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농촌은 어느덧 자연스러운 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되어버렸다. 직접 모종을 기르는 것, 씨앗을 받는 것, 집에서 퇴비를 만들어 밭에 넣어주는 것, 농가 부산물을 이용해 사료를 만들어 가축을 먹이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었다

김현희 청년농부·전북 순창

두릅 재배가 널리 퍼져있는 순창은 벚꽃이 필 때 즈음 만개하는 꽃이 있다. 바로 하얀 두릅 꽃이다. 한여름에 노랗게 피는 진짜 두릅 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하나하나 피워 올린 것인데, 하얗고 길쭉한 슬러쉬 컵 등을 원순이 올라오기 전 두릅나무에 씌운다. 이렇게 하면 햇빛을 막아 두릅의 색이나 식감이 좋아진다고도 하고, 수확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서리 등으로 상품성 있는 원순이 냉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처음에는 고도가 높고 추운 일부 지역에서만 했었는데, 요즘에는 날씨가 워낙 예측 불가인데다 늦게까지 눈이나 서리가 내리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너도나도 종이컵을 씌운다. 멀리서 보면 순창 곳곳에 희고 풍성한 꽃이 밭을 가득 메운 것 같아 보인다. 사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두릅은 건강하고 향긋한 새순을 나무에서 쑥쑥 올린다, 설령 두릅 원순이 추위에 냉해를 입더라도 잎사귀 끝이 살짝 말리는 정도라 먹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사정은 다르다. 좋은 경락가를 받기 위해서는 예쁘고 흠 없는 두릅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엄청난 양의 종이컵이 짧은 기간 씌워지고 버려진다. 두릅이 고소득 작물로 각광받고 대량 생산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공정이란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과수농가들이 과일에 종이봉투를 씌우는 것처럼 두릅도 종이컵을 씌우는 공정이 표준화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종이컵을 씌우지 않고 자연적으로 올라온 두릅을 본 소비자들이 ‘이 두릅은 이상하다’라고 생각하게 될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지난 2월 농산물 온라인 쇼핑몰인 ‘농사펀드’를 운영하는 박종범 대표가 SNS에 귤에 대한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유기농 귤을 판매했는데 한 소비자가 자신에게만 상품가치가 없는 귤을 보내주었다며 반품신청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구입해 먹었던 유기농 귤과 비교했을 때 사진 속 귤은 상태가 매우 깨끗해 보였다. 유기농 귤에 상처와 얼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왁스코팅 되어 매끈한 표면의 귤만 받아보았을 소비자는 이 귤이 기대와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글을 읽으며 농촌과 도시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작물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그 사이에 농부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농부들은 작물로만 소비자를 만난다. 그것도 시장에 진열되어 선택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내 옆의 농산물보다 먼저 선택받기 위해,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농촌에서는 부자연스러운 공정이 하나 둘 늘어나고, 소비자에게 이것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농촌은 어느덧 자연스러운 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되어버렸다. 직접 모종을 기르는 것, 씨앗을 받는 것, 집에서 퇴비를 만들어 밭에 넣어주는 것, 농가 부산물을 이용해 사료를 만들어 가축을 먹이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었다. 이제는 형광색으로 코팅된 씨앗을 구입해 쓰고 육묘장에서 기른 모종을 구입하고, 전문가들이 연구해서 만들었다는 사료를 시기별로 세분화해 먹이고, 먼 나라에서 수입해왔다는 원료가 들어간 퇴비와 비료를 밭에 뿌려준다. 과일의 발색을 위해 약을 치고 가스를 뿌리고 매끈한 광택을 내는 왁스를 발라낸다. 이 부자연스러운 공정을 위해 많은 비용과 자원과 인력이 들어가지만 농부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장에 낼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선생님과 돼지를 기르고 있는데, 현대 양돈에서 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정을 하지 않는다. 돼지들끼리 습성대로 알아서 하게 두고 직접 만든 발효사료를 먹인다. 이런 자연스러운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이를 꾸준히 소비해주는 한살림 등의 소비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자연스러운 농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농촌을 이해하고 농부들과 연대하려는 도시 소비자들이 존재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를 위해 내가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길 바라본다.

김현희 | 2016년 전북 순창으로 귀농해 벼농사와 돼지를 키우고 있다. (사)10년후순창 이사로 활동하며, 지역 활성화와 귀농인 정착을 돕는 등 더 나은 마을을 만드는 일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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