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문재인 농정 5년의 교훈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김선아 기자] 

2019년 12월12일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열린 ‘농정 틀 전환을 위한 2019 타운홀미팅 보고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과감한 농정 틀 전환’ 의지를 피력했다.
2019년 12월12일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열린 ‘농정 틀 전환을 위한 2019 타운홀미팅 보고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과감한 농정 틀 전환’ 의지를 피력했다.

‘농식품부터 농업기술까지 K-농업을 통한 국격 제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2월12일‘2022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문재인 정부 농정 4년 반을 평가하면서 1순위로 내세운 정책 성과다. 농수산식품 수출 100억불 첫 돌파, 우수 농업기술 및 개도국 쌀 지원 등으로 국격이 향상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술·데이터에 기반한 농업 확산. 구체적 실적으로 스마트팜 혁신밸리와 K-스마트팜 수출, 농업관측 정교화 등이 꼽혔다.

농식품부의 이러한 평가는 당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농정 철학과 기조를 근본부터 바꾸겠다’며 제시한 공약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 등으로 심화된 현장 농민들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뜬금없기까지 하다. 그래서 물었다. 현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인사들이 생각하는 문재인 정부 농정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일까. 전문가그룹이나 농민단체 활동가, 현장 농민들의 평가는 어떻게 다를까.
 

정부쪽 참여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 '쌀값 안정' 의지
청와대·기재부 반대기류에도
공익직불금법 국회 통과 힘 실어

사람과 환경 중심 농정틀 전환
새 농정비전 세운 것은 '성과'
개혁과제 후속조치 못해 아쉬움

◆쌀값 안정과 공익직불, 그리고 농특위=‘쌀값 안정과 공익직불제 도입.’ 많은 이들이 이견없이 꼽은 문재인 정부의 농정 성과다. 뒤늦게 출범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에 대해서는 기대했던 만큼의 애증이 교차했다.

민간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에 들어가 일한 한 인사는 “쌀값 안정화는 우리 정부 최대 성과 중 하나”라면서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였고, 정부가 흔들릴 때마다 대통령이 꼭 언급함으로써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는 “쌀값은 내리라 하고 공익직불은 안 된다고 하는 게 당시 청와대 내부와 기재부 등의 기류였다”면서 “쌀값 안정과 공익직불제를 관철한 것은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익직불제 도입은 전쟁이었다. 대통령이 예산부수법안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으면 법을 제정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 역할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농업·농촌의 공익기능을 인정하고 경제정책으로만 바라보던 농업정책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공익직불제 도입은 매우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농특위 사무국 관계자는 “정부 초기 장관 자문기구였던 농정개혁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농특위가 출범했고, ‘사람과 환경 중심의 농정 틀 전환’이라는 비전과 과제를 제시하게 된 것”을 성과로 꼽았다. 그러나 비전과 과제를 뒷받침할 재정구조, 추진체계, 핵심 정책·법·제도가 따르지 못했다는 점은 한계로 평했다. 그는 “집권 3년차에 출범한 농특위가 거기까지 역할을 하기에는 난관이 많았다”고 말했다.

초대 농특위 사무국장을 맡았던 오현석 민간위원은 “새로운 국가비전에 걸맞은 농정 비전을 세우고,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정책그룹들이 농정대전환의 방향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일, 그래서 농특위 출범 이후 12월 타운홀미팅 보고대회에서 대통령이 직접 농정대전환을 선언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공익직불제 도입과 농특위 출범을 계기로 개혁과제를 단계적으로 실천해나가고자 했고, 초기 농특위를 중심으로 농업계 역량이 모아졌을때만 해도 관료사회와 협력관계가 구축되었으나 예기치 못했던 코로나 국가재난상황과 농특위 파행 이후에는 그러한 기대가 어려워졌다”고 회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농정틀 전환을 위한 2019 타운홀미팅 보고대회' 참석자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농정틀 전환을 위한 2019 타운홀미팅 보고대회' 참석자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현장의 평가는
공익직불제 물꼬는 텄지만
선택형 3.4% 고작 '이름값 못해'
예산 5년간 동결도 중대 실책

농정비전 실천을 위한 전략 부재
관료 주도 개발주의 농정 여전 
이전보다 3농여건 더 악화 지적

◆현장은 온도차“별반 달라진게 없다”=그렇다면 현장의 평가는 어떤가? 온도차가 있긴 하지만 현장과 전문가들도 쌀값, 공익형직불제 도입을 성과로 동의했다. 그러나 이 역시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조병옥 경남 함안군 신안면 숲안마을 이장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크지만, 농민의 피부에 와 닿는 성과를 굳이 꼽자면 쌀 가격이 회복된 것, 공익직불제를 도입해 농업을 공익적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국가 역할과 직접지불을 확대한 부분은 평가할 만하다”면서도 “향후 선택직불을 늘리는 등 예산을 확대해야 하는데, 예산을 2조4000억원으로 5년간 동결, 스스로 잠금장치를 마련한 것은 중대한 실책”이라고 짚었다.

허헌중 지역재단 상임이사 역시 “공익직불제가 내용을 떠나 틀을 잡아 본격 시행된 것, 쌀값과 한우 등 주요 농축산물 가격안정은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공익직불제 중 가장 중요한, 친환경생태농업 등 다원적 기능 발휘, 공익적 가치 창출을 위한 선택형직불이 2조4000억원 가운데 3.4% 밖에 안 되는 것은 ‘공익형’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라며 “그만큼 농정 대전환의 비전과 전략이 부재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종서 친환경농업협회 사무총장은 “공익직불제의 물꼬를 튼 것은 성과지만, 그 예산을 5년간 동결함으로써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방향이 무색해졌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현장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가축방역, 대규모 스마트팜 혁신밸리 조성 등 관료들이 주도한 농정에 큰 불신을 내비쳤다. 그는 “현장과 괴리된 관료 중심의 농정에 대한 과감한 개혁이 선행되지 않고는 농정 전환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학자들의 평가도 박했다. 농업경제학계의 한 원로 교수는 “공익직불제는 이름만 거창하지, 결국 변동직불금을 공익형으로 바꿨을 뿐 예산은 늘지 않았다”며 “조건불리지역, 초지에 대한 직불은 없앴고, 쌀은 자동시장격리 한다더니 안하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도 3농의 여건은 더 악화됐다”면서 “제일 문제는 농가소득이 올라갔다고 해도, 실질 농업소득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한국농업이 살고 미래세대의 먹거리를 보장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호 단국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농정철학의 부재 속에서 이전 정부가 추진해온 시설농정, 개발주의 농정이 여전히 주류를 이뤘다”면서 “농민의 삶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정책보다는 자본에 이익을 주는 스마트팜 밸리, 무분별한 태양광 설치 등이 대표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농특위 늑장 출범 등 농업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 민관협치의 거버넌스보다는 관료주의, 컨설팅 농정이 득세했다”고 혹평했다.

 


#문재인 정부 공약, 얼마나 이행됐나?

스마트팜 혁신밸리사업 현지실사단의 밀양 방문에 앞서 지역 농민단체들이 공모사업 반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 모습.
스마트팜 혁신밸리사업 현지실사단의 밀양 방문에 앞서 지역 농민단체들이 공모사업 반대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 모습.

쌀목표가격-변동직불제 폐지해놓고
시장격리 약속 미적, 쌀값 다시 흔들

재해보험·안전보험 관련 공약 공염불
태양광 설치 이유 농지 전용도 가속
공약 없던 스마트팜밸리는 밀어붙여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 가운데 일부는 이행되고 있지만, 많은 공약이 지켜지지 않거나 왜곡됐다. 오히려 이전 정부들로부터 이어져 온 시설과 투입재 중심의 생산주의, 기업주의, 개발주의 농정이 표지만 바꿔 추진됐다는 평가가 많다.

우선 “쌀값 문제 반드시 해결하겠다” “쌀 생산비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됐나. 5년 전 쌀 가격은 21년 전인 1996년 수준에도 미달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80㎏ 당 2017년 15만원대에서 2020년 21만원대로 회복됐다. 문 대통령은 쌀값 문제 해결을 뒷받침할 공약으로 △쌀 목표가격 물가인상률 반영 △생산조정제 △소비촉진, 대북, 해외지원 등을 내놨다. 이후 공익형 직불제 개편과 연동해 쌀 목표가격과 변동직불제는 폐지됐고, 쌀 시장 안정방안으로 자동격리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지난해 쌀 생산량이 수요보다 크게 늘어 법에 정한 시장격리 요건을 충족했음에도 농식품부는 의무는 아니라면서 버텼다. 농민들의 거센 반발 끝에 연말에야 27만톤의 시장격리를 결정, 쌀값은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공익직불제의 경우 “공익형직불제를 확대하겠다. 정부 예산을 계속 높여가겠다”고 공약했지만, 공익직불제만 도입했지, 지속적인 예산 확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초 공익직불제를 공론화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농정개혁 TF팀은 임기 내인 2022년까지 5조2000억원의 예산을 제시해 기대를 높였지만, 정부 예산은 그 절반 수준인 2조4000억원에 묶인 상태다.

농어업재해대책법과 농업재해보험법의 지원기준을 현실화하고 민간보험인 농어업인안전보험을 농어민산업재해보험법으로 개정, 공적사회보험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GMO 표시제와 식품표시제도를 강화하고, 학교 급식에서 GMO를 퇴출한다고 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농지법 개정을 통해 경자유전의 원칙을 재확인하겠다고 한 공약도 용두사미다. 태양광 설치 등을 이유로 농지규제는 계속 완화돼 왔고,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이 터지자 여론에 떠밀려 농지법을 개정했지만 반쪽짜리였다. 농지 투기에 악용되고 있는 주말·체험용 농지 소유가 농업진흥지역 밖에서는 여전히 가능하고, 비농업인 농지 소유의 핵심 경로인 상속·이농농지 소유 상한 규정 등이 담기지 않았다. 임대차 차임 상한을 두는 내용도 빠졌고, 농지문제 파악의 시작인 농지실태전수조사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

스마트농업과 관련된 문 대통령의 공약은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스마트농업을 지원하겠다”는 수준이었다. 농식품부가 성과로 내세우고 있는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대통령의 공약에는 없던 내용으로, 농식품부 장관이 공석이던 2018년 4월 농민들의 반발과 우려에도 청년 창업농 육성 등을 명분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이상길·김선아 기자 leesg@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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