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산지 영농조합법인에서 이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상자(왼쪽)와 파렛트(오른쪽) 모습. 
산지 영농조합법인에서 이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상자(왼쪽)와 파렛트(오른쪽) 모습. 

물류기기 공동이용지원사업의 올해 예산이 전년 대비 60%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국고 지원이 축소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물류기기를 사용하는 출하자 부담이 늘어나고 물류 효율화 정책이 후퇴하는 등의 문제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상당하다. 이런 가운데 향후 사업 지속 여부가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신규 사업 전환 등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 작업에 착수할 움직임이다.
 

올해 예산 122억원으로 대폭 축소전년 대비 59% 불과

해당 사업은 농협·산지 유통인·품목 생산자단체·농업법인 등이 농산물 출하 시 공급업체의 물류기기(수송용 파렛트(팰릿), 플라스틱 상자, 다단식 목재 상자, 옥타곤 상자 등)를 공동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 일부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임차료의 60%를 이용자가 부담하고, 나머지 40%(공영도매시장 출하 시 60%)는 국가가 보조하는 형태다. 산지에서 파렛트를 통해 공영도매시장에 출하할 경우 임차료 2770원(부가세 포함) 중 60%인 1620원을 지원받을 수 있어 출하자 입장에서는 유통비용 절감 효과가 크고, 정책적으로도 물류효율화·공동출하 등을 유도하는 데 기여해 왔다.

하지만 올해 사업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관련 사업 국고보조 예산이 122억원으로, 2023년도 208억원 대비 59%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쪼그라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사업 예산을 전년의 절반 수준인 104억원으로 삭감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데 따른 것으로, 2023년도 예산 수준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2023년 11월 24일자 관련기사 참고>이 많았지만 국회 심의 단계에서 18억원 증액에 그쳤다. 자부담을 포함한 총 사업비는 올해 302억7000만원으로, 전년에는 517억8000만원 규모였다. 
 

농식품부, 플라스틱 상자 국고보조 축소 등 검토파렛트 지원은 유지

이달 5일부터 18일까지 2024년도 사업 신청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세부운영 지침을 수립 중인 농식품부는 사업을 축소 운영하는 방향으로 내용 일부를 변경할 계획이다. 핵심은 ‘종합유통센터·대형유통업체·김치가공공장’ 출하 시 쓰이는 플라스틱 상자에 한해 국고보조 비율을 40%에서 20%로 낮추는 것이다.

2022년도 물류기기 이용실적 현황에 따르면 플라스틱 상자가 6965만매로, 물류기기 중 이용실적이 압도적으로 많다. 출하처별로 유통센터 5569만매, 물류센터 899만매, 가공공장 495만매, 도매시장 7299매 순이다. 플라스틱 상자 다음으로 이용실적이 많은 물류기기는 파렛트(340만매)다. 이어 다단식 목재 상자가 72만매, 상자형 파렛트가 2만3000매다. 이용실적에서 플라스틱 상자와 큰 차이를 보이는 파렛트나 다단식 목재 상자, 상자형 파렛트, 옥타곤 등의 물류기기 지원은 기존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농식품부 담당자는 “특별한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아 내부적으로 사업내용을 조정하고 있다”면서 “전체 이용실적을 보면 플라스틱 상자가 가장 많다. 국고보조로 지원받아 500원 내외 수준에서 이용하고 있는데, 보조가 안 되는 물량들은 850원 정도 된다. 국고 지원 비율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물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체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본 결과 지원 물량을 유지하기 위해 플라스틱 상자의 국고보조를 40%에서 20%로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하자 체감 자부담 80%↑”물류 효율화 후퇴·안일 대응 지적 목소리

해당 사업의 국고보조 예산은 2019년 145억원·2020년 152억원·2021년 164억원·2022년 195억원·2023년 208억원 등 최근 5년간 확대 추세가 이어졌는데, 올해 예기치 못한 대규모 예산 축소로 출하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의 대응 역량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출하자 부담 증가, 물류 효율화 정책 후퇴 등의 우려가 크다.

출하자단체의 한 관계자는 “예산 감축 기조에서 농식품부가 안일하게 대응했던 측면이 크다”며 “물류기기는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 안 쓸 수가 없는 필수 부자재라서 관련 예산이 유지돼도 모자를 판에 삭감 편성돼 비용 부담이 사용자인 생산자에게 돌아가게 됐고, 유통비용 증가에 따라 소비자의 가격 부담도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플라스틱 상자는 대형유통업체나 중소형 마트, 가공공장 출하에 주로 쓰인다. 국고보조를 40%에서 20%으로 낮추면 자부담은 60%에서 80%로 올라가는 것인데, 부가세 부담까지 감안하면 출하자들이 체감하는 자부담은 80% 이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용실적이 줄거나 플라스틱 상자 대신 종이박스나 일회용 포장으로 회귀하는 등 지난 20여년간 정책적 지원을 통해 구축한 물류 효율화가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사업구조 개편 등 새판 구축 움직임

2000년부터 시행된 해당 사업은 존폐 논란 속에서도 최근 몇 년간 예산 규모 면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줬는데, 다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예산 편성을 두고 기재부의 부정적인 기류가 상당해 향후 사업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신규 사업 전환 등 사업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농식품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물류기기공동이용지원 사업구조 개편 연구용역 공고를 냈다. 공고에 따르면 해당 사업은 정부 보조금이 대행 기관을 통해 민간사업자(풀사)로 지불되고 있어 생산자 등 산지유통 주체의 수요를 파악해 사업대상자가 지원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사업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과 분석과 함께 사업 현황 및 문제점 등을 파악하고, 신규사업 방향을 제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물류비 지원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몇몇 민간사업자를 중심으로 이뤄진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는 등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지자체를 포함한 정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 기재부를 설득할 생각”이라면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기재부와 협의를 통해 예산을 확보한 뒤, 개편 내용에 대한 공청회, 지자체 설명회 등을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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