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마늘·양파 수확기 등 본격적인 농번기를 맞은 산지에선 최악의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5일 찾은 경남 합천의 마늘‧양파 수확 현장에서도 인력난 속에 80대 어르신 두 분이 힘겹게 양파 수확을 하고 있었다. 
마늘·양파 수확기 등 본격적인 농번기를 맞은 산지에선 최악의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5일 찾은 경남 합천의 마늘‧양파 수확 현장에서도 인력난 속에 80대 어르신 두 분이 힘겹게 양파 수확을 하고 있었다. 

#현장은 지금

합천 마늘·양파 1만평 농가
밤 꼬박 새우며 28시간 작업
도움 받을 곳은 할머니 두 분 뿐
수확기 잦은 비로 더 애간장

▲수확 밀리는 마늘·양파 산지=신문사로 제보 전화를 걸어 울분을 토로했던 김성호(53·가명) 씨를 만나기 위해 지난 15일 경남 합천으로 향했다. 마늘과 양파 수확 작업 중이었던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돼 있었다. 마늘 수확의 마지노선이었던 15일 또다시 비 예보가 있어 14일 새벽 5시부터 시작해 꼬박 밤을 새우며 15일 아침까지 28시간 일한 흔적이었다. 수확 후 만난 그는 수화기에서 들리던 울분의 목소리와 달리 처절했던 그간의 사연을 차분히 풀어냈다. 

김 씨는 “지난해 11만~12만원이었던 인건비가 올해엔 16만~17만원까지 뛰었고, 그렇게 된 이후 수확을 포기하면 포기했지 인부를 쓸 수는 없을 것 같아 2400평의 마늘밭은 우리 부부가, 7600평의 양파밭은 친분이 있었던 80대 할머니 두 분과 함께 수확하기로 했다”며 “마늘은 6월 10일 안에 캐야 상품성이 잘 유지된 채 건조, 저장에 들어갈 수 있는데 치솟은 인건비에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수확이 늦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수확 당일 갑자기 인력을 보낼 수 없다는 통보까지 받은 마늘·양파 재배 농가 김성호 씨(가명)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수확 당일 갑자기 인력을 보낼 수 없다는 통보까지 받은 마늘·양파 재배 농가 김성호 씨(가명)가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외국인 근로자가 없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용역업체(민간 인력사무소)가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고, 최근엔 인근 지역에서 20만원까지 상승했다는 소식도 들었다”며 “농가 간 불안 심리를 이용해 가격 경쟁을 붙이고, 자기들은 인당 3만~4만원 씩 가져가고 있다. 16만원이어도 인부에게 13만원, 17만원이어도 13만원씩 주는 이상한 셈법도 부리고 있고, 대부분 현금 거래라 실상은 이보다 더 심각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올해엔 인력이 없는 가운데 비까지 잦아 농민들은 애간장을 태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 씨는 “오늘(15일) 비 소식이 있어 어제 새벽 5시에 일어나 밤새가며 오늘 오전까지 마늘 수확을 마쳤다”며 “비가 오면 마늘이 썩거나 갈라지고 수확 기계도 들어갈 수 없어 수확을 오히려 더 당겨야 하는 데 그 반대가 되고 있다. 농가 간 일손을 구하기 위한 경쟁이 상당히 치열할 수밖에 없고, 이런 심리를 용역업체에서 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수확 예정일을 넘기며, 지난해 가을부터 애지중지 키운 마늘과 양파 상품성에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후작인 벼농사까지 차질을 빚는 등 인력난으로 인한 피해가 쌓이고 있다. 

 

진주 딸기·상주 포도 하우스는
이웃 주민 동원해 작업 진행
그마저도 비오는 날에만 가능 


▲시설작목·과수, 최악의 인력난에 신음=이날 합천을 방문한 후 찾은 진주의 한 딸기 하우스는 인력난이 심하다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행히 인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날은 '비'라는 특수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비가 많이 와 배 봉지 씌우기, 마늘·양파 수확 등 노지에서 작업을 할 수 없었기에 이들 인력이 비 와도 작업할 수 있는 하우스 농사에 투입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딸기 하우스의 주인은 임호식 한국농업경영인 진주시연합회장으로, 그는 진주시 대평면에서 12동의 하우스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임 회장은 1년 내내 이어지는 딸기 농사를 위해 연중 4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올해엔 단 한 명의 외국인 근로자도 고용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비가 오는 날에만 이웃 주민들을 활용해 작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임호식 회장은 “지난해 월 120만~130만원 하던 외국인 근로자 월 인건비가 올해엔 200만원 이상까지 뛰었다. 그런데도 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다”며 “딸기 농사는 1년 내내 작업을 해야 하는데 너무 막막한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봉지 씌우기, 순 따기 등의 작업이 한창인 과수 농가 역시 인력난에 시름하고 있다. 특히 농가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눈치까지 봐야 하고, 이들을 이끄는 중개인들의 문제도 많다고 지적한다. 

경북 상주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이인철 경북명품포도연구회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언제든 다른 데로 가버린다”며 “작업이 더디더라도 아무런 지적도 할 수 없다. 그들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됐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이끄는 중개인들의 문제도 심각하다”며 “불법 체류자가 많아 계약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 돈 몇천원이라도 더 주면 수확 당일이어도 바로 짐 싸서 다른 곳으로 가게 한다. 농민들은 우리 돈 주고 고용하면서도 이들과 갑을 관계에 묶여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외국인 근로자 중개인들도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이 회장은 “우리가 주는 인건비의 3분의 1을 중개인들이 먹고 있다. 거기에 하루 운행비로 3만원도 받는다”며 “중개인들은 하는 것도 없이 엄청난 수익을 내는 반면 현금 장사라 세금과 관련해선 무법천지일 것”이라고 밝혔다. 

 

시설 딸기를 재배하는 임호식 한농연 진주시연합회장은 연중 4명 고용하던 외국인 근로자를 올해엔 한 명도 고용하지 못했다. 이날처럼 비가 와 노지 작업을 하지 못하는 날 인근 주민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시설 딸기를 재배하는 임호식 한농연 진주시연합회장은 연중 4명 고용하던 외국인 근로자를 올해엔 한 명도 고용하지 못했다. 이날처럼 비가 와 노지 작업을 하지 못하는 날 인근 주민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수확 중단에 농사 포기까지 속출=최악의 인력난은 일찍 수확을 종료하거나 아예 농사를 짓지 않는 등 농민들을 ‘농사 포기’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다. 

임호식 회장은 “진주는 시설채소 주산지인데, 어쩔 수 없이 하우스를 놀리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며 “인력이 없는데 어떻게 농사를 짓겠느냐. 올해 지나면서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들이 속출할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신정호 진주금산농협 조합장은 “진주 금산지역은 고추, 파프리카 등의 국내 최대 시설채소 주산지로, 11월부터 시작해 이듬해 6월까지 수확이 진행되는데 올해엔 5월도 되기 전에 수확을 마친 농가들이 많았다. 가격이 평년보다 좋았음에도 수확할 인력이 없어 농가들이 수확을 포기하는 정말 있을 수 없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안성의 엽채류 재배 농가 조주연 씨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250만~300만원을 요구한다. 도저히 농촌에선 맞출 수 없는 금액을 요구하고 있다”며 “일손이 너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하우스 40동 중에 20여 동만 재배하고 있고, 재배하는 품목도 손이 덜 가는 품목 위주로 심었다”고 밝혔다. 조 씨는 “치솟는 인건비에 박스값 등 자재비도 급등했다”며 “농촌은 지금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덧붙였다. 

최악의 인력난을 겪고 있는 올해 역설적이게도 산지에선 유독 일손이 더 필요하다. 

충남 논산의 배 재배 농가 이윤구 씨는 “잦은 비 등 궂은 날씨가 이어지며 배가 너무 안 크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인큐베이터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며 “이런 시기엔 작목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약도 자주 줘야 해 예년보다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니인터뷰-신정호 진주금산농협 조합장
“정부, 언제까지 뒷짐만 질 것인가”

신정호 진주금산농협 조합장은 최악의 인력난에 농촌이 붕괴하고 있지만 정부와 언론 어디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정호 조합장은 “코로나19와 상관없이 수년 전부터 외국인 근로자 없인 농사지을 수 없는 농촌 현실에 대한 우려가 컸다. 저들(외국인 근로자)이 갑이 되고, 그렇게 되면 농민들만 죽어날 수 있다고 봤는데 코로나19로 그런 시기가 좀 더 빨리 오게 된 것이지 언젠간 오게 돼 있었다”며 “정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조합장은 “일단 이번 인력난에 대한 급한불을 꺼야 하고, 이후 중장기적으론 외국인 근로자가 아니면 농사지을 수 없는 농촌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국내 인력 충원 등 중장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정호 조합장은 여러 대책을 강구할 때 필수적인 농업 예산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현장이 최악인 상황에서 농업 예산도 최저 수준인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

그는 “정부 예산 비중의 3%도 안 되는 농업예산으론 이런 일들을 할 수 없다. 거기에 올해 기획재정부에서 발표한 정부 부처 요구 예산을 보니 농업 분야는 증액 요구가 최하위였다”며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농촌 현실을 정부가 너무 외면하고 있다. 농업예산을 과감히 증액해 인력난 등에 활용해야 하고, 이게 국민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시장에선 풋고추 등 일부 품목 가격이 예년보다 높게 형성돼 있다. 하지만 이를 급등 등 자극적인 보도로만 일관하는 언론 행태에 대해서도 그는 문제를 짚었다. 

신 조합장은 “가격이 높아도 수확할 인력이 없어 생산량이 급감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진 않은 채 가격에만 초점을 맞춘 언론 보도는 결국 수입산 증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며 “식량주권이 무너지고 나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농업·농촌 경시 풍토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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