편했다”면서 “그들이 관료에 포획된 것은 관료 탓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농특위가 늦게 발족됐다거나 사실상 청와대도 힘을 실어주지 않은 구조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결국 정치적 역량, 실무적 역량이 없었기 때문에 관료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D 교수는 “농업계의 통일된 목소리를 들어서 잘 준비된 분들이 들어가 관료사회를 컨트롤했어야 하는데, 들어가서 정권의 방패막이가 되거나 관료들 편에 서서 농민단체 설득에 몰두하다보니 농민단체의 순수성도 훼손되고 당정청을 견제하지 못하게 됐다”고 비판한다.

농민단체의 핵심 인사는 “조직적 논의와 결의 없이 개인플레이로 정부에 들어가는 건 독이 된다”면서 “현장의 지지와 조직적인 힘을 바탕으로 농정개혁을 추진해야지, 자기들끼리 해선 관료들을 절대 넘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직적인 관점이 없으면 그저 입신양명을 위한 개인 일자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민간진영은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민간의 역할이 있다”면서 “이번 대선에서 각 캠프에 들어간 사람들도 그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농특위는 지난 10~11월, ‘지자체 농어촌정책의 민관협치형 추진체계’ 점검을 위해 4차례의 현장토론회를 개최했다. 
농특위는 지난 10~11월, ‘지자체 농어촌정책의 민관협치형 추진체계’ 점검을 위해 4차례의 현장토론회를 개최했다. 

 

내부자의 변명
비판만 한다고 되나? 실력이 있어야지

그렇다면 실제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농특위의 한 임기제공무원은 “정부 주요 국정과제에서 농업이 홀대받고 패싱 당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 속에서 ‘어쩌다 공무원’이 겪는 주변 여건은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농민단체는 ‘거기 갔으니 이 정도는 해야지’ 또는 ‘농특위가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과한 기대 또는 비하, 관료사회는 민간 출신에 대해 ‘농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생각이 베이스로 깔려 있으니 협력, 협조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관료주의에 포획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것도 우리가 현재 처한 조건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인정하고 “기존 관료사회의 생각은 실력으로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세력 중 행정 관료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대통령선거와 같은 계기점에 바꾸자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5년 중 중간을 넘은 시점에 바꾸자고 하니 그만큼 반대도 많았다”고 전했다. “개혁은 시기, 목표에 대한 통일성, 주체의 응집력 이런 것들의 준비 정도에 따라 편차가 많아진다.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이 많을 듯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 출범 초기에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2년을 흘려보낸데 대해 큰 아쉬움을 갖는 인식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농정공백과 농특위 늑장출범이 문제였다”면서 “공익직불제도 초기 1~2년 사이 했어야 하는데 3년차인 2019년에야 법을 통과시켰고, 2조원을 넘길 수는 없다는 재정당국의 의견을 넘어 2조4000억까지 늘리면서, 남은 2년 동안 예산을 더 늘리는 것은 암묵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다음 정부 몫으로 남기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도 관료사회를 넘으려면 실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의원들이 발의한 입법이 국회 법안소위 심사과정에서 공무원의 논리를 넘지 못하고 중단되곤 하는 사례를 들어 “결국 실력 없으니 책임 못 지고 타협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국정은 장난이 아니”라면서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는 하지만, 누가 가든, 관료 이상으로 정책을 알아야 하며, 실력 갖추고 장악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참여한 인사들은 농민단체를 비롯한 농업 진영도 진영논리만 앞세우기보다는 실현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 전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현석 전 농특위 사무국장은 “일부 농민단체의 진영논리에 입각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농업계 역량을 통합하는데 장애가 됐다”면서 “진영논리가 내세우는 주장이 간혹 시민사회의 일반적인 정서와 동떨어진 경우가 있어, 농업계의 소외를 한층 심화시키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농업진영이 외골수, 외톨이 기질에서 벗어나 타 분야와 더 많이 소통하고 교류해서 우리의 주장이 보다 많은 사회구성원들로부터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고위직을 지낸 전문가는 “책임 없는 주장만 목소리가 큰 경우가 있다”면서 “정책은 명분, 실현가능성, 제도화 가능성을 주도면밀하게 따져야 하는데, 전략적인 고려 없이 목표를 세워 놓고, 여기에 안 맞는다고 수많은 사람을 공격하는 방식으로는 공감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이상길·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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