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다움을 회복하다
<4>독일 비트부르크

[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이현우 기자] 

독일 서부지역에 위치한 비트부르크시는 약 10만명이 살고 있고 농림업이 주축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곳은 지난 50년 동안 농민 90%가 감소하면서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고 마을을 재생시키기 위해 주민들과 논의하며 하나씩 개선해 나갔다. 그 결과, 지난 12년 동안 약 10% 인구가 늘어나는 등 활기를 띄는 마을로 변모했다. (사진=취재기자)
독일 서부지역에 위치한 비트부르크시는 약 10만명이 살고 있고 농림업이 주축인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이곳은 지난 50년 동안 농민 90%가 감소하면서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고 마을을 재생시키기 위해 주민들과 논의하며 하나씩 개선해 나갔다. 그 결과, 지난 12년 동안 약 10% 인구가 늘어나는 등 활기를 띄는 마을로 변모했다. (사진=취재기자)

주민과 정보 교류해 사업계획 수립
50여년 간 농민 90%나 감소했지만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해결하며 탈바꿈

문화재로 지정된 주택 전통 살리면서
시설 이용 편리하도록 기능 개선 초점
잘 정비된 도로, 쾌적한 환경에 매료

유치원부터 초등학교·양로원 등
마을 내 갖추고 ‘공동 돌봄’ 실천


# 농촌마을의 대반전 ‘비트부르크’

독일 서부지역에 인구 10만3642명(2022년 12월 기준) 규모의 비트부르크시가 자리잡고 있다. 룩셈부르크와 맞닿아 있는 라인란트팔츠주에 속한 비트부르크는 농림업이 주축인 전형적인 농촌지역 소도시. 그렇다보니 비트부르크의 234개 농촌마을 중에서 180여개 마을은 인구 500명 이하이고, 특히 전체 마을의 절반은 주민 200명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비트부르크는 그 어느 지역보다 정주환경이 우수하고, 영유아 보육에서부터 양로원 등 노인 돌봄 등 사회적 공동체가 활발하다.

지난 9월 14일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에서 비트부르크까지는 서쪽으로 210km로 자동차를 타고 아우토반을 2시간30분 경쾌하게 달려 도착했다. 이 지역의 71개 마을(게마인데) 연합 조직체인 ‘비트부르크 연합회(Verbandsgemeinde Bitburger Land)’ 사무실에서 만난 볼프강 클라스 농촌공간계획 총괄 담당자는 “마을 재생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과 함께 정보를 교류하며 마을의 각종 현안과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지 논의하고 사업계획을 만든다”며 “각 지역마다 프로젝트(프로그램)가 있다. 예를 들어 농가가 농장을 개선하고 싶다면 프로그램 내에서 사업을 검토하고 심사와 논의를 거쳐 채택되면 주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볼프강 클라스 농촌공간계획 총괄 담당자. (사진=취재기자)
볼프강 클라스 농촌공간계획 총괄 담당자. (사진=취재기자)

그는 또 “농촌마을 공간계획은 EU, 독일 연방정부, 주정부 등에서 시행하는 프로그램과 지원 예산이 융합돼 있다. 마을을 재건하는 사업은 거창한 것만 있는게 아니다. 축구, 테니스 등과 같은 마을주민이 함께하는 활동으로도 가능하다”며 “사업을 시행 한 후 정주 환경이 좋아지면서 주민이 증가하며 활기가 넘친다. 효과가 있는 만큼 관련 사업도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공간계획 통해 미래의 마을 제시해야

볼프강 클라스 씨와 비트부르크 현황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그와 함께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농촌마을 베팅겐으로 이동했다. 베팅겐은 마을 재정비 관련 경진대회에 참가해 수상하는 등 독일에서 우수사례로 꼽힌다.
 

카트리나 쉐어 매니저. (사진=취재기자)
카트리나 쉐어 매니저. (사진=취재기자)

비트부르크-프룀의 ‘미래를 점검하는 마을(농촌공간계획)’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카트리나 쉐어 매니저는 “독일은 농촌인구 감소와 고령화, 세대 간 격차 등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됐다”며 “지난 50여 년 동안 농민이 90% 감소했고 그렇다보니 농촌의 빈집은 물론 방치된 창고와 축사, 노후 건축물 등이 문제였다. 마을별로 전통적인 고유의 색깔이 있지만 너무 옛날 방식이라서 재정비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비트부르크-프룀 지역에는 234개 마을이 있는데 이 중에서 78%는 주민 500명 이하이고, 전체의 절반은 200명보다 적다”며 “이에 마을재생 프로젝트가 1990년대 초반부터 추진됐고, (유럽연합) 리더 프로젝트를 통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8개 지역 모델을 선정해 농촌공간계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을 재정비 계획 수립에 앞서 마을의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마을의 시설을 조사하고 문제점을 파악했다. 또한 마을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확인했고 마을의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 주민들의 요구사항도 들었다.

이와 같은 공간계획은 농촌마을이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 즉 미래가 있는 모습을 제시해 줘야 한다고 했다. 또한 지역 주민들이 마을 가꾸기에 동참하고 미래를 위한 마을을 계획하는 조직체 구성에 이어 정부와 주정부의 지원도 이끌어냈다.

카트리나 매니저는 “한 번에 마을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정해 추진했다”며 “그래서 단계별 콘셉트가 필요했고, 그 때마다 지원을 받으며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전체 설계도를 포함해 계획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 주택과 마을도로 조화를 이루다

건축용 돌을 가공하는 석공이 많았던 마을 역사를 상징하는 조형물. (사진=취재기자)
건축용 돌을 가공하는 석공이 많았던 마을 역사를 상징하는 조형물. (사진=취재기자)

베팅겐 마을에 들어서면 주택과 도로가 매우 잘 정비돼 있어 쾌적한 환경에 매료당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 주택과 전통이 가미된 현대식 건축물이 조화를 이룬다. 마을 전반적으로 잘 정돈된 외관과 따뜻한 색채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베팅겐 지역은 석재 자원이 풍부해 과거엔 건축용 돌을 가공하는 석공이 많았다는 역사적 배경이 스며든 듯했다. 이에 비트부르크 베팅겐 마을의 공간계획을 설계한 헬무트 핑크 건축사와 함께 마을 구석구석을 거닐면서 건축물과 주택 개보수 콘셉트에 대해 설명을 듣고 마을 공동 시설 설치와 활용 방안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
 

헬무트 핑크 건축사. (사진=취재기자)
헬무트 핑크 건축사. (사진=취재기자)

그는 베팅겐 마을의 역사적 배경을 부각하기 위해 노후 된 주택과 도로는 이 지역에서 생산된 석재를 사용해 통일감을 주면서 조화롭게 설계해 시공했다. 이 마을에는 중세시대에 건축돼 문화재로 지정된 여러 채의 주택들이 있고, 건물 외관을 보존하고 내구성이 떨어지는 창문틀을 보강하는 등의 방법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주거 환경을 개선했다. 또한 과거 주거 공간과 하나의 건축에 있던 축사, 창고를 개조해 다양도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베팅겐마을 광장 도로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아스팔트가 아닌 지역에서 생산된 석재로 길을 만들었다. (사진=취재기자)  
베팅겐마을 광장 도로는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아스팔트가 아닌 지역에서 생산된 석재로 길을 만들었다. (사진=취재기자)  

헬무트 건축사는 “건축물을 개보수할 때 고려하는 포인트는 문화적 차원과 역사와 전통적 배경을 유지하면서 시설을 이용하기 편리하도록 기능적으로 개선한다”며 “건물의 외관은 옛날의 농가 모습인데 지금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새 집을 지어도 전통 건축양식을 고수한다. 또한 빈집으로 방치됐던 농가 주택을 다양한 세대가 공동으로 거주하는 주택으로 개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간계획 예산을 투입해 단장한 주택. (사진=취재기자) 
공간계획 예산을 투입해 단장한 주택. (사진=취재기자) 


#아이와 노인 돌봄을 해결하다

이 마을은 특히 주민들 간의 사회적 공동체가 끈끈하다. 도시민들이 농촌 생활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이의 돌봄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가 적잖은 상황에서 돌봄 문제 해결은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열쇠다. 이에 비트부르크는 아이 돌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마을 활성화에 필수요소라는 점을 인식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주민 등으로 구성된 마을연합조직에서 아이 돌봄·놀이 등에 직접 나선 것이다. 또 마을 내 초등학교도 마을연합조직에서 지원한 돈으로 운영하고 있다.
 

베팅겐마을은 인구 유입을 위해 학교는 물론 병원, 마트 등 각종 생활편의시설을 갖췄다. 사진은 초등학교 전경. (사진=취재기자)
베팅겐마을은 인구 유입을 위해 학교는 물론 병원, 마트 등 각종 생활편의시설을 갖췄다. 사진은 초등학교 전경. (사진=취재기자)

영유아 육아와 함께 노인 돌봄 해결도 나섰다. 대부분의 농촌 마을이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상당수 농촌에선 이들을 돌볼 인력이 많지 않다. 그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물론 노인들이 거주할 수 있는 양로원 시설을 마을 내에 건립하면서 공동 돌봄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와 관련 클라스 씨는 “젊은 사람들을 유입하기 위해 유치원과 면사무소를 함께 건립했고 노인들의 주거공간인 양로원 시설도 2014년에 설립했다”며 “유치원과 양로원 등은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받은 예산으로 만든 시설”이라고 말했다.

 

베팅겐마을은 고령화된 농촌 마을의 노인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양로원을 건립했다. (사진=취재기자)
베팅겐마을은 고령화된 농촌 마을의 노인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양로원을 건립했다. (사진=취재기자)
영유아들의 돌봄을 맡고 있는 유치원. 맞벌이 부부가 많고 농촌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사진=취재기자)
영유아들의 돌봄을 맡고 있는 유치원. 맞벌이 부부가 많고 농촌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사진=취재기자)

이 같은 돌봄 체계는 마을 발전에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들과 마을연합조직 등을 통해 진행될 수 있었다. 헬무트 건축사는 “자원봉사자들은 차량 탑승 사업을 통해 노인들의 시내 쇼핑 등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노인 가구 방문 등의 활동도 진행한다”며 “이런 일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지만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연합조직을 통해 결정한 후 추진한다. 마을 내에서 자치적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체계를 갖추면서 2010년 9만4008명까지 감소했던 인구가 다시 증가해 2022년 10만3642명으로 늘었다. 마을 공간계획의 효과였다. 클라스 씨는 “돌봄 문제 등을 해결하면서 젊은 층과 아이들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 또 룩셈부르크와 이 마을의 거리는 약 20㎞인데 그곳에서 높은 임금을 받고 물가가 저렴한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주민들도 늘었다”며 “독일과 룩셈부르크가 EU국가란 점에서 국경에 제한 없이 다닐 수 있고 하나의 화폐로 통용되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젊은 세대와 중간 세대, 노인 세대가 함께 사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헬무트 건축사는 “기존의 축사를 7가구가 사는 주거공간으로 탈바꿈했다”며 “건물 내 공동공간을 만들어 각 세대들이 어우러져 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노인을 돌보는 등 각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마을주민 생활편의 시설은 기본

베팅겐마을의 도로와 주택 전경. (사진=취재기자)
베팅겐마을의 도로와 주택 전경. (사진=취재기자)

농촌으로 인구를 유입하기 위한 또 다른 필수조건은 마을 내에 병원·마트 같은 기본적인 시설 갖추기다. 이에 비트부르크 마을 내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시설과 슈퍼마켓 같은 마트, 금융시설, 식당, 소방서 등을 갖췄다. 상·하수도 등 편의시설도 마을연합조직에서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다.

헬무트 건축사는 “마트 부지는 이미 1992년 설계 때부터 확보했다. 주거지 건립 대신 마트 같은 주민들의 편의시설 부지를 우선적으로 확보하는 계획을 만들었기 때문에 마트를 세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마을연합조직이 구성한 의회에서 마을 내 중요사항에 대한 의사를 결정하고 있다”며 “그만큼 마을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클라스 씨는 “예를 들어 연방정부가 특정 기업을 이 마을에 넣겠다는 계획을 세워도 마을연합조직에서 반대하면 정부가 밀어붙일 수 없다. 그만큼 마을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마다 스포츠 활성화를 통해 마을을 육성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클라스 씨는 “마을마다 탁구, 유도, 축구, 테니스 등 스포츠 육성에 나서고 있다.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음료, 소시지 등을 판매하며 얻은 수익금을 마을기금으로 활용한다. 이 같은 프로그램이 마을을 살리는 작은 요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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