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농장에 들어가기 위해 방역기에 들어가 소독(사진 왼쪽 돼지 농장)하고 장화와 방역복을 갈아입는(오른 쪽 닭 농장) 등 대부분의 농가들은 스스로 농장을 잘 지켜나간다고, 정부가 우리를 범법자로 몰지 말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농장에 들어가기 위해 방역기에 들어가 소독(사진 왼쪽 돼지 농장)하고 장화와 방역복을 갈아입는(오른쪽 닭 농장) 등 대부분의 농가들은 스스로 농장을 잘 지켜나간다고, 정부가 우리를 범법자로 몰지 말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양돈농가의 시설 규제를 강제하면서 어길 시 사육 제한 조치까지 내려지는 가축전염병예방법(가전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양돈 농가는 도저히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두 개의 제재가 동시에 가해진 이번 가전법 개정안을 ‘악법 중의 악법’으로 규정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느닷없이 이런 내용을 알게 된 타 축종 단체에서도 술렁이는 가운데 절차 및 시점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시설 규제 강화하고 사육 제한까지 내려진 가전법 개정 추진

울타리·전실 등 8대 방역시설
일반지구 농가들까지 의무화
7개 위반 사항 제시 등 통해
사육 제한·폐쇄 기준 만들어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2일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법 개정의 주 대상자는 양돈 농가다. 농식품부는 야생멧돼지에서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지역이 경기도와 강원도에 이어 충북까지 이어지며 전국적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들며, ASF 확산 방지를 위해 중점방역관리지구 외 일반지구에도 강화된 기준의 방역 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즉 전국 모든 돼지농가에 내부울타리, 외부 울타리, 전실, 방역실, 입출하대, 방조·방충망, 물품 반입시설, 폐기물 관리시설 등 8대 방역시설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이번 가전법 시행령 개정으로 위반사항을 근거로 한 가축사육시설 폐쇄 또는 사육 제한 기준도 새롭게 마련됐다. 농식품부는 기존에도 폐쇄나 사육 제한 명령은 있었지만 세부·절차 기준이 없어 사육 제한·폐쇄 명령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며 세부 기준을 만들었다. 7개 위반 사항을 제시했고 이 중 소독설비 및 실시 등을 위반한 자, 양돈농가로 보면 이번에 전국 의무화를 추진하는 8대 방역시설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1회 경고에 이어 2회부턴 사육 제한 3개월, 3회엔 사육 제한 6개월이 내려진다.

다른 위반 사항은 조치가 더 강하다. △이동 제한 명령 위반 △외국인 근로자 고용 신고·교육·소독 위반에 따른 전염병 발생 △전염병 신고 지연 등에 대해선 1회 적발 시 바로 사육 제한 3개월, 2회엔 사육 제한 6개월, 3회엔 폐쇄까지 내려진다. 농식품부는 이와 관련한 의견 수렴을 설 연휴 직후인 다음달 3일까지 받는다.

 

최대 피해 대상자 양돈 농가 ‘즉각 철회’ 촉구

“계도·벌금 등 사전 조치 없이
폐쇄명령까지 내리는 시행령
농식품부, 협의 없이 기습 예고”

이번 가전법 개정의 최대 피해자가 될 양돈업계에선 반발이 거세다. 대한한돈협회(회장 손세희)는 지난 12일 ‘농가 생존권 위협하는 가전법 개정 즉각 철회하라’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서엔 ‘농식품부 해체’란 말까지 담겼다.

한돈협회는 “방역 규정을 위반한 농가에 계도·벌금 부과 등 사전 조치 없이 바로 사육을 제한하고, 폐쇄명령 조치까지 할 수 있게 한 가전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령안을 농가 협의 없이 농식품부가 기습 예고했다”며 “이는 헌법으로 보장한 국민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독재적 폭악이자 개악 입법이다”고 단정했다.

한돈협회는 “이번 개정으로 농가는 이동제한 명령 위반 시 사형선고와도 같은 사육 제한 조치를 받는 등 생존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며 “더욱이 소규모, 고령화 농가 등 여러 현실적 제약을 고려해 자율 설치를 줄기차게 요구했던 8대 방역시설마저 농가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했다. 방역을 핑계로 축산 농가를 말살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농축산업을 지키고 진흥해야 할 정부가 사육 제한과 폐쇄 명령이란 강압적 칼날을 들이대며 농민 생존권을 위협하는데도 이 땅의 대통령 후보들과 정당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어 한돈 농가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제발 살려 달라’고 호소한다”며 “한돈 농가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전국 200만 농민 동지와 연대해 폭압적 농식품부 해체까지 불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타 축종 단체도 문제 제기“뒤통수 맞은 기분”

“의견 수렴한다면 적어도 공문 한 장은 보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부가 농가를 조금이라도 배려했다면 사료비 오르고, 설 대목 앞둔 지금 시점에 기습적으로, 그것도 농가가 극구 반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진 않았을 겁니다.”

정부의 가전법 개정 추진에 돼지를 넘어 타 축종에서도 절차와 시점 등을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가금단체 한 관계자는 “한마디로 기습이다. 그동안 법 개정하고 관련 의견수렴을 받을 경우 단체에 공문을 보내거나 알려왔다. 이런 경우는 정말 못 봤다”며 “특히 사육 제한이나 폐쇄 조치 관련해선 지난해 봄, 거의 1년 전 반대 의견을 냈는데 그 이후 아무런 의견 수렴 없이 이번에 바로 입법예고를 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단체 관계자는 “한돈협회 성명서를 보고 농식품부가 가전법을 개정하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걸 보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1월 들어 사료 가격이 인상됐고, 또 조만간 설 대목장도 형성되는데 코로나19로 상황은 여의치 않다”며 “여기에 계란 선별포장 확대, 건축허가 받은 곳만 사육시설 인정 등 농가에 규제를 가하는 제도도 최근 들어 계속해서 추진되고 있고, 대선까지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가전법을 개정하겠다는 것은 농가를 궁지로 몰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가전법 개정이 이뤄지면 지자체에서 사육제한이나 폐쇄 조치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축산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에도 법에 폐쇄나 사육 제한을 명할 수 있다고 돼 있었지만 그동안 이를 시행한 지자체는 거의 없었다”며 “하지만 농식품부가 이 유형을 구체화하면 지자체에서도 이제 폐쇄나 사육 제한을 반드시 해야 할 근거가 마련돼 상당히 우려스럽다. 경고나 과태료 없이 바로 사육제한이 내려지는 건 축산 규모를 줄이려는 정부의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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